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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king About  :  [출간서적 맛보기] 환이야기
  Name  :  안병도     * Go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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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소설
                         환 이야기
                                       안병도 2003


          제 1 장  토끼가 전해준 입학통지서

                           - 1 -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모두 잠에 빠져든 깊은 밤. 환하게 비치고 있는 보름달 안에서 하얀 색 토끼 한마리가 나타난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토끼는 벌써 수백 년 동안-물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그런 식으로 지상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달에서 내려온 그 토끼가 빨간 비단조끼를 입고 작은 깃털날개가 달린 가죽신발을 신고는 두발로 걸으며 인간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어도 역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이면 모두 짐작할 수 있듯이 이 토끼는 보통 토끼가 아니기 때문이다.
“큰일이야! 이러다 늦겠어!”
토끼는 날개신발을 이용해 마치 땅위를 걷는 것처럼 하늘 위를 걸었다. 짧은 토끼의 뒷발을 이용해 걷는 그 모습은 차라리 깡총깡총 뛰어 다닌다고 해야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짙은 어둠과 옅은 새벽의 장막이 섞여있는 도시 위를 걸었다. 토끼의 발밑으로 보이는 도시는 형형색색의 전등이 켜져 있어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토끼의 조끼 주머니에서 보라색 잎을 가진 꽃이 살짝 꽃잎을 내밀며 물었다.
“급한 일이 있어. 그것도 매우 드믄 일에다가 놀라운 일이지.”
“어떤 일이 이나바의 흰토끼를 이렇게 급하게 만든 거죠?”
“꽃잎을 너무 많이 내밀지마. 나는 지금 달려가고 있어. 잘못하면 떨어진다고, 나르시스.”
“걱정 말아요. 지금 가지를 한껏 뻗어서 주머니를 꽉 잡고 있으니까요, 토끼씨.”
“이름을 불러줘. 그렇게 부르면 어째 보통 토끼와 구별이 안가잖아?”
“구별이 안가긴요. 원한다면 이나바가 아주 먼 옛날에 악어를 속여 강을 건넜다가 속임수가 들통 나 통째로 가죽이 벗겨졌다든가, 그걸 치료하려고 신에게 치료법을 묻다가 더 큰 봉변을 당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나바가 화를 낼 테니 그만두죠. 우선 밝혀둘 점은 당신이 매우 영리한 토끼이며 마법에 능하다는 점이에요. 넓고 신비한 달세계에서도 하나 밖에 없는 토끼죠.”
나르시스라고 불린 보라색 꽃이 대단치 않은 듯 대답했다. 나르시스는 토끼를 이나바라고 불렀다. 이나바의 흰토끼가 본래 이름이고 이나바는 그 줄임말이었다.
“조끼주머니에 들어가서 말을 하는 꽃도 하나 밖에 없지. 그리고 그 꽃이 매우 현명한 현자이며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점도 중요해.”
칭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이나바는 나르시스를 추켜올렸다.
“그럼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죠. 무슨 일이죠?”
“우리의 존경하는 지도자이며 명예로운 룬 마법학교의 교장인 미카엘의 지시를 받고 한 소년에게 입학통지서를 전달하러 가는 길이야.”
“룬 마법학교의 입학통지서라고요?”
나르시스의 꽃잎이 잠시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매우 놀랐을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내가 알기로 지상세계 사람에게는 마법학교의 입학이 허용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러니까 놀라운 일이라고 했지. 아! 지상이 가까워졌군. 보이지 않는 마법을 거는 걸 잊었어.”
이나바가 귀를 쫑긋 세우며 입 속으로 나직이 마법주문 하나를 외웠다. 그의 몸이 연기처럼 하얗게 변하며 곧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법 쓰는 모습을 지상세계에 보여선 안 되니까.”
“달세계와 룬 마법학교의 오래되고 엄격한 규칙이죠. 지상세계 사람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것도 그런 규칙의 하나에요. 지난 수십년, 아니 수백년 전까지 더듬어 보더라도 그런 예는 없었으니까요. 달세계가 인간이 갈 수 없는 닫힌 곳이듯, 룬 마법학교는 오로지 달세계 사람들에게만 열려있어요.”
“나 역시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미카엘의 생각이 워낙 확고해. 룬 마법학교의 규칙을 만들고 그걸 집행해 온 것은 바로 미카엘이야. 그가 그렇게 정했다면 분명 뭔가 깊은 생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일 거야.”
“그렇다면 그런 행운을 얻은 소년이 누군지 궁금한데요?”
“나 역시 궁금해.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곧 보게 될 테니까.”
“오래 보지는 못하겠죠?”
“내 임무는 오직 그에게 이 통지서를 전달해주고 마법학교로 오는 방법을 일러주는 것뿐이야. 길게 이야기하지야 못하겠지.”
보라색 꽃과 대화하는 가죽조끼를 입은 토끼가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 사이를 뚫고 하늘을 뛰는 광경을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건 다행일지 모른다. 아니라면 사람들은 일제히 위험경보, 화재경보를 비롯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경보와 신고를 주고받으며 대혼란에 빠졌을 테니까. 사람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게 된 이나바와 나르시스는 그렇게 몇 마디씩을 교환하며 천천히 그들이 목표로 하는 집에 접근하고 있었다.


환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성실한 아이였다. 그는 일찍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잦은 해외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음에도 놀랍도록 차분하고 꼼꼼하게 생활했다. 가끔씩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줌마도 놀랄 정도였다.
그는 도시 외곽에 있는 작고 아담한 집에 살았다. 빨간 벽돌로 지은 이 2층집은 1층이 아버지의 공간, 2층이 환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런 구분이 거의 필요 없었다. 아버지는 계신 때보다 안 계신 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름이 한 글자로 되어 있다는 것 말고 환에게는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뛰어난 상상력에서 나오는 부작용이랄까, 그런 점이었다. 환은 붙임성이 있었음에도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늘 엉뚱한 생각을 하길 좋아했다. 특히 그는 마법이나 초능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정신을 집중하거나 멋있게 주문을 외우는 것만으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환은 아침에 학교를 가면서 비둘기를 보면 저 새를 마법으로 크게 해서 타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수업을 받을 때는 손에 쥐고 있는 딱딱한 교과서가 날아다니며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일상의 모든 틀에 박힌 일들에서 새로운 상상을 하는 건 너무도 재미있었다. 식사를 할 때는 식탁위에 있는 접시와 수저가 날아다니며 음식을 날라다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입만 벌리고 있으면 저절로 밥을 먹을 수 있을 텐데. 물론 그런 일은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초능력을 보고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게임과 만화영화에서 나온 마법주문을 아무리 외쳐 봐도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마법이란 건 없단다.”
환의 선생님은 친절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단지 사람들이 멋대로 상상하는 것에 불과한 거야.”
과연 그럴까? 하지만 환은 분명 어딘가에 마법이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마법을 믿고 있었다. 분명 마법은 있어. 단지 그건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것뿐이야. 환은 착하긴 했지만 남의 말에 쉽게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다. 환은 늘 마법과 재미있는 일을 상상했다. 그 덕분에 그는 학교생활에 그다지 적응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늘 생각에만 잠겨있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선생님은 걱정했다.
엄밀히 말하면 환의 주위에 마법 같은 일이 있긴 했다. 하지만 환이 생각하는 대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건 무섭고 기괴한 일이었다. 가끔씩 환은 이상하게도 죽을 고비를 맞곤 했다. 아무 일 없이 지나치는 아파트 위에서 갑자기 화분이 떨어져 환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간다든지 길을 가는데 별안간 자동차가 인도로 뛰어들어 환을 들이받으려 하다가 멈춘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몇 번이라면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환에게는 그런 일이 거의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무서운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환이 또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위기를 넘기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오늘은 환의 열네번째 생일이었다. 늘 그렇듯 출장중인 아버지는 재미있는 그림엽서 한 장과 돈으로 선물을 대신했다. 환은 아버지의 처지를 이해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
그날 오후 환은 전화를 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가 저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죽은 후 한참동안 환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어머니였다. 혹시 생일선물로 어머니가 다시 살아서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것은 나중에 그가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포기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생일날 창가에 아주 커다란 주머니 하나를 걸어놓은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태까지 아무것도 그 안에 담기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깜짝 놀랄만한 무엇인가가 그 안에 담기게 될 거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방안에 걸어놓은 뻐꾸기시계가 자정을 알리는 소리를 낼 때까지 환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환은 그의 침대에 누워서 천정에 붙여놓은 야광스티커가 내뿜는 빛을 보았다. 꼭 별빛 같았다. 환은 그 별을 하나씩 엮어서 별자리를 만들어보았다. 게자리, 사수자리, 염소자리, 쌍동이자리...
그때였다. 갑자기 창가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심하게 부딪치는 듯한 소리였다. 바람소리와도 비슷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좀 컸다.
“이런! 창문에 부딪쳤어!”
“그러게 좀 조심하지 그랬어요.”
“공기의 흐름이 일정하지 못했던 모양이야. 날개신발을 신고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쉿! 이러다 그 애가 깨겠어요.”
작지만 분명한 소리들이 환의 귓가에 들렸다. 뭐지? 환은 살며시 일어났다.
“누구시죠?”
환은 창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는 방안의 불을 켰다.
다음순간 환은 가 평생 한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붉은 비단조끼를 입은 사람만한 크기의 흰토끼가 뒷발로 서서 조끼주머니 안에 담긴 보라색 꽃잎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환이 조금 더 어른이 되었든가 평소에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았다면 환상이나 꿈일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환은 달랐다. 그는 과감히 토끼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용건이시죠?”
“이런! 밤중에 소란을 피워 미안하구나. 혹시 네가 환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냐?”
“이름은 맞아요.”
환은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니죠. 전 이제 14살이고 곧 중학교에 들어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구나.”
“누구시죠?”
“내 이름은 이나바. 달세계에서 왔단다. 그리고 이쪽은 나르시스라고 하는 꽃이란다. 내가 왜 찾아왔는지 궁금하겠지? 자세히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구나. 간단히 말해 나는 이것을 너에게 전해주려고 왔단다. 신청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거라. 구체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네가 분명히 무엇인가를 원했기에 받아들여진 거란다.”
이나바는 나르시스가 들어있는 반대쪽 조끼주머니에서 금빛 장식이 붙어있는 화려한 종이봉투 하나를 꺼내서 환에게 주었다. 환은 그걸 받아서 펴보았다.

                          입학통지서
신비함과 모험이 날마다 빛나고 있는 달세계에 있는 룬 마법학교에 합격하신 걸 환영합니다. 귀하의 입학을 정식으로 허락하며 내일 거행되는 입학식에 참석할 것을 통보합니다. 자세한 수업절차와 내용은 룬 마법학교에 도착하면 알 수 있습니다.
입학식 장소: 룬 마법학교 <마법사의 정원>
입학식 일시: 쥐가 잠자는 달-1일 오전 10시
                                  룬 마법학교 교장 미카엘

“마법학교라고요?”
“그렇단다. 물론 세상에는 많은 마법학교가 있지. 금성에도 있고, 화성에도, 목성에도 있지. 그러나 달세계에 있는 룬 마법학교는 최고의 학교야. 너는 매우 운이 좋은 거란다. 혹시 너는 마법학교를 좋아하지 않니?”
이나바가 말했다.
“아니요!”
환이 대답했다.
“마법학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매우 재미있는 곳이 될 거 같아요. 저도 가고 싶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갈 수가 없어요.”
환은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관한 문제는 아버지에게 상의를 해야 하거든요. 아버지는 아마 마법학교에 가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참 유감이구나. 하지만 말이다. 마법학교를 가는 데는 네 의사가 가장 중요하단다. 물론 다른 학교라면 부모의 의사도 물어야 하지. 돈은 얼마나 들 것이며 집에서 거리는 가까운지 그런 것들을 걱정하시겠지. 그렇지만 그런 모든 건 마법학교와는 관계없단다. 더구나 룬 마법학교는 최고의 학교야. 네가 다니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학교는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고민을 해결해줄 거다.”
“정말이에요?”
“나 이나바의 흰토끼가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이나바는 손을 가슴을 대고 강조했다.
“알았어요.”
환의 표정이 밝아졌다. 환은 이나바의 얼굴을 쳐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룬 마법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그럼 그걸로 됐다.”
이나바는 다시 조끼주머니에서 작은 물체 하나를 꺼냈다.
“이걸 받아라. 너는 아마 잘 모르겠지만 지상세계의 아이를 마법학교에 입학시키는 건 네가 처음이란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데려와야 할지 고민했지. 교장선생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빠르고도 안전한 방법을 선택했단다.”
“이게 뭐죠?”
환은 이나바가 건넨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건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작은 우표였다. 매끌매끌한 감촉을 느끼게 하는 재질 위에 작게 초승달이 그려져 있고 한 구석에 작게 ‘룬 마법학교’라고 적혀있었다.
“중요한 물건이나 사람을 달로 데려갈 때 사용하는 우표란다. 그걸 몸에 붙이고 기다리고 있으면 내일 자정에 우리 배달부가 찾아올 거야. 그가 널 마법학교로 데려다 줄 거다. 준비할 물건이 있으면 챙겨놓고 기다리도록 해라.”
“알겠어요.”
“환은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믿지 못하겠다고 소란을 피거나 속임수라고 생각할 텐데.”
잠자코 있던 나르시스가 한 마디 했다.
“글쎄요. 적어도 저는 말하는 토끼를 앞에 두고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아요.”
미소를 지으며 환은 대답했다.
“그럼 잘 있거라. 내일 마법학교 입학식에서 보자.”
“예. 안녕히 가세요.”
이나바는 열린 창문을 통해 훌쩍 뛰더니 곧 익숙하게 공중을 걷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몸이 점차 투명해지더니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의 모습과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환이 흥분한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건 최고의 생일선물이야!”
환은 창가에서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 선물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 2 -
다음날 환은 한번도 해 본 적 없는 여행준비를 했다. 우선 가지고 있는 가방 가운데 가장 큰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넣었다. 간단한 간식, 입을 옷, 읽던 책, 그리고 세면도구가 포함됐다. 혹시 돈은 필요 없을까 생각했지만 달세계에 이곳의 돈이 통용될 거 같진 않아 준비하지 않았다. 또한 환이 가진 돈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준비가 다 되자 환은 오른쪽 팔에 이나바가 건네준 우표를 붙였다. 풀칠도 하지 않았지만 우표는 팔에 딱 붙었고 마치 녹아들어가듯 피부 속으로 사라졌다.
이걸 붙이고 나면 배달부가 온다고 했지. 어떤 배달부일까? 혹시 토끼일까? 달세계의 사람은 혹시 모두 토끼가 아닐까? 환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침대에 누워서 기다렸다.
다시 자정이 되었다. 뻐꾸기시계가 다시 날카로운 소리로 울어댔다. 눈을 감고 있던 환은 갑자기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닿는 걸 느끼고 살며시 눈을 떴다.
그 순간 환은 심장에 얼음을 가져다댄 듯 놀랐다. 뭔가 커다란 동물의 머리가 자기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은 다시 열려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들어온 머리가 날카로운 눈빛을 번쩍이며 콧김을 내뿜었다. 만일 그 머리가 비교적 친근하고 다소 졸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면 환은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안녕? 나는 달세계의 우편배달부 레드라고 해. 여기 배달할 물건이 있는 것 같은데... 잘 안보여서 말이야.”
“우편배달부라고요? 아! 혹시 룬 마법학교에서 왔나요?”
“맞아. 그런데 날 좀 도와주지 않을래? 우표가 여기 있는 거 같은데 냄새가 확실하게 나질 않아. 나는 그 우표의 냄새를 아주 잘 맡거든.”
“우표라면 여기 있는데요?”
환이 오른팔을 내밀어보였다. 그리고보니 이 머리는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환은 곧 그것이 책에서 보았던 드래곤의 머리라는 걸 깨달았다.
“아! 거기 있었구나. 다행이야.”
레드가 환의 팔에 콧김을 불자 신기하게도 사라진 우표가 다시 또렷하게 나타났다.
“레드라고 했죠? 혹시 당신은 드래곤인가요?”
“응, 나는 멋진 드래곤이야. 빨간색 드래곤은 마치 빨간 스포츠카와 같지. 모든 암컷들이 부러워하는 정열의 색이니까. 그래, 확실히 제대로 된 우표로군. 확인을 마쳤으니 이제 배달을 시작해볼까?”
레드는 환이 있는 침대에서 조금 떨어져서는 머리를 반듯이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준비를 마치면 여기 타도록 해. 내가 널 안전하게 룬 마법학교로 보내줄 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환은 침대 옆에 준비해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잠옷을 입지 않고 일부러 평상복을 입고 누워있었기에 옷을 갈아입을 필요는 없었다. 환은 미리 써 놓은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버지에게.
잠시 여행을 가게 됐어요. 아마 믿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제가 마법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거든요. 잠시 다녀올게요. 사랑해요.
                                            아들 환 올림

준비를 마친 환은 레드의 머리위에 올라탔다. 드래곤의 머리 위는 생각 외로 푹신해서 고급가죽소파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가방은 어깨에 메고, 양손으로 내 뿔을 잡아. 안전한 것만큼 좋은 건 없지. 랄랄라~”
레드는 흥겨운 듯 콧노래를 불렀다.
“준비 다 됐어요.”
“그래. 그럼 출발하자.”
환이 단단히 뿔을 잡은 걸 확인한 레드는 슬며시 머리를 움직여 창문에서 뺐다. 창문으로 머리가 나오자 환은 비로소 레드가 얼마나 큰 드래곤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몸은 환이 살고 있는 집 지붕보다 더 컸다. 그런 몸집으로 그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그건 차라리 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레드의 등에 달린 작은 날개는 도저히 그의 육중한 몸을 전부 떠받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야 즐거운 우편배달부~ 날마다 달과 지구를 번갈아 날아다니지~ 빨간 내 몸과 날개가 한번 번쩍이면~ 세상에 못 나르는 물건이 없다네~ 랄랄라 나는 즐거운 배달부 레드~”
레드는 노래를 부르며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환의 머리카락이 뒤쪽으로 휘날리며 귓가에 바람소리가 울렸다. 환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뿔을 꽉 잡았다.
“달까지는 얼마나 가야하죠?”
환이 물었다.
“별로 오래 걸리진 않아.”
레드가 대답했다.
“달은 아주 멀지만... 나에게는 지극히 가깝거든. 그리고 지구에 사는 인간에게는 아주 황량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야.”
“달에 정말 다른 세계가 있나요? 거기도 생물이 사나요?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는데 달에는 물도 없고 생물도 살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우주선에 타고 달에 간 우주인들이 말하기를...”
“멍청한 소리!”
레드는 환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예를 들어 내가 너의 집 지붕위에 내려서는 ‘여긴 사람도 없고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도 없어. 물도 없으니 생물도 살 수 없겠군.’ 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생각할 거야? 어차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야 그 정도지. 다소 예외는 있지만 말이야.”
“그럼 그들은 지붕만 보았던 건가요?”
“그렇지. 하긴 달세계와 마법학교는 여태 거의 지상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진 적이 없으니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어쨌든 네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해봐.”
레드가 다시 노래를 불렀다.
“잠시 눈을 감아. 단번에 저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뿔은 더 꽉 잡고.”
레드는 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는 환이 눈을 감고 대답하자 곧바로 그의 몸이 쏜살같이 날았다.
“간다! 야호! 신나는데!”
레드의 몸이 달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사라졌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환은 레드의 몸이 천천히 하강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벌써 다 온 건가? 환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아래를 보았다. 그러나 하얀 안개 같은 것이 눈앞을 가리고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세계는 지구와 모든 게 같을까? 지구에서도 지역에 따라 말도 글자도 다르고 입는 옷이나 음식도 틀리잖아. 혹시 말이 안통하면 어떻게 하지? 환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레드. 질문이 있는데요.”
“뭔데?”
“그러니까 달세계는 혹시 다른 말이나 글자를 쓰나요? 아니면 완전히 지구와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든가 그러지는 않겠죠?”
“당연한 소리!”
레드는 콧바람을 내뿜으며 말했다.
“달은 지구를 비추고 지구는 달을 비춰. 말하자면 달은 지구를 거울에 비친 것이나 다름없지. 말이나 글자는 물론이고 문화도 전부 비슷해. 심지어는 신조차도 비슷하지.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완전히 같다는 건가요?”
“그건 아냐. 뭐라고 할까... 지구는 과학에 의해 발전했지만 달은 마법에 의해 발달했다고 하면 되겠지. 지구보다 과학은 뒤떨어져 보이겠지만 반면에 마법은 놀랄 정도로 발달되어 너희들 같은 아이들도 간단히 마법을 배워서 쓸 수 있어.”
“마법을 간단히 쓸 수 있다고요?”
“그래. 그게 달세계가 가장 크게 지구와 다른 점이지.”
마법. 환이 그렇게도 쓰고 싶었던 그것을 누구나 간단하게 쓸 수 있다니. 환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슨 마법을 배울 수 있을까? 과연 비둘기를 탈 수 있을까? 혹은 교과서가 날아다닐까?
“이제 다 왔다.”
레드가 말하기 무섭게 안개가 걷혔다. 환은 그 아래로 해가 거의 저물어 어둑어둑한 들판을 볼 수 있었다. 약간 음산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여기는...”
환은 레드에게 물었다.
“달세계지 아! 여기가 맞던가? 그만 내려라.”
레드는 환은 약간 무너진 낡은 탑 옆에 내려놓았다.
“레드! 도대체 여기가 정말 달이에요?”
환이 당황해서 물었다. 달세계라기보다는 뭔가 황무지 같았다. 거기가 환의 목적지는 룬 마법학교가 아니었던가? 왜 여기 내려준 거지? 그러나 레드는 대답도 없이 환을 내려놓자 곧바로 날아올랐다.
“뭐야? 이건?”
이상한 곳에 내려진 환은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검게 타버린 나무들, 까마귀 같은 시커먼 새가 날고 있었고 멀리 약간의 노을빛이 지평선에 보였다.
“넌 누구야?”
“아!”
한쪽에 굴러있는 굵은 나무그루 옆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환은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냐니까! 귀머거리야?”
약간 짜증스러운 얼굴을 한 남자아이였다. 망토와 비슷한 옷을 걸치고 가죽신발을 신은 환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환을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는 넌 누구지? 왜 나에게 그런 걸 묻는 거야?”
환은 거꾸로 그에게 물었다.
“하아! 말을 하는 걸 보니 귀머거리는 아닌 모양이네. 넌 붉은 드래곤 레드를 타고 나타났잖아? 레드는 우편배달부야. 머리 나쁜 그 녀석은 사람은 태우지 않는데 별안간 네가 타고 왔어. 그걸 보고 호기심이 생긴건 당연하잖아?”
다소 툴툴거렸지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안심한 환은 대답했다.
“나는 환이라고 해. 지구에서 왔어. 그런데 여기가 달세계 맞아?”
대답을 하면서도 환은 스스로 한 말이 매우 어색하다는 걸 알았다. 아마도 지구에서 이런 말을 했다가는 농담인줄 알거나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노바스 대륙. 그리고 룬왕국이지. 그런데 지구에서 왔다고? 그것 참 대단한데?”
상대는 매우 놀란 표정이 되었다.
“대단하다니?”
“잘 모르는 거야? 달세계에 지구사람이 직접 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 레드만 해도 우편물만 배달할 뿐 사람을 데리고 오지는 않았다고. 그건 네가 유일한 거야!”
“그래? 하지만 잘 모르겠어. 난 그냥 이나바가 준 초대장을 받고 왔으니까. 그가 준 우표를 붙이니까 레드와서 날 태워온 거야. 그건 그렇고 혹시 룬마법학교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 난 그곳으로 가야해.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해야 하니까.”
“룬마법학교라고?”
“그래. 그런데 왜?”
“하하! 그것 참 반가운데?”
환은 자기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 묘한 친밀감이 떠오르는 걸 보았다. 그는 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지크 맥라렌. 역시 룬마법학교 학생이야. 나 역시 너와 같이 입학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그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드가 제대로 태워준 셈이었다. 환은 지크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그럼 나를 그곳으로 좀 안내해 줄래?”
“싫어!”
지크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더구나 나는 여기 다른 목적으로 왔어. 내 일을 팽개치고 널 도울 수는 없어.”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어? 환은 아까 들었던 약간의 친밀감이 싹 사라졌다.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렸는데도 자기 일만 하겠다니. 룬마법학교에는 모두 이런 애들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끔찍할 거 같았다.
“여기서 룬마법학교의 위치를 가르쳐 준다고 해도 지구에서 방금 온 네 능력으로는 갈 수 없어. 그것보다 좋은 구경이 있는데 따라오지 않을래?”
지크는 기분이 상한 환에게 색다른 제안을 했다.
“무슨 구경인데?”
“와 보면 알아.”
지크는 환을 이끌고 옆에 있는 탑 안으로 걸어갔다.
“올라와!”
가늘고 높은 탑이었다. 관측용인 것 같은 그 탑은 돌로 되어 있었는데, 오래 방치된 듯 군데군데 이끼가 낀 계단으로만 올라갈 수 있었다. 환은 숨을 헐떡이며 백 개가 넘는 그 계단을 올라갔다.
“여기 도대체 뭐가 있는 데 그래?”
“저길 봐.”
올라온 환에게 지크는 천천히 한 손을 들어 동쪽을 가리켰다.
그곳은 아까 환이 살펴보았던 먼 지평선이었는데 새벽의 어둠 속에 희미하게 녹색 풀과 낮은 나무들이 있었다. 곧 그곳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그 빛들이 곧장 일직선으로 어둠을 뚫고 위로 올라갔다. 빛의 선이 하늘과 땅을 잇는 가느다란 실처럼 뻗어나갔다. 때로는 빛이 살짝 곡선을 그리거나 서로 교차되어 올라가기도 했다.
“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무대조명을 능가할 정도로 화려한 그 빛들이 환의 눈동자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 환은 그것에 압도되어 버렸다.
“바아가 날고 있는 거야.”
“바아?”
“죽은 자의 혼이 모여서 형성된 새지. 죽음이 결정되는 순간, 영혼이 그 모양을 바꿔 새로 변한거야. 그 새는 당연하다는 듯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영혼이 있어야 할 신성한 곳으로 가게 돼.”
“영혼 같은 거야?”
“엄밀히 말하면 영혼이 모여 만들어진 일종의 정령이야. 때로는 억울한 자의 영혼이 바로 저 바아의 모습으로 변해 다른 사람에게 그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복수를 부탁하는 일도 있다고 해.”
과연 그 빛을 자세히 보자 직선으로만 보인 그것은 다소 천천히 흔들거리고 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조금씩 퍼덕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었다.
“대단한 새야. 새가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환은 잠시 넋을 잃었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해?”
“무슨 말이야? 지크.”
지크가 다소 어두운 얼굴로 변했다.
“말했듯이 바아는 죽은 자의 혼이야. 그것도 방금 죽은 자의 혼으로 만들어져. 그런데 저 빛의 숫자를 봐. 바로 조금 전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뜻이야. 처음 본 사람은 저 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저건 죽음의 빛이야. 고통을 못 이기며 죽은 사람이 지른 비명은 단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저 바아는 오랜 시간에 걸쳐 나타나지. 그걸 보는 자는 그들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거야. 내 짐작이 맞는다면 저 근방에서 방금 치열한 싸움이 벌어진 거야.”
“그, 그렇다면...!”
“물론 이 룬 마법학교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이곳은 안전하고 아주 평화롭지. 저곳은 국경지방이고 이곳과는 전혀 다른 나라니까. 그렇지만 이곳만이 달세계의 모든 땅이 아니라는 걸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저 밖에서는 많은 싸움과 죽음이 벌어지고 있어. 우리는 마법사가 되고 싶어 모였다는 점에서는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후에는 아무것도 함께 가지고 있지 않아. 서로 싸우게 될 수도 있고 죽이게 될 수도 있지.”
“지크...”
“훌륭한 마법사란 도대체 뭘까?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 힘든 마법을 척척 쓰면 훌륭한 마법사일까? 그건 아냐. 난 말야. 훌륭한 마법사란 세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자기가 가진 마법을 올바르게 쓰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모험을 하는 거야. 학교 내에서 가르치는 것에만 묶여있지 않기 위해서.”
비뚤어지고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지크가 갑자기 전혀 다르게 보였다. 환은 그가 굉장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환이 아는 한도 내에서 저런 말을 한 반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레드는 곧 돌아올 거야.”
그는 환을 안심시켰다.
“그 녀석은 종종 중요한 물건을 잊거나 엉뚱한 곳에 내려놓거든. 현명하기 그지없는 드래곤이라고 생각하면 안돼. 드래곤은 드래곤이지만 좀 멍청한 구석이 있어. 그래서 아마 뭔가를 착각해서 널 이곳에 내려놓은 거겠지.”
“그래?”
“틀림없어, 봐!”
지크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레드가 한쪽 하늘에서 낮게 내려오고 있었다.
“가서 다시 타게 되거든 크게 외쳐주라고. 멍청한 녀석아! 하고.”
지크가 탑을 내려가는 환의 등 뒤에서 장난스럽게 일러주었다.



                            - 3 -
“미안! 미안! 그만 목적지를 깜빡 잘못 알았지 뭐냐.”
환을 본 레드는 쩔쩔매며 사과했다. 지크의 말대로 한번 크게 소리쳐줄까 하던 환은 그래서 별말을 하지 못했다.
“마법학교는 여기서 먼가요?”
“가까워. 지금 구름을 통과하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
환은 갑자기 주위가 밝아진 걸 느꼈다. 방금 전까지는 컴컴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주위에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들만 없다면 매우 화창한 아침일 것 같았다.
곧 눈앞이 확 밝아지며 시야가 트였다. 구름을 뚫고 내려온 것이다. 환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았다.
“와아!”
환은 탄성을 질렀다.
아래쪽에 보이는 세계는 그가 텔레비전을 통해 본 어둡고 음침한 달 표면영상과는 전혀 틀렸다. 푸른 산과 숲이 있었고 맑은 강과 새들이 있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자 환은 새들이 스쳐지나가며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따스한 아침햇살을 받는 땅 위에는 논밭과 목장이 있는가 하면 약간 높은 건물들로 형성된 시가지도 있었다.
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리 한 개의 작은 섬 같은 땅이었다. 중앙에 큰 새 모양 조각상이 세워진 큰 탑이 있었고 그 탑을 중심으로 십자형으로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여러 개의 건물들이 서 있었다. 한쪽에는 운동장과 강당이 있었다.
“저 곳이 바로 룬 마법학교야.”
레드가 일러주었다.
“그래요?”
환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곳을 쳐다보았다.
환을 태운 레드는 십자로의 오른쪽에 있는 작은 연못 옆에 착륙했다.
“어서 오너라. 다시 보게 되어 기쁘다.”
이나바가 레드의 머리위에서 내린 환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저 역시 보게 되어 기뻐요, 이나바.”
환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소개하지. 이쪽은 바로 이곳 룬 마법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신 미카엘이란다.”
이나바 옆에는 다른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머리를 온통 덮은 하얀 색의 로브를 입고 치렁치렁한 옷을 걸친 엄숙한 인상의 남자였다.
“룬 마법학교에 온 것을 환영한다, 환.”
미카엘의 목소리는 낮은 톤이었지만 힘이 있었고 쩌렁쩌렁 울렸다. 환은 그에게서 엄청난 위엄이 뿜어져 나오는 걸 느꼈다. 하얀 로브로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얼굴도 그런 위엄을 한층 짙게 하고 있었다.
“그럼 난 배달을 마쳤으니 이만 가야겠어. 참, 우표는 회수해야지.”
레드가 환의 팔에 다시 콧김을 불자 붙어있던 우표가 떨어져 나왔다. 레드는 그 우표를 꿀꺽 삼켜버렸다.
“그럼 잘 있어 환.”
레드는 그 큰 얼굴에 미소를 짓더니 날개를 파닥거리며 날아올랐다. 그는 다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곧 입학식이 시작된다.”
미카엘이 말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부모가 학교생활을 돌보아 주지만 불행히도 환 너는 그런 사람이 없구나. 그래서 특별히 너에게는 후견인을 두기로 했다. 여기 있는 이나바가 널 돌봐줄 거다. 괜찮겠느냐?”
“예, 괜찮아요.”
환은 대답했다.
“이나바는 좋은 토끼라고 생각해요.”
“좋은 토끼라고? 하하하!”
이나바가 웃음을 터트렸다.
“입학수속과 나머지 자세한 사항은 이나바가 알아서 해줄거다. 혹시 궁금한 사항이나 학부모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나바를 의지해도 좋아. 무엇보다 너는 아직 배우는 학생이니까. 혼자서 고민하거나 하지는 말거라.”
“감사합니다. 미카엘...”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나도 학교 안에서는 한 명의 선생님일 뿐이니까.”
잠시 호칭에 대해 주저하고 있는 환에게 미카엘이 일러주었다.
“미카엘 선생님.”
환이 제대로 정정해 불렀다.
“좋아.”
미카엘은 손을 뻗어 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그 손끝에는 푸른 섬광같이 보이는 것이 감돌고 있었다. 환은 미카엘의 손이 머리에 닿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오느라 수고했다. 입학식에 들어가도록 해라.”
미카엘은 몸을 돌려 교장실로 돌아갔다.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공중을 떠가는 것 같았다. 발이 거의 지면에 닿지 않고 있는 상태로 스치듯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환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 그러면 슬슬 입학수속을 하러가자.”
이나바가 말했다.
룬 마법학교의 입학수속은 간단했다. 이나바를 따라 교무처에 가서 입학서류 한 장을 작성하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절차는 끝났다. 환은 기숙사를 신청해야 했는데 그건 입학서류 아래에 있는 신청란에 따로 표시만 하면 되었다. 이나바는 학부모 혹은 후견인 란에 서명해주었다. 그것은 이제부터 그가 공식적으로 환을 돌보아주게 되었음을 상징했다.
절차를 마치자 이나바는 환에게 손바닥만한 크기의 얇은 책 한 권을 주었다. 책 표지에는 ‘룬 마법학교 입학안내서’ 라고 적혀있었다.
“이걸 펴보면 학교에 대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거다. 부모나 후견인은 입학식장 앞까지만 갈 수 있단다.”
환은 이나바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책을 폈다. 그러자 갑자기 책이 환의 손에서 벗어나 양쪽 책장을 날개처럼 퍼덕이며 말했다.
“룬 마법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입학식은 남쪽에 있는 마법사의 정원에서 열립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마법에 걸린 책이지. 그럼 이제 입학식이 열릴 곳으로 가 보거라.”
이나바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했지만 환에게는 온통 놀라는 일투성이였다. 환은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책을 따라갔다. 책은 마치 관광가이드처럼 환이 지나가는 모든 곳의 명칭과 기능,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책이 레드의 머리위에 타고 보았던 탑을 지날 때 말했다.
“불사조의 탑은 룬 마법학교의 상징이며 절대 멈추지 않는 발전과 불굴의 정신을 의미합니다. 학교 중앙에 있는 이 탑은 5백년전에 이 마법학교를 세운 대마법사 아멜린이 만든 것입니다. 높이 20미터의 이 탑 위에 있는 불사조의 석상은 살아있는 불사조가 수천년의 세월을 살다가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때 돌로 변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탑을 따라 나 있는 길을 설명했다.
“이 탑을 중심으로 십자 모양으로 뻗어있는 길을 ‘지혜의 십자로’라고 부릅니다. 지혜로운 자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로서 룬 마법학교에 있는 건물들을 모두 연결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길입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곧 마법사의 정원에 도착합니다.”
환은 책이 가리키는 대로 불사조의 탑을 지나 지혜의 십자로를 통해 걸었다. 그러자 커다란 공원이 나왔다.
“입학식이 열리는 ‘마법사의 정원’입니다. 많은 마법사들이 까다로운 주문과 어려운 약품을 다루고 난 후에 지친 머리를 식힐 편안한 공간을 원합니다. 이 정원은 그런 요구에 부응하여 만들어진 곳입니다. 이곳에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십 종의 나무와 꽃들이 있습니다. 또한 중요한 예술행사와 체육행사를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과연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의 정원은 테두리에 나무가 심어진 숲이었고 중앙에 꽃이 있는 화단이 있었다. 화단 주위에는 많은 의자들이 놓여있었는데 아이들은 주로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환은 정원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룬 마법학교는 그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는 기초적인 언어와 사고능력, 자연과의 친화력과 마법재능을 키워줍니다. 또한 마법을 배우기 전에 필요한 기초적인 윤리와 운용능력도 길러줍니다. 구체적인 마법주문은 거의 배우지 않습니다만 교육을 위한 시범적인 것과 실용적인 것 몇 개를 졸업과정에서 배우게 합니다.”
“그럼 중학교에서는?”
환은 책에게 물었다.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아마 여기 있는 아이들은 이곳의 초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환은 그렇지 않다. 환은 보통의 초등학교에서 국어와 도덕, 산수 같은 마법과 관계없는 것만을 배웠다. 과연 여기에 무사히 적응할 수 있을까? 수업은 따라갈 수 있을까?
“중학교에서는 초보적이지만 구체적인 마법주문과 마법의 역사, 다양한 파생마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졸업을 위한 과정에서 특정한 마법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계열선택이 가능합니다. 보통 초등학교를 마치지 않으면 중학교의 입학은 불가능합니다만 학교 내에 유력한 추천자가 있으면 편입이 가능합니다. 유력한 추천자는 별도의 항목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릅니다.”
책은 환이 묻지 않았던 것까지 가르쳐주었다. 아마도 미리 입력된 자료를 바탕으로 검색해서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이후의 과정도 말해드릴까요?”
책이 물었다.
“응. 말해줘.”
어차피 따로 할 일도 없었다. 입학식이 시작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은 것 같으니 그동안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알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선택한 계열마법에 대해 심화된 내용을 배웁니다. 여기에는 매우 강하고 위험한 주문과 연구를 위한 완성되지 않은 주문도 포함됩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마법사로서의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 자격증을 가지고 마법사의 자질과 사회봉사점수 등 소정의 기준을 거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대학교에서는 강력한 전투용 마법과 광범위한 효력을 가진 마법, 마법이 깃들어진 물품을 만들고 개량하는 마법공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대학교를 나오면 마법학사의 지위를 얻으며 연구논문을 통해 교수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은 줄줄이 이야기해 나갔다. 들어보니 마법학교의 수업도 보통 학교와 별로 다른 것은 없어보였다. 다만 배우고 다루는 것이 마법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어디인가! 보통학교의 따분한 수학과 과학을 어떻게 마법과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환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마법은 단숨에 쥐를 코끼리로 만들거나 반대로 코끼리를 쥐로 만들 수 있다. 수학이나 과학, 국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그런 재미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마법주문이 수학공식보다 어렵더라도 기꺼이 웃으며 할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입으로 약간의 주문을 외우며 손에서 여러 가지 모양의 작은 불꽃을 만들어내어 서로 싸움을 시켰다. 흔들거리는 불꽃은 날개를 단 새 모양도 있었고 무서운 개 모양도 있었다. 공 모양을 만들어 서로 주고받기도 했는데 아마 그 불꽃은 실제로는 전혀 뜨겁지 않은 듯 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본 환의 눈에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피부색이 눈처럼 하얗고 푸른 눈동자를 한 그 아이는 머리에 검은색 삼각모자를 쓰고 낮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서는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숙이고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그 모습에 환은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러자 그 여자아이의 다리가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환을 쳐다보았다.
“지금 나한테 말한 거니?”
“그래. 난 오늘 입학하게 된 환이라고 해. 너는?”
“브리지트. 브리지트 세레자드야.”
“그렇구나. 난 말이야, 이 학교에 처음 왔거든. 브리지트 너는 어때? 이 학교 마음에 들어?”
환은 될 수 있으면 쾌활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눈부신 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에 뒤지지 않는 우울함과 음산함을 동시에 내뿜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 분위기에 휘말려 들어갈 것 같았다. 환은 원래 낙천적이고 농담도 곧잘 하는 성격인데다가 이런 외롭게 소외된 아이를 보면 가만있지 못했다. 가까이 접근해서 친구가 되든가 해서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왜냐하면 환 스스로가 그 외로움이란 것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지내보지 않은 걸 판단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속삭이는 듯 작은 소리로 브리지트가 대답했다. 다소 정떨어지는 대답이었지만 동시에 이 소녀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성숙한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무거웠나? 아! 저길 봐. 저거 재미있지 않아? 불꽃을 가지고 저렇게 다룰 수 있다니! 놀라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냐.”
브리지트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싸늘한 대답이었지만 이번에는 환을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씩 환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캔트립(Cantrip)은 마법초등학교를 마칠 때 누구나 배우는 마법이야. 작은 마법 에너지의 조절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주문이기 때문이지. 저 주문의 특성은 약한 마법효과를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데, 대신 위력이 너무 약해. 마법적 물질만을 만들 수 있는데다가 만들어진 물질들은 깨어지기도 쉽지. 도구로도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주문과 비슷한 모양도 취할 수 없어. 오로지 놀이용 주문일 뿐이야.”
“대단한데!”
환은 감탄했다.
“그렇게 많은 걸 알고 있다니! 나는 전혀 모르거든.”
“그야 네가 방금 말했잖아. 너는 마법초등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네가 신기해. 룬 마법학교는 원칙적으로 마법초등학교를 마친 사람이 아니면 입학할 수 없거든.”
“그건 알고 있어.”
환은 옆에 따라와서 책장을 퍼덕거리고 있는 입학안내서를 가리켰다.
“하지만 학교에 유력한 추천자가 있으면 편입이 가능하다고 하니까.”
“그럼 네 추천자는 누구지?”
“글쎄. 여기에 와서 내가 만난 분은 얼마 없어. 우선 이나바의 흰토끼가 후견인이 되어 주었어. 그리고 교장 미카엘선생님을 만났어. 아마도 그 두 분 가운데 하나인 것 같아.”
“만일 그렇다면...”
브리지트는 약간 놀란 표정이 되어서는 말했다.
“미카엘 선생님일거야. 후견인이 동시에 추천인이 되지는 못하니까. 그렇다면 넌 이 달세계 사람이 아니구나?”
“응. 난 지구에서 왔어.”
“지구? 지상세계 사람이라고?”
브리지트가 정색을 하고는 나무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발이 사뿐히 땅바닥에 닿았다.
“그렇다면 이건 룬 마법학교의 창립 이래 처음이야. 아직까지 지상세계의 누구도 여기 입학해서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래? 그거 확실한 거야.”
“확실해.”
브리지트가 단언했다.
“그렇구나...”
이번에는 환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모두가 다 이런 식으로 놀라고 이상하게 취급해서야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다.
“...이상하네. 왜 얼굴을 찌푸리지?”
“아니야. 아무 것도...”
환은 브리지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이 학교에 들어온 게 기뻤어. 진심으로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었어. 하지만 어딜 가도 이런 취급을 받는다면 아무도 내 옆에 오려고 하지 않겠지.”
“그렇지 않아!”
브리지트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환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지상세계에서 왔다는 게 신기하긴 해. 하지만 그건 단지 배경일 뿐이잖아. 너는 좋은 아이야, 환. 만일 네가 원한다면 친구가 되고 싶어.”
“정말이야?”
“...그래.”
브리지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서슬에 그녀가 쓰고 있던 삼각모자가 벗겨져 떨어졌다.
“아!”
환은 그녀의 황금빛 머리카락 위에는 이상한 것이 있는 걸 보았다. 파란색으로 빛나는 빛 같은 거였는데 동그란 구체모양으로 머리위에 살짝 떠 있었다.
“그건 뭐지?”
“...봤구나.”
브리지트는 한숨을 쉬며 삼각모자를 집어 들더니 다시 머리에 썼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거야. 정확히 이게 뭔지는 아무도 몰라. 저주받은 흔적이라고도 하고 축복받은 증거라고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나는 이것 때문에 줄곧 놀림을 받아왔으니까. 그래서 난 친구가 없었어.”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겨우라니!”
브리지트는 약간 화난 표정이 되었다.
“나한테는 심각하단 말이야!”
“내 생각엔 네 머리 위에 무엇이 있건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고 봐. 누가 놀린다면 실컷 놀리라고 하지! 내가 보기에 너는 매우 매력적인 면을 가지고 있어. 그렇다면 너는 축복받은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게 있어. 바로 우린 친구라는 사실이야. 적어도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도 돼.”
“친구...”
“그래. 친구!”
환은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브리지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그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환에게는 한 명의, 그리고 최초의 친구가 생겼다. 그것은 환에게 있어서 최초의 축복이었다.


                           - 4 -
입학식이 시작됐다. 식순에 따라 교장 미카엘의 인사가 있었고 교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이어졌다. 그 외에 몇 가지 순서가 더 있었지만 환이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건 마지막의 ‘마법사의 의식’이란 순서였다. 날개 날린 작은 요정들이 정원 주위에 동그란 마법진을 그리자 미카엘이 주문을 외웠다. 곧 주위는 검은 장막을 뒤집어 씌운 것처럼 어둡게 변했고 붉고 푸른 광채가 조명등처럼 빛나며 떠다녔다.
모두 눈을 감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리고 눈을 감은 모두에게 미카엘이 천천히 말했다.
“마법이란 유익하고 즐거운 것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슬픈 것이기도 합니다. 마법은 여러분이 가장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주지만 한편으로는 소망하지 않는 것들을 가져옵니다. 이제 본격적인 마법의 길로 접어든 여러분들은 자신감과 더불어 한없는 겸손함을, 용감함과 더불어 강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법은 마음의 힘이자 자연의 힘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법의 원천이 되는 그 힘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 지를 똑바로 파악하며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길에 한없는 은총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마법이 그 빛을 널리 퍼트리기를!”
“마법이 그 빛을 널리 퍼트리기를!”
모두가 함께 미카엘이 말한 마지막 구절을 암송하며 눈을 떴다.
펑! 퍼펑!
정원 테두리에 있는 사방의 숲에서 빛의 기둥이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가 거대한 아치형태를 이루었다. 입학식에 참석한 모두를 축하하기위해 보여주는 멋진 광경이었다.
“이렇게 멋있는 모습은 처음 봐!”
환은 잔뜩 흥분하고 말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와는 좀 달라졌네. 그때는 이렇게 화려하지 않았어.”
브리지트도 약간 놀란 듯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지크도 여기 있을까? 환은 잠깐 고개를 돌려 지크를 찾아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빛의 기둥을 본 것을 끝으로 입학식은 끝났다. 각자는 지정된 반으로 들어가서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마법중학교는 한 반이 20명으로 총 5개의 반이 있었다. 각 반에 대한 편성은 대부분 자기가 마음에 드는 아이와 같은 반을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환과 브리지트는 당연히 같은 반이 되기를 희망했으며 결국 같은 반이 되었다.
“한 학년의 총 인원은 100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의 명칭은 대부분 오래된 마법역사책에서 따오는 데 금년의 명칭은 로고, 세스트로프, 윈켈, 라파오우, 미노토 입니다. 반 편성은 그대로 기숙사 배치로 이어집니다.”
입학식이 시작되자 얌전히 환의 손위에 잡혀있던 입학안내서가 다시 날아오르며 말했다. 환과 브리지트는 로고에 속하게 되었다. 환은 브리지트와 함께 지정된 교실로 향하며 반 편성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 다섯 개의 반 명칭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이 달세계에 존재했던 다섯 위대한 나라의 이름입니다. 로고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기사의 왕국으로 두개의 하얀 날개와 날카로운 랜스(기병창)를 그 문장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스트로프는 북부에 있는 강한 암흑마법제국이었습니다. 마법사에 의해 통치되던 그 나라는 거꾸로 된 삼각형안에 있는 펜타그램(오망성)으로서 그 문장을 삼았습니다. 윈켈은 비옥한 땅과 발달된 상업을 기반으로 한 교역국가로서 빛나는 태양과 그 아래 W모양의 문자를 배치한 것을 그 문장으로 하고 있습니다. 라파오우는 정령마법의 본산지로서 신비한 창조물들이 넘치는 왕국이었습니다. 그들은 번개모양과 구름, 그리고 작은 왕관을 배치한 것을 그 문장으로 삼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노토는 자유로운 전사들이 모여 만든 나라입니다. 신분과 출신을 따지지 않는 용병들이 통치하던 이 나라는 네모난 방패위에 두개의 검을 겹쳐 그 문장을 삼고 있습니다. 다섯 개의 문장이 각각의 반을 의미하는 문장이 됩니다.”
다섯 개의 나라... 환은 어쩐지 으쓱하는 느낌을 받았다. 겨우 20명의 중학생들이 모인 반이지만 명칭만은 엄연히 위대한 나라였고 각자 문장까지 있었다. 마치 그 나라의 중요한 직위에 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로고가 기사의 나라라고 했으니 그럼 환은 기사가 되는 셈이다.
입학안내서는 교실에 들어가자 다시 얌전히 환의 손에 돌아왔다. 환은 앉아있는 아이들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책상과 의자에 앉아 흥미진진한 눈으로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기대에 차 있었다. 환은 브리지트와 함께 오른쪽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기 전에 우선 교복이 지급되었다. 약간 치렁치렁하게 끌리는 망토모양이었는데 테두리는 금실로 장식되었고 왼쪽 가슴 부분에는 입학안내서가 말해준대로 멋진 로고의 문장이 새겨진 은색브로치가 달려있었다. 짙은 푸른색을 띤 이 옷은 매우 세련된 느낌을 주었으며 보통 입고 있는 옷 위에 그대로 겹쳐 입을 수 있었으므로 매우 편리했다.
드디어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순진한 소년의 얼굴을 가진 미남이었다. 그는 검은색 망토를 입고 머리에는 햇빛을 막기 위한 쟁반모양의 모자와 그 아래 늘어뜨린 얇은 반투명 천을 늘어뜨린 차림에 허리에는 긴 검을 차고 있었다. 그는 칠판에 가서 천천히 ‘하게네 베르겐’이란 이름을 썼다.
“내가 오늘부터 너희들을 맡게 된 담임교사다. 모두 반갑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침착하고 웬만한 일에는 냉정한 모습을 잃지 않을 듯 보였다.
“로고에 대해서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 로고는 전형적인 기사의 나라다. 이 나라에서는 심지어 마법사조차도 기사도의 일부를 받아들여 행동했다고 한다. 그것은 믿음, 절제, 약한 자에 자비심 같은 미덕들이지. 너희들이 로고의 일원으로 결정된 건 엄청난 행운이다. 이제부터 나는 너희들에게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남을 돕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지 가르쳐 줄 거다.”
이어서 하게네는 자신을 소개하고는 반에 있는 20명을 한사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환의 차례가 되자 그는 한 마디를 더 했다.
“환, 너는 지상세계에서 왔다고 했지. 그렇다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마법사의 필수품인 마력반지를 가지고 있지 않겠구나.”
“마력반지라고요? 그게 뭐죠?”
환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세상에!”
누군가가 외쳤다.
“마력반지를 모르다니! 그건 마법사가 되려는 사람에 있어 기본중의 기본인데! 저 애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난 예쁜 마력반지가 있어! 아버지는 이걸 매우 비싸고 좋은 물건으로 구하느라 고생했지.”
“모두 조용히 해라!”
하게네는 웅성거리는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룬 마법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거의 모든 수업도구와 교재를 제공한단다. 아무리 가난하거나 형편이 안 되는 학생이라도 기본적인 물품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게 하지. 그렇지만 마력반지만은 예외다. 그건 마법반지는 흔하게 구할 수 없는 물품이며 각자의 몸과 가장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야. 마력반지는 두꺼운 갑옷을 입을 수 없는 마법사의 몸을 마력으로 지켜주면서 동시에 마법을 쓰기 위한 마력을 모으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 보통 달세계에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부모나 친척에게서 받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이건 네가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구나.”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하죠?”
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그저 들어와서 배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입학식 전에 마법을 쓰던 아이들도 그렇고 옆에 앉은 브리지트도 모두 오른쪽 손에 반지를 끼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나도 따로 할 말이 없구나. 다만 환 너에게는 아마 후견인이 있을 거다. 그와 상의해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환은 다소 맥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설마 나도 네가 마력반지가 없을 줄은 몰랐어.”
브리지트가 말했다.
“나 역시 설마 그런 것이 필요한 줄은 몰랐어.”
환은 브리지크가 보여주는 마력반지를 자세히 살폈다. 사람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를 하고 있었는데 브리지트의 것은 백금으로 만든 가느다란 모양에 가운데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다.
“이건 오니키스라는 보석이야. 정열과 신비를 상징하는데 지혜로운 자들이 좋아한다고 해. 어머니가 선물해준 거야.”
그녀는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각자 배정된 기숙사로 돌아갈 때도 환은 마력반지만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을까? 그게 없으면 혹시 수업도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설마 입학을 취소당하고 되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계속 밀려왔다.
기숙사에는 이나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은 그에게 마력반지에 대해 하게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마력반지! 아, 그 생각을 못했구나. 미안하다. 그건 내 실수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교장선생님에게 이야기해보마.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 거다.”
“오래 걸리나요?”
“마력반지는 단순한 장신구나 마법도구가 아니란다. 원래 이 달세계의 마법사들이 각자 그 가문에 따라 전해 내려오는 상징물이지. 따라서 가문이 없는 환 네게 그게 없는 건 당연하단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그게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룬 마법학교의 학생이 되려면 필수적인 것이기도 하니까. 마력반지를 만든다는 건 한 마디로 환 너의 마법사 가문을 만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마법사가문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지. 그건 최소한 수십 년을 걸쳐 이루어지는 마법사의 은밀한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단다. 그걸 치루지 않고 마력반지를 만들려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지.”
“그럼 어떻게 하죠? 전 지금 당장 그게 없으면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단다. 물론 우리들의 교장인 미카엘은 매우 현명하고 매우 유능한 분이시지. 중요한 건 그런 분이 바로 네 입학을 결정하고 추진했다는 거다. 적어도 그 분은 너에게 이런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기대했다는 이야기겠지. 일단 오늘은 기숙사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 같다. 입학안내서가 여러모로 도움을 줄 거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이나바.”
“미안하구나. 좋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좋은 토끼가 힘들다고 말하는 일은 정말로 힘든 일이겠죠. 믿고 있어요.”
환은 미카엘 앞에서 이나바를 ‘좋은 토끼’라고 말했었다. 이나바가 조금도 자기에게 숨기는 사실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어려움이란 어차피 언제든 닥쳐오게 되어있어. 그게 우연히 첫날 바로 닥쳤을 뿐이야.
“잊은 게 있구나, 환.”
“뭐죠?”
기숙사로 들어가려는 환에게 이나바가 주의사항 하나를 일러주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밤에 기숙사 밖에 나가지 않도록 해라. 특히 한밤중에 마법사의 정원에 가면 안 된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고양이의 정령이 방황하는 기간이거든. 섣불리 잘못하다가는 끔찍한 저주에 걸리고 만다.”
“끔찍한 저주라면...”
“고양이가 되어 버리는 거지. 실제로 수년전에 그런 일이 있었단다.”
“사람이 고양이가 된다고요?”
“물론 다행히 그 학생들은 미카엘에 의해 발견되어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단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으면 영영 고양이로 살아야 할 뻔했어. 그러니까 절대 조심하도록 해라.”
“명심하죠, 이나바.”
기숙사는 지혜의 십자로 서쪽 끝에 있었다. 마법사의 정원도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기숙사에서는 마법사의 정원이 내려다보였다. 그런 곳에서 어떤 일이 있다는 걸까? 고양이의 정령이라면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호기심이 자꾸 들었지만 참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기숙사는 전체적으로 할로윈데이에 만드는 호박귀신 모양과 비슷했는데 커다랗게 벌린 입이 입구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층마다 벌집처럼 생긴 방이 허공에 뜬 채로 계단에 연결되어 있었다. 각자에게 방 1개씩이 배정되었는데 환의 방은 2층 18번째 방이었고 브리지트는 2층 11번째 방이었다.
방에 들어오자 다시 입학안내서가 파닥거리며 말을 쏟아냈다.
“기숙사 배치는 추첨에 의해 결정되며 각 반에 한 개 층이 부여되었습니다. 1층은 사무실과 휴게실, 식당 등의 편의시설이 있으며 2층은 로고, 3층은 세스트로프, 4층은 윈켈, 5층은 미노토, 6층이 라파오우에 배정되었습니다. 각 방은 공중에 떠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위치를 바꾸며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때는 두 방의 주인이 서로 동의해야만 가능합니다. 그 조작은 학기 초에 배우는 마법주문에 의해 가능합니다.”
방과 방을 연결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쓸모 있을 것 같았다. 심심하면 브리지트의 방과 연결해서 같이 놀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의논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울하던 환의 기분이 약간 밝아졌다.
방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조명을 위한 램프, 아직은 비어있는 작은 책장과 침대 등의 가구가 있었고 한쪽 벽에는 그림달력이 붙어있었다. 환은 그 달력을 잠시 살펴보았다. 그런데 달력에 표시된 연도와 달 이름이 전혀 틀렸다. 환은 입학안내서의 설명을 듣고 가방에 넣어온 시계를 보고 대조한 끝에 겨우 그 달력을 읽는 법을 알았다.
우선 달세계는 각각의 달에 숫자가 아닌 동물을 붙여 부르고 있었다.

1월-개가 싸우는 달
2월-돼지가 넘어지는 달(눈사람이 깨어나는 달)
3월-쥐가 잠자는 달
4월-소가 빨리 걷는 달
5월-호랑이가 춤추는 달
6월-토끼가 말하는 달
7월-용이 날아가는 달
8월-뱀이 헤엄치는 달
9월-말이 경주하는 달
10월-양이 눈물짓는 달
11월-원숭이가 기침하는 달
12월-닭이 지붕에 오르는 달

이런 식이다. 그리고 연호로는 마법력(曆)을 쓰고 있었다. 최초의 마법이 창시된 해를 원년으로 해서 이후의 숫자를 계산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마법력 5233년이었다. 일부지역에서는 태초의 용이 세계를 창조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태초(太初)란 연호를 쓰고 있기도 하지만 마법력이 보다 보편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마법력 5233년, 쥐가 잠자는 달 1일이다. 생각해보니 입학통지서의 날짜표시도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환은 달력에서 눈을 떼고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문 밖으로 마법사의 정원이 바로 보였다. 창문가에는 물건을 떨어뜨린다든가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한 작은 창살이 붙어있었다.
“야옹! 야아옹!”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을 때 환은 흠칫 놀랐다. 이나바의 경고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밤이 아니라 낮이었다. 환은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아침부터 먹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흥분과 긴장으로 배고프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는데 이제야 위가 먹을 것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달력 옆에 걸린 벽시계 위쪽에서 작은 문이 열리더니 작은 피에로 인형 하나가 튀어나왔다. 뻐꾸기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튀어나온 그는 손에 든 나팔을 한번 불더니 말했다.
“여러분! 1시부터 지혜의 십자로 북쪽에 있는 중앙홀에서 미카엘 교장이 주최하는 입학 환영파티가 열립니다! 룬 마법중학교의 모든 학생은 빠짐없이 참가해주기시 바랍니다! 이상 재잘재잘 피에로의 말이었습니다!”
피에로는 고개를 한번 꾸벅 숙이더니 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환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파티라면 먹을 것이 잔뜩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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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병도 -
* 안병도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4-07-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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