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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ing About  :  [출간서적 맛보기] 일본정벌기
  Name  :  안병도     * Go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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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歷史小說)

                    일본정벌기(日本征伐記)
                  - Chosen-Japan War 1600 -
                                              Presented By
                                            Byeong-do. An 1998
                                               안병도(安秉道)

- 이것은 임진왜란 직후 극비리에 실행된 조선의 일본정벌에 대한 숨겨진 기록이다.

                      눈을 뜬 하늘(天)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천이 떠는구나 (三尺誓天 山河動色)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산천이 피로 물드는도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이순신(李舜臣)


                            습격(襲擊)


  1600년(선조33년) 7월 17일.
대마도(對馬島)의 아소우만(淺茅灣)은 아침을 맞았다. 막 떠오른 붉은 햇살이 서서히 주위를 밝게 만들었다. 마치 하얀색의 한지(韓紙)에 붉은 물감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갈매기가 나는 포구(浦口)에는 작은 배 수십 척이 매어져 있었다. 약간 남쪽에 있는 미사키(尾崎) 마을은 아직 조용했다. 좀 활기가 없는 것 같았지만 그것이 더욱 평화롭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자! 오늘도 힘내자!”

배들이 즐비하게 매어져 있던 포구에서 어선 한 척이 나왔다. 그 배에 타고 있던 늙은 어부가 소리쳤다.

“오늘 아침도 물고기야? 할아버지?”

어부 옆에는 열 살이 좀 넘어 보이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기운찬 어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냐? 물고기마저 없으면 당장 굶어죽을 거다. 거기 그물을 잘 잡고 있거라.”

“하지만 난 쌀밥이 먹고 싶은 걸...”

소년은 어부가 시키는 대로 그물을 잡으면서 투정을 부렸다.

“이런 철없는 것 봤나?”

어부가 혀를 찼다.

“몇 번 말해야 알겠냐? 지금은 온 마을사람들이 다 굶주리고 있어. 마을 시장에서도 쌀은 구경도 하지 못할 지경이란다.”

“어째서? 쌀이 없으면 돈을 주고 사오면 되잖아?”

“그럴 돈이 어디 있어야 말이지. 전에야 조선에서 해마다 쌀을 얻어오기도 했고 교역도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냐. 지난 조선과의 전쟁으로 인해 그런 것이 모두 끊겼단다. 네 아버지와 형들도 그 전쟁에 끌려나가 죽었어.”

소년에게 대답해 주면서도 어부는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겨우 두 세 사람이 탈 수 있는 작은 배였기에 속도는 빨랐다.

“그럼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어야 해?”

“그래서는 우리 모두 죽거나 이 섬을 떠나야 한단다. 빨리 조선과의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래야지.”

“언제쯤 조선과 사이가 좋아지는데?”

“그건 나도 모르겠다. 듣기로는 도주(島主)님께서 계속 사신을 보내고 있다고 하던데... 이제 다 왔다! 그물을 던져야겠다.”

어부는 배를 세우고 그물을 던질 준비를 했다.

“할아버지! 저기 배가 보여!”

막 어부가 그물을 던지려 했을 때 소년이 북쪽 수평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배라고?”

어부는 던지려던 그물을 손에 잡은 채 그곳을 보았다. 확실히 수평선에서 낯선 배 한 척이 보였다.

“이 시간에 다른 데서 배가 들어올 리 없는데...”

어부가 다가오는 배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그는 소스라치도록 놀라고 말았다.
그 배 한 척 뒤에 자그마치 수십 척, 아니 백 척도 넘을 듯한 배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더구나 선두에 있는 배는 작았지만 뒤에 있는 배들은 모두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성(城)같았다.

“저, 저건!”

“뭔데?”

소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어부는 그물을 놓아버렸다.

“할아버지! 그물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어서 노를 젓거라!”

어부가 소년에게 소리쳤다. 그는 포구로 뱃머리를 돌렸다. 몹시 놀라고 있는 듯 손을 마구 떨고 있었다. 소년은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어째서?”

“저 배는 쓰시마 배가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 배도 아냐.”

“그럼?”

“조선이다. 조선 배야. 그것도 싸우기 위한 배다!”

“조선이라고?”

“어서 노를 저어!”

소년이 눈을 크게 떴다. 어부와 소년은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여긴 위험해. 넌 어서 집에 돌아가거라!”

어선은 곧 포구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어부가 소년에게 지시했다.

“할아버지는?”

“곧 따라가마.”

“빨리 와야 돼.”

소년이 몸을 돌려 한쪽으로 뛰어갔다.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어부는 곧 미사키 마을로 달려갔다. 그는 온 포구와 마을에 들리도록 고함을 질렀다.

“조선군이다! 조선수군이 쳐들어온다!”

어부의 목소리에 놀란 주민들이 몰려나왔다.

“무슨 일이냐! 조선군이라니?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냐?”

막 잠에서 깨어난 무사 한 명이 나오며 호통을 쳤다. 그는 고함을 지르며 맨발로 뛰고 있는 어부의 멱살을 잡았다.

“이놈아! 도대체 조선군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저, 저기...”

멱살을 잡힌 어부가 손으로 포구 쪽을 가리켰다. 무사는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포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함선들이 보였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무사가 어부의 목을 잡던 손을 풀고 황급히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배들이 갑자기 땅을 울릴 듯한 폭음을 내며 화염을 뿜었다. 불덩어리가 포구에 있는 배와 마을로 날아들었다.

“화포다!”

무사가 들고 있는 일본도를 조롱하듯 수많은 포환이 쏟아졌다. 주민들이 순식간에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백 척이 넘는 거대한 배들이 사정없이 쏘아대는 불덩어리였다. 그 숫자는 수백 개가 넘었다.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모두 깨어지고 불타며 판자조각으로 변했다. 마을도 곳곳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무사가 외쳤다.

“누가 가서 도주(島主)님께 알려라! 조선군이 쳐들어왔다!”

그때 무사의 옆에 있는 집 한 채에 포환이 명중했다. 집은 순식간에 부서지며 무너졌다.

“으악!”

무너지는 집이 멍하니 서있는 무사와 어부의 몸을 덮쳤다. 어부가 비명을 질렀다. 무사는 칼을 든 오른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삽시간에 둘의 몸은 쏟아지는 나무 조각과 흙더미에 깔려 사라졌다.



“떠나겠다고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기요마사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한밤중에 그의 진막(陣幕)으로 찾아든 휘하 무장(武將) 한 명을 만나고 있었다. 20살을 갓 넘긴 젊은 청년 무장이었다.

“이유가 뭔가? 오카모토.”

“문화. 그것에 대한 동경입니다.”

오카모토(岡本)는 놀랍도록 침착하고 태연했다.

“고작 그게 이유란 말이냐?”

“그럼 그 외에 어떤 것이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아직 조선에 상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네가 본 게 얼마나 되겠나?”

“제가 조선과 중국에 대해 알게 된 건 훨씬 예전입니다.”

“정말로 떠날 생각인가?”

기요마사가 다시 확인했다. 상당한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였다.

“오늘로서 가토 문중과의 인연(因緣)은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이후로 오카모토 휘하 부대는 따로 행동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조선을 정복하고 멀리 명나라까지 정벌할 것이다. 네가 있을 곳이 어디 있겠느냐?”

“그것은 두고보면 알 것입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요마사가 무서운 눈으로 오카모토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단칼에 널 베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함께 모시고 가도록 하지요.”

오카모토는 오른 손을 뻗어 옆에 있던 등잔불을 움켜쥐었다. 그는 가지고 온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가리켰다.

“이 안에는 화약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이만한 양이면 이 진막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네 녀석에게 철포부대(鐵砲部隊) 지휘를 맡겼던 게 실수였다.”

기요마사가 신음하듯이 낮게 소리쳤다.

“가거라! 정히 그렇다면 가서 어디든 네 의지를 관철해라!”

“고맙습니다 기요마사님.”

오카모토가 기요마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도 다음에 만날 때는 적이 되어 있을 겁니다. 서로 싸워야 할 때가 오면 저는 전력을 다해 기요마사님을 치겠습니다.”



“보고입니다!”

연락을 맡은 작은 배인 사후선(伺候船) 한 척이 기함으로 다가왔다.
아소우만을 공격했던 조선함대는 포격을 멈추고 잠시 정박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포구에 있는 배는 대부분 임진왜란 때를 비롯해 이전부터 조선 연안을 노략질하는데 쓰이던 배였다. 이 배들을 포환으로 모두 깨뜨리고 왜구 본거지로 악명이 높았던 미사키 마을은 신기전(神機箭)과 불화살을 쏘아 불태웠다. 마을에 있던 집들이 대부분 무너진 채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올랐다.

“무슨 일인가?”

기함에서 갑옷을 입은 장수 한 명이 갑판 위 장대(將臺)에서 나왔다. 장대는 판옥선(板屋船) 위에 나무로 만들어진 다락이다. 판옥선이 하나의 성이라면 그 망루(望樓)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상대마도(上對馬島)에 상륙한 중군(中軍)이 크게 이겼습니다. 백 여명의 왜병과 싸워 이를 물리치고 왜장을 사로잡았습니다.”

“잘했다!”

장수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소리쳤다.
그는 좌부장(左部將) 유형(柳珩)이었다. 유형은 다시 장대 안에 들어가 안에 앉아 있는 장수 한 명에게 보고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안쪽에 있어 그 장수의 얼굴은 그림자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정왜사(征倭使) 어른! 중군이 승전하고 왜장을 생포했다고 합니다.”

“알겠소.”

묵직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보고를 받은 장수는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냉정하게 말했다.

“모두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오. 병사들이 잠시 쉬고 나면 즉시 엄원(嚴原:이즈하라)으로 향하시오. 대마도주가 있는 금석(金石:긴세키)성을 포위해 그의 항복을 받아내야 하오.”

이즈하라(嚴原)는 긴세키(金石)성과 붙어 있는 포구였다. 긴세키성 바로 옆에는 이즈하라와 연결된 수로가 있었다. 수로를 통해 긴세키성을 공격하려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유형이 명을 받자 곧 밖으로 나가 군관들에게 지시했다. 지시를 마친 그가 불타는 미사키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김충선(金忠善)에게 물었다.

“대마도주가 금석성에 어느 정도 병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별군장(別軍將)?”

“글쎄요...”

김충선은 가만히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그의 시선이 여전히 미사키 마을에 쏠리고 있는 것을 눈치챈 유형이 말했다.

“감추려고 하지만 역시 괴로울 것으로 알고 있소. 어쨌든 별군장은 왜국 사람이었으니 말이오. 어쩌면 지금도...”

“지금은 조선사람입니다. ”

유형이 다음에 하려는 말을 눈치챈 김충선이 대답했다.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동안 조선에서 수많은 마을이 왜병들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 제가 왜국에 와서 마을 하나가 불타는 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느낀다면 누가 동감하겠습니까? 그저 눈에 익혀 둔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광경을 자주 봐야 할 테니까요.”

유형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에 물어보신 대답을 잊었군요. 지금 상태에서 대마도주가 급히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4백 명을 넘지 못합니다. 나와서 싸우는 건 엄두도 못 낼 거고 분명 농성을 할 것입니다. 계획대로 제가 별군을 거느리고 나가 그를 항복시키겠습니다.”

별군은 김충선이 거느리고 있는 부대로 전원이 항왜병(降倭兵)으로 이루어진 부대였다. 별군장 김충선이 지휘하는 이들은 편성부터 싸우는 방법까지 철저하게 일본식을 따르고 있었다. 깃발과 복장 같은 것을 제외한다면 왜병인지 조선군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항왜장(降倭將)인 별군장에겐 괴로운 일 아니오?”

“항왜장인 저이기에 더욱 해야하는 일인지 모르지요.”

유형이 위로하기 위해 던진 말에 김충선이 눈빛을 빛내며 답했다. 김충선이 장대 안에 있는 장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

“어쨌든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합니다. 정말은 이제부터가 아니겠습니까? 정왜사 어른.”

“물론이네.”

정왜사(征倭使)라 불린 장수가 천천히 일어나 갑판으로 나왔다. 아소우만에 비쳤던 아침 햇살이 이번엔 그의 얼굴에 비쳤다.

“우리는 한낱 대마도 하나를 정벌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오. 우리가 앞으로 상대할 것은 왜국 전체요.”

다소 병색(病色)이 있어 보이는 창백한 얼굴에 강한 의지를 담은 눈빛이 빛났다. 장수는 해안에서 부서져 불타고 있는 배들을 보며 말했다.

“왜국을 쳐서 나라를 평안케 하라. 이러한 하늘의 뜻에 따라 나는 노량(露梁)에서 죽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이오!”

그 장수는 바로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알려진 이순신(李舜臣)이었다. 임진왜란 내내 압도적인 왜적들과 상대해 단 한번도 패하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던 명장 이순신. 그가 지금 정왜사란 직책을 받아 조선군을 이끌고 일본을 정벌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출동한다!”

이순신(李舜臣)은 위엄 있게 함대출동을 지시했다.
이제까지 잔잔한 물결과 같이 조용하던 배들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1백 척이 넘는 조선함대가 일제히 이동을 개시한 것이다.
조선함대의 왼쪽에 있던 명나라함대가 일순 당황하는 듯 보였다. 진린(陳璘)이 이끄는 명나라수군은 처음부터 이 출전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시 큰소리로 명령했다.

“나팔을 크게 불어라!”

해시(亥時: 밤10시)였다. 환한 달이 은은한 빛을 뿌려주고 있는 가운데 나팔소리가 힘차게 울렸다. 조선함대의 선수(船首)는 노량(露梁)해협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진 제독도 따라오지 않을 수 없겠지.”

이순신은 옆에 서 있는 조카 이완(李莞)에게 말했다.
20살이라는 나이 탓인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전란(戰亂)만 아니라면 지금쯤 방에 앉아서 글을 읽고 있거나 활터에서 동네 한량(閑良)들과 웃으며 활시위를 당기고 있을 나이였다. 그러나 완은 겨우 19살의 나이로 이순신의 휘하로 들어와 많은 전쟁을 지르며 왜적들의 피와 살을 보았다. 앳된 얼굴임에도 살기가 감도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렇겠지요. 사실 바로 그 진 제독 때문에 위험한 싸움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숙부님.”

1598년 11월, 평화로운 조선을 침략해 온갖 만행을 자행한 왜군(倭軍)은 지금 기진맥진한 채 본국으로 철수하기 위해 예교(曳橋)성에 집결해 있었다.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왜군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를 내세워 명나라 장수들에 뇌물을 바치고 안전한 철수를 애걸했다.
명나라 도독인 유정(劉綎)은 뇌물을 받고 그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해상에서 그들을 봉쇄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진린이 찾아와서 퇴로를 터 주도록 협박했다. 심지어는 황제의 이름으로 처벌하겠다고 극언(極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결연히 맞섰다. ‘한번 죽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길을 터줄 수는 없다.’ 라고 당당히 말했다. 진린은 그런 이순신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결국 진린은 봉쇄를 풀어주지는 못하고 어둠을 틈타 고니시의 전령선 하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것이 큰 문제였다. 그 배는 곧바로 남해읍에 주둔 중인 소 요시도시(宗義智) 성채에 도착해 구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즉시 대선(大船) 500척, 총 병력 1만2천이라는 대군이 결성되었다. 총대장은 일본에서도 용맹스럽기로 유명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였다.
곳곳에서 들어오는 첩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이순신은 자칫하면 수륙양면에서 협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봉쇄를 풀고 길목인 노량으로 가 그들을 격파(擊破)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위험한 싸움이지.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싸움이란 것이 있다고 보느냐?”

“하지만 숙부님...”

그대로 봉쇄하면 저절로 기진맥진해서 항복해올 왜적이었다. 완은 이들을 서로 연락시켜 조선수군에 위기를 맞게 한 진린의 책임을 말하려 했다.

“아무 말도 말거라, 완아.”

이순신은 부드럽게 조카의 말을 막았다. 한동안 당황하던 명나라함대는 이제 얌전히 조선함대의 좌측에서 대열을 형성하며 따라왔다. 이순신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일단 출동한 후에 조선함대는 철저히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북, 나팔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을 모두 치우고 병사들의 입에는 하무를 물도록 했다.
작은 막대기 모양으로 생긴 하무는 병사들이 함부로 떠드는 것을 막는 도구였다. 명나라함대도 이런 조선함대에 보조를 맞추어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달빛이 비치는 바다 위에는 출렁이는 바다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 고요했다.

“자정이 됐구나. 준비는 됐느냐?”

“예, 통제사 어른.”

가만히 달빛을 보고 있던 이순신이 고개를 돌려 묻자 군관 송희립(宋希立)이 대답했다.
기함에 펄럭이는 원수기(元帥旗) 아래에는 정수(淨水)와 백단향(白檀香)이 놓여져 있었다. 정수로 손을 씻은 이순신은 향을 피운 다음 하늘을 향해 기원축수(祈願祝壽)했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가운데 무릎을 꿇은 이순신의 모습은 비장함마저 띠고 있었다.

“막중한 직책에 있으면서도 왜적(倭賊)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인이 감히 하늘에 아뢰나이다!”

이순신은 쳐들어온 일본군을 항상 왜적(倭賊)이라 불렀다. 전쟁을 하러온 적(敵)이 아니라 조선을 약탈하러 온 도적(盜賊)이라는 의미였다.
백발이 성성한데다 심신이 쇠약해져 초췌한 얼굴이 된 이순신이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 입에 물고 있는 하무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는 병사들이었지만 모두 숙연해졌다.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있었고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이도 있었다.

“이제 곧 원수들과 마지막 싸움을 하려 합니다! 부디 이 죄인을 굽어 살펴 마지막 힘을 다하여 적을 무찌르게 해주소서! 만일...”

이순신의 눈에 한줄기의 빛이 보였다. 달빛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던 별 중의 하나가 갑자기 밝아지며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이순신이 쥐어짜듯이 마지막 말을 마쳤다.

“이 원수를 모두 무찌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이때 크게 움직이던 별이 돌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앗!”

“별이 떨어집니다!”

갑판에서 이순신과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기원하던 군관 몇 명이 소리쳤다. 너무도 놀라 소리를 내지 말라는 명령도 잊은 것이다.
떨어지는 별이 바다 가운데를 향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모두 그 별을 바라보았다. 이순신도 가만히 그 별빛을 좇았다.

“이제 곧 대도(大島)에 도착합니다.”

별이 사라진 뒤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송희립이 보고했다. 대도는 노량해협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거의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의미했다.

“도착했구나. 그럼 계획해 놓은 대로 우리는 관음포(觀音浦)로 간다. 진 제독에게 이것을 알려라.”

“예! ”

전령선을 보내 연락한 후 조선함대는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 관음포로 향했다. 조금 처져 좌측을 맡은 명나라함대는 전령선의 연락을 받고 북쪽의 죽도(竹島)로 향했다.

출전 바로 직전까지 기함에 와 반대하는 진린에게 이순신은 계획을 설명했다. 출동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진린은 애써 못들은 척하려 했다. 하지만 해도(海圖)를 펼치며 직접 글로 설명하는 이순신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이순신은 진린에게 대도에 도착하면 명나라함대는 죽도에, 조선함대는 관음포에 주둔하자고 했다. 왜군을 발견하면 즉시 연합해 좌우익에서 협공(挾攻)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두 갈래 방향에서 오는 아군에 의해 적은 당황해서 제대로 공격을 집중시키지 못하며 무너질 거라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전투능력과 의욕이 별로 없는 명나라수군에 앞서서 조선수군이 전면에서 전투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실제로 명나라함대는 왜소한 배 63척에 병력도 2600명이 전부였다. 배가 너무 작아 특별히 진 제독과 부총병 등자룡(鄧子龍)에게 판옥선을 한 척씩 빌려주었을 정도였다.

“천명(天命)이란 것이 있다고 생각하나?”

관음포에 닿은 조선함대는 닻을 내리지 않고 대기했다. 일본함대가 오는 시간이 매우 빠를 것이라는 이순신의 예상에 따른 것이다. 곧 벌어질 전투를 기다리고 있는 기함 위에서 이순신이 송희립에게 물었다. 조카인 완은 병사들의 전투 준비를 점검하기 위해 갑판 아래에 내려가 있었다.

“천명이라고 하시면?”

송희립이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한번 되새겼다. 천명이라면 그건 하늘이 내린 명령을 의미하지만 운명과는 다르다. 절대로 거역할 수 없고 역사를 만드는 거대한 힘을 비로소 천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늘이 내리는 명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순신의 눈이 송희립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송희립이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했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지금 송희립을 바라보고 있는 이순신의 차림새는 갑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또한 조총탄과 화살을 막아줄 환삼(桓杉)도 입지 않았다.
조금 전에 행해진 기원을 위해서였다면 닻도 내리지 않고 있는 지금 당연히 갑옷과 투구를 입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차림은 그저 붉은 색의 융복 뿐이었다. 사천해전에서 적의 조총탄에 왼쪽어깨를 맞아 고생한 일이 있는 이순신이 깜빡 잊었을 리도 없었다.
송희립이 황급히 말했다.

“통제사 어른! 갑옷을 잊으셨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이순신은 그 말을 듣고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10월 8일, 이순신을 강력하게 후원해주던 유성룡(柳成龍)이 영의정에서 물러났다.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당쟁(黨爭)에 의해서였다.
5일이 지난 10월 13일, 출진(出陣)중에 인편(人便)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된 이순신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유성룡 다음은 이순신의 차례였다.
이때 왜군이 모두 본국으로 물러가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었지만 소문이 그러했고 각지에 있는 간자(間者)에게 오는 보고도 일치했다. 그렇다면 이제 최후의 일전(一戰)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후퇴하는 왜적들을 바다 위에서 수장(水葬)시키는 전투였다. 이순신은 한가지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이순신은 유성룡이 보내온 편지 하나를 받았다. 평소에 주고받던 편지와는 달리 아주 짤막했다. 영의정에서 물러났다는 말과 왜적에 대한 계책 한가지를 생각하는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말이 조금 이상했다.

-부디 천명(天命)을 어기지 마시오.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소.

보통은 입에 올리지 않는 말인 천명. 게다가 할 일이 남아있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의문이 떠올랐지만 이순신은 편지를 등잔불 위에 놓아 천천히 태워버렸다.

“복병장(伏兵將) 이순신(李純信)의 신호입니다! 적선발견!”

연락을 맡은 군관이 상당히 흥분되고 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순신은 잠시의 회상에서 깨어났다.

“노량해협 동쪽 입구에 적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서쪽을 향해 전진중입니다.”

“왔구나!”

시간은 축시(丑時: 새벽2시). 이순신은 즉시 출동명령을 내렸다. 함대는 곧바로 노량해협을 향해 나아갔다.
얼마쯤 나아가자 일본함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 맑지 않은 하늘임에도 먼바다에서 반짝이는 불빛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 엄청난 숫자의 불빛무리를 향해 조선함대는 급히 노를 저어 접근했다. 마침내 조선함대 앞에 일본함대의 선두가 보였다.

“평소보다 열 보 정도 더 접근하라!”

이순신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에 서서히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전투지휘를 위해 호상(胡床)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싸움이었다. 왜적에게도 이순신에게도 마지막이 될 싸움이기에 한 명도 살려 보낼 수 없었다. 거리를 눈으로 확인한 다음 이순신은 검을 빼 위로 치켜들었다.
그의 신호를 기다리며 여전히 전진하는 조선함대 전체에 긴장이 흘렀다. 다음순간 그 검은 드디어 적을 향해 내리치며 힘찬 명령을 전했다.

“공격하라!”

꽝 하는 요란한 폭음이 먼저 기함에서 나왔다. 조선함대의 주력전선인 판옥선(板屋船)에 실린 천자포(天字砲), 지자포(地字砲)가 발사되는 소리였다. 이어서 전투개시를 알리는 신기전(神機箭)이 휘잉하는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갔으며 천 개가 넘는 조선군의 화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버님! 명나라함대가 왔습니다!”

“진제독이? 예상보다 빠르구나.”

연이은 포격에 선두에 있던 왜선들이 판자조각과 찢어진 천을 날리며 부서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순신에게 맏아들 회(薈)가 말했다. 그는 포수(砲手)들을 감독하며 화포 다루는 법을 보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되자 활을 들고 갑판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순신은 일본함대를 향했던 시선을 돌렸다. 환한 달과 화포, 불화살들이 뿜어내는 빛 속에 왼쪽 뒤에서 명나라함대를 알리는 제독기(提督旗)가 보였다. 명나라함대에서 진격을 명령하는 북소리가 울렸다. 부총병 등자룡의 배가 선두에 있었다.

“돌격하라! 적 함대 가운데를 노려라!”

명나라함대의 도착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들을 안전한 후방에 위치시킨 채 조선함대만으로 전투를 전담하려는 이순신의 생각은 빗나갔다. 하지만 반대로 절묘한 양익포위(兩翼包圍)가 이루어졌다. 물고기 비늘 모양을 취한 일본함대를 향해 조선함대와 명나라함대라는 두 날개가 펼쳐졌다.
등자룡의 배에서 일제히 포성이 울리며 철환이 날아갔다. 등자룡은 칠십이 넘은 노장(老將)이었지만 젊은 장수에 지지 않는 용맹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포를 쏘며 적을 향해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전진했다. 그 모습에 자극 받은 이순신이 즉시 돌격명령을 내렸다.
조선수군에게 오늘의 싸움은 다른 때와 조금 틀렸다. 보통보다 열 보 이상 접근한 만큼 확실한 조총 사정거리 안이었다. 왜선을 많이 격파할 수 있는 반면 이쪽도 상당한 사상자가 나왔다. 마지막 싸움이라는 의미는 무거웠다. 지금 이때를 놓친다면 조선을 침략해 마구 유린한 왜적들을 그냥 놓아주게 되는 것이다.

“돌격! 돌격하라!”

군관 손문욱(孫文彧)이 이순신의 명을 받아 힘차게 고함을 치며 활시위에 화살을 매겼다. 기함에는 돌격을 명령하는 깃발이 올랐고 신기전이 꼬리를 물며 올라갔다.
북과 나각이 요란하게 울렸다. 일본함대를 둘러싸고 포격만을 가하던 조선함선들이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일본함대의 중앙을 노리고 전진했다. 화포와 함께 불화살과 진천뢰(震天雷)가 왜선을 노리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선들은 조선함대의 진입을 저지하기는커녕 허둥대며 조총만을 난사하고 있었다. 가끔씩 큰 왜선이 몇 문의 화포를 쏘았지만 일방적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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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일본정벌기는 올해9월로 <도서출판 명상>과의 출판계약이 끝났습니다. 내년 쯤에 내용을 대폭 늘리고 바꿔서 재출간할 계획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 안병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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