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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소설 공동 연재 게시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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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우(2003-06-07 20:58:30, Hit : 1487, Vote : 2
 http://cafe.daum.net/SSPanzer
 가상2차대전소설 Panzer Assault! 보너스편lll-아브랑슈 공방전(4)

  +추가 리뉴얼을 하면서 제12집단군의 공격 준비 집결 부분을 삽입하면서 A4지 4장 분량의 원고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Panzer Assault! 간판입니다.


-베르네의 기갑전-


  1944년 6월 14일 오전 8 : 35. 루앙《Rouen》 북동부 전방 4.7km

  "크르르르르르!"
  "끼기기기기긱!"
  "드드드드드드드!"
  "부아아아앙!"
  요란한 엔진음들이 연달아 울리며 루앙 북부의 작은 평원지대를 향해 대규모의 전차와 하프트랙, 트럭, 자주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 전차들은 한결같이 M4A3 초기형, M4A3E8, M4A3E2「점보」, M4A4 등 다양한 종류의 셔먼과 M24 채피 경전차, M5 스튜어트 경전차, M26 퍼싱 중전차에 한 수 더 떠 76mm M10 울버린 대전차 자주포, M18 헬캣 대전차 자주포에 강력한 90mm포를 탑재한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까지 집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차량들은 한결같이 녹색 도색에 차체 전면에 큼지막하게 흰별을 그려 놓고 있었는데 그것은 영국군이나 자유 프랑스군, 자유 폴란드군과 같은 외국군에 렌드 리스《Lend Less : 전시 무상 무기 대여법》로 공여한 차량이 아닌 미 정규군용임을 의미하는 일종의 상징《Symbol》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었다.
  그러한 차량들이 주위가 보카주 지대로 가득찬 이 노르망디 지방에서 얼마 없는 좁은 평원지대로 집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집결하는 기갑차량들의 수는 멀리서 대충 세어보아도 약 1,000대를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였다. 게다가 좁은 도로를 따라 들어오는 수백대 이상의 M3/M5 하프트랙에 탑승한 기계화 보병이나 트럭에 탑승한 채 들어오는 보병들의 수는 전차의 규모만큼이나 엄청나 그 규모가 거의 5개 사단 이상의 규모였다. 이만한 규모의 보병사단은 거의 1개 군에 해당되는 셈이었다. 그만한 대부대가 1,000대 이상의 전차와 더불어 이 좁은 평원으로 집결하고 있던 것이다.

  "부르르르릉!"
  "끼이익!"
  "하차!"
  먼저 도착하여 주차한 전차들에 올라가 쌍안경과 포대경으로 자신의 보병들을 태우고 오는 트럭들을 찾던 사단장들이 트럭과 하프트랙들이 평원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자 일제히 예하 장교들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목적지에 미리 도착해 있던 각 분대장과 소대장들이 하차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평원을 가로질러 집결장소에 도착한 트럭의 대열에서 M1 개런드 반자동소총과 M1 톰슨 기관단총, M1919 30 구경 경기관총을 장비한 기관총팀과 보병들이 일사불란하게 하차하여 각 소대 집결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루앙 북부 전방 1.5km
  
  "브라이트 대위. 그 동안 임시 사단장직을 맡느라 수고했네."
  "아닙니다. 대령님. 전사하신 사단장님과 부사단장님이 안타까울 뿐이죠."
  "그래, 그건 그러하네. 참 훌륭한 분이셨는데……."
  아브랑슈 방면으로 기동하던 도중 제116 기갑사단 예하 대전차 대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서둘러 루앙으로 회군한 제8 기갑사단은 다른 사단들이 집결한 북동부가 아닌 이곳 북부의 비교적 아늑한 평원으로 집결을 하였다. 근본적으로 사단의 전면적인 재편성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일단 사기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데다, 지칠 대로 지친 장병들에게 약간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맥 브라이트 대위의 결정이 큰 탓도 있었다.
  막 집결한 1개 전차대대와 1개 기계화보병대대를 순시하고 돌아오던 맥 브라이트 대위를 향해 B여단장 제이슨 바우어《Jason Bauer》대령이 다가와 왼쪽 어깨에 손을 얹으며 격려하며 앞으로의 전황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기갑사단의 트럭 대열이 그들의 서 있던 도로 옆을 통과하고 있었다.

  제8 기갑사단의 임시 사단장을 맡았던 맥 브라이트 대위는 애초에 계속 아브랑슈 방면으로 진격을 하고 있었으나 도중에 루앙으로 집결하라는 브래들리의 명령을 받았고 그 길로 곧장 회군하여 이 곳으로 집결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사단장과 부사단장 등 고위 장교들이 대거 전사하여 지휘 계통상에 막대한 공백이 생긴 제8 기갑사단은 곧 전면 재편성에 들어가고 있었다.
  일단 신임 사단장으로 A여단장인 엘버트 브리건스《Albert Brigance》준장이 임명되었고, 부사단장에 R여단장인 마틴 코튼《Martin Cotten》대령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기타 참모들은 급한 대로 각 대대장이나 그 예하 대위들이 파격적인 인사조치로 승진하여 임명되었다.   이들은 상관 밑에서 오랜 기간 복무를 해와 자신들이 맡게 된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주위의 반대에 부딪치진 않았다.
  급한 대로 인사 개편과 사단 재편 및 손실 전차·하프트랙·병력 보충을 완료한 제8 기갑사단은 우선 2개 전차 대대와 1개 기계화보병대대를 12집단군 선발 기갑사단으로 투입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이동은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 동안 연합군의 P-47 썬더볼트, P-51 무스탕, 스피트파이어, 허리케인과 같은 전투기들에 밀려 얌전히 지하로 잠복한 줄 알았던 독일 공군 '루프트 바페《Luft Waffe》'의 전투기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연합군의 전차와 연료, 탄약을 가득 실은 트럭 대열이 지나갈 때마다 간간이 10여대 규모로 편성된 포케불프 190D-9《Fw-190D-9》전투기와 Me-262 슈발베 제트 전투기들이 날아 들어와 한바탕 20mm·30mm 기관포와 소형 항공폭탄을 실컷 퍼붓고 투하해준 다음 서비스(?)격으로 공중제비까지 한바퀴 돌아준 다음 귀환했던 것이다.
  한창 화재가 발생하여 진압을 하기 시작한 각 전차병들과 보병, 정비병들은 그러한 독일 전투기들을 바라보면서 치를 떨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간간이 독일군 진지로부터 150mm 곡사포와 당시 부족한 포병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급한 대로 Ⅳ호 전차의 차체에 4연장 로켓탄 발사대를 설치한 라케텐베르퍼《Raketenwerfer》로켓포 장착 전차들이 야음을 틈타 1개 중대 규모로 미군 주차장 근처에 몰려 들어와 한바탕 로켓탄을 퍼부어 준 다음 귀신같이 그 자리를 빠져나가 버리는 일이 속출했던 것이다.
  게다가 독일군은 이러한 야간 기습 공격으로 적지 않은 소득을 얻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런 식으로 파괴하고 불태워버린 차량에 실려 있던 물자들이 하나같이 제130 교도 기갑사단과 21기갑사단, 제12 SS '히틀러 유겐트' 기갑사단 예하 제26 기갑척탄병 연대가 철통같이 사수하고 있는 '캉' 공격을 위해 포진한 몽고메리의 영국 제7 기갑사단을 위시한 4개 사단이나 아브랑슈 공세를 위해 집결 중인 제1군단에게 보내질 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15만의 병력을 투입하여 한창 방어선 강화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아브랑슈의 독일군으로서는 뜻밖의 성과로 더욱 시간을 벌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군은 이러한 기습 공격에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간간이 감행하던 대규모 폭격 역시 정확도가 너무나도 지지부진하였다. 한번은 아브랑슈 서북부 방어선에 제9 SS 기갑사단 마크를 단 약 1개 중대 규모의 판터 전차들이 집결 중이라는 첩보를 레지스탕스들로부터 받은 영국 공군의 폭격기들이 랭카스터 30대를 주축으로 하는 폭격기 편대를 투입하여 한창 맹렬한 공습을 퍼부었지만 그들이 한창 폭탄을 투하하며 난리법석을 떨었던 자리에는 단 한 대의 독일전차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폭격기 편대는 빈손이나 마찬가지인 신세로 귀환을 해야 했고 폭격 도중에 독일 공군의 요격으로 호위를 맡았던 애꿎은 P-51 무스탕 전투기 3대와 스피트 파이어 5대, 그리고 랭카스터 7대를 손실하는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덕에 연합군은 조금 더 내륙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제1군과 제12집단군 예하 기갑사단들은 해안선에서 내륙으로 순조로운 진격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항하는 독일군은 간간이 대전차포와 대전차 지뢰, 야습 등을 감행하여 연합군에 맞섰지만 물량공세로 밀고 들어오는 연합군을 상대로 고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은 6월 8일을 기하여 콜빌 해안 일대를 향해 2개 기갑사단과 3개 보병사단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해 보기도 했지만, 영국의 코만도 여단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완강한 방어선에 돈좌되어 버렸고 그나마 제2 SS 기갑군단이 확보한 랑빌읍 일대에서는 아예 전차와 자주포들이 아브랑슈 방어선으로 이동해 버림으로써 상륙한 미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가 없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초기 공수부대를 상대로 효율적인 대응을 보여주었던 독일군의 전차와 보병들이 서서히 내륙으로 밀려나고 있었던 것이다.
  
  1944년 6월 14일 오전 9: 24. 베를린 라슈텐베르크 총통 관저
  바로 그 시각, 라슈텐베르크의 총통 관저에서는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직접 친위대원들을 이끌고 와 전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각 통신원들은 잔뜩 긴장된 얼굴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동안 아프리카 군단의 격파와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고전으로 인하여 거의 히스테리 증세를 보이던 총통이 이번 일로 인하여 더욱 노기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히틀러 총통이 지도를 살펴보면서 통신원들에게 전황에 대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통신원은 손수건으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가며 침착하지 못한 어조로 답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노르망디 방면 중에서도 장차 아브랑슈를 향하여 적의 대공세가 펼쳐질 예정이라 이거요?"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음…그렇다면 이거 무척 큰일이로군. 상륙한 적은 교두보를 완전히 확보하고 계속 내륙으로 병력과 물자를 부려 놓고 있는데 우리는 그 부근에서 방어에만 급급한 형편이라니…."
  탁자 한복판에 큼지막하게 펼쳐진 노르망디 전선의 지도에는 독일군과 연합군을 상징하는 각각의 보병 인형과 모형 전차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인형들의 위치는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있었다. 각 통신원들이 거의 2분에 한번 꼴로 지도상의 인형과 모형 전차들의 위치를 바꾸고 있었는데 독일군 인형과 모형 전차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후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반면 연합군, 특히 영국군을 상징하는 카키색 군복의 보병 인형과 크롬웰 모형 전차들은 계속 내륙 방면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루앙 방면으로는 아예 대규모의 셔먼 모형 전차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히틀러 총통은 그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북부의 베르네 지역에 정예 무장친위대 제2 기갑사단 다스라이히가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기갑부대를 이동시킨 것이라면 분명히 베르네를 공략하려는 의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고 어느 정도 불안한 감이 들게 된 히틀러 총통은 그 부분을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 쪽으로 상체를 크게 숙였다.
  베르네에는 2대의 타이거 모형 전차와 보병 인형 1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후방으로는 교도 기갑사단의 마크인 L《Lehr》을 새긴 Ⅳ호 모형 전차 4개가 점점 북상 중이었으며 약 3초 사이에 통신원이 그 남쪽에 또 하나의 Ⅳ호 모형 전차를 새롭게 놓고 있었다. 그 모형 전차도 역사 L자를 새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베르네에서 최소한 40여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또 그들이 이동하는 도로는 연합군 폭격기나 전투기들의 좋은 지상 공격로였다.
  히틀러 총통은 그 점이 염려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칼레에 주둔하고 있는 제15군의 전차들을 동원하여 이 일대의 영국군을 쓸어버릴 생각도 해보았지만 조지.S.패튼 중장이 주공을 칼레로 이끌 것이라는 첩보도 있고 해서 일부러 칼레에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미심쩍어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수상하단 말이야. …요들 참모총장!"
  "예!"
  갑작스런 히틀러 총통의 부름에 한창 전황을 살피고 있던 참모총장 알프레드 요들《Alfred Jodl》이 서둘러 히틀러 총통이 서 있는 자리로 달려왔다.
  다급한 전황에 군모《軍帽》도 벗고 있던 요들의 왼손에는 막 들어온 전보 한 장이 들려있었다. 히틀러 총통이 그것을 발견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들! 그게 뭔가?"
  "예?! 아! 이건 제1 SS 기갑군단장 디트리히 중장이 보낸 전문입니다. 지금 캉 지구를 둘러싸고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한가? 음…그래. 현재 전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그러자 요들은 전문을 한창 들여다보더니 약간 아찔한 표정을 지으며 그 전문을 총통에게 건네었다. 히틀러 총통은 요들의 이러한 행동에 약간의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일단 전문을 받아 들여 속독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캉 외곽의 바이외가 함락되었고 제21 기갑사단은 레비지 읍에서 영국군과 대치 중이라고?! 요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1분 정도 전문을 읽고 있던 히틀러 총통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요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한 총통의 행동에 요들은 뭐라 대꾸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이 사태가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전황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해안선에 대규모의 전차들을 배치하여 연합군을 내륙으로 끌어들여 섬멸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던 것이 3달 전이었다. 히틀러 총통은 그 말을 믿고 서부전선으로 집결한 각 기갑사단과 새롭게 창설된 제12 SS  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 등에 공장에서 막 굴러 나온 신품 판터 G 초기/후기형과 Ⅳ호 전차 J형, 타이거 후기형, 쾨니히스 타이거, 나스호른, 헤처 구축전차 등 총 1,000여대에 달하는 전차와 자주포를 골고루 지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막대한 신형 전차와 자주포들을 수령한 기갑사단들은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하는데 실패했고 이젠 도리어 전략적 요충지인 캉과 최후의 보루인 아브랑슈가 위협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히틀러 총통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애당초 동부전선의 승리에 취한 나머지 급하게 보강한 서부전선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경우를 예측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총통이 어떠한 불호령을 내릴지 걱정이었다. 요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서 꼼짝못한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라슈텐베르크 총통 관저에서는 이렇게 전선에서 보고되는 연이은 연패 소식에 거의 게엄령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전선은 더욱 더 긴장감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칼레에 주둔한 제15군의 전차와 자주포, 보병들은 바싹 긴장한 채 언제 이 곳으로 몰려올지 모르는 적 함대를 기다리고 있었고 각 비행장에 주기된 제트 전투기와 복엽기, 폭격기들은 끊임없이 날아 들어오는 연합군의 야보와 중폭격기들을 요격하기에 바빴으나 물량공세로 밀고 들어오는 연합군의 항공기 대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거듭되는 출격으로 인해 조종사들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고 있었지만 보충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했다. 반면 연합군은 교대로 조종사들이 교체되어 피로나 탈진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출격을 감행할 수 있었고 야보들은 지상의 독일군 대공포 사격에 많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전선으로 증원되는 독일 전차대의 기동력을 대폭 떨어뜨리고 있었고 이것은 후방으로 대규모의 전차들이 집결하고 있는 반면 전선에서는 전차 부족이라는 전혀 상반된 전황을 연출하는 원인들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전황에도 불구하고 전선의 독일 기갑사단과 보병사단의 장병들은 때론 후퇴하고 때론 적절한 반격과 기습공격을 감행하는 식으로 연합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몽고메리는 단 10일이면 노르망디를 돌파하여 파리를 해방시키고 곧장 독일 본토로 진격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뻥뻥 치고 다녔지만 전선의 독일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놀라운 투혼을 발휘하여 연합군에게 막대한 통행세를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르망디 상륙 이후로 6월 14일까지 연합군은 약 24,600명의 전사자와 37,643명의 부상자를 낸 반면 독일군은 7,853명의 전사자와 15,672명의 부상자를 내고 있었으며 전차 손실은 미군이 약 673대, 영국군이 318대를 기록한 반면 독일군은 약 84대의 손실만을 기록하였고 그 손실도 대부분 Ⅳ호 전차와 돌격포, 대전차 자주포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항공기 손실도 연합군이 독일군의 1.5배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렇게 연합군에 맞서 치열한 저항을 보이던 독일군 사단들 중 제2 SS 기갑사단 '다스라이히'를 향하여 대규모의 공세가 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고 있질 못했다.

   1944년 6월 14일 오후 2: 34. 베르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보카주 사이로 난 폭 5m의 비포장 도로로 1대의 장갑차가 전속 질주하고 있었다. 차량은 단포신 75mm포를 탑재한 sd.kfz 234 장륜식 장갑차였다. 차량 번호의 앞쪽에 'SS'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무장친위대 소속 차량이었다. 그리고 포탑 후부의 탈출용 해치에 새겨진 사단 마크는 뜻밖에도 제2 SS 기갑사단 '다스라이히'의 마크였다.
   그렇다면 이 차량은 다스라이히 사단 소속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차량의 목적지는 당연히 제2 연대가 주둔하고 있는 베르네였다. 도로를 한창 달리던 sd.kfz 234의 포탑에서는 차장이 전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전방을 경계하는 차장의 얼굴에는 굵직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그의 인상은 이미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져 있었다. 장륜식 장갑차인 덕에 비교적 속도가 빨랐으나, 차장은 이 정도의 속도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엔진음이 요란하게 나며, 차량은 어느새, 보카주 지대를 지나, 약간 너른 평원지대로 들어섰다.
   그는 잠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도로 오른쪽에서 2시 방향으로 45m 떨어진 곳에서 M44 위장복과 스모크를 착용한 무장친위대원들과 정비사들이 공습으로 파괴된 lV 호 전차 H형 2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차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틀림없이 상륙 당일에 서둘러 이동하다가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파괴된 전차임이 분명했다. 찌메리트 코팅을 하느라 고생한 전차공장의 노동자들만 딱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동부전선으로 투입된 전차와 전차병들이 조금 더 나은 신세를 안은 셈이었다. 그들은 광활한 평원에서 떼를 지어 몰려오는 소련전차들과 전투를 치룰 수 있지만, 이곳 서부전선은 전혀 반대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차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하늘에서는 무수한 숫자의 야보들이 몰려들어와 그 일대를 초토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연합군의 그 흔하다는 셔먼 전차도 보지 못하고 전사한 전차병들이 수두룩했다. 자신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는 하늘을 잠시 응시했다. 날씨는 화창하였고, 상공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직 야보들이 이륙은 안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어느새 sd.kfz 234 는 베르네 시가에서 불과 60m 남짓한 지점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입구 근처의 건물들 중에서 가장 높은 4층 건물에 올라, 보초를 서고 있던 기갑척탄병 1명이 급히 내려가고, 건물 앞의 초소에 있던 헌병 2명이 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어디서 오는 차량인가?"
   "바이외에서 오는 길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서둘러, 2연대장을 만나야겠습니다. 발터 크뤼거 사단장님의 급보를 가지고 왔으니 어서 들여보내 주시오."
   "발터 크뤼거 사단장님이?! 그럼 자네는 1연대 소속인가?! 알겠네. 통과!"
   소스라치게 놀란 헌병들이 달려들어 장애물을 치우자, sd.kfz 234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시가지로 뛰쳐 들어갔다. 한창 50m 정도를 달리자, 광장이 나오고 그 주변에 가득 주차한 전차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차에서 내릴 틈도 없이 서둘러 전차병들의 숙소로 쓰이고 있을 건물들을 향해 외쳤다.
   "급보입니다! 급보예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당시 프레데릭 대위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었다.
   "뭐? 급보라고?! 무슨 일이야?!"
   갑작스럽게 들려온 보고에 편하게 단잠을 즐기고 있던 전차병들이 모두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나는 물론 바크만 선배 역시 예외 없이 떨어졌다. 위·아래층 할 것 없이 바닥에 떨어지는 전차병들의 거구의 진동으로 인하여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건물이 마루바닥이 삐거덕 거렸다.
   "으으! 어떤 녀석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다혈질로 소문난 슈타트와 장전수가 서둘러, 전차병복을 추스려 입고,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와 동시에 계속 방문들이 열리며 전차병들이 뛰쳐나가고 있었다. 모두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동시에 현관문들이 거칠게 열리며, 전차병들이 일제히 그 문제의 sd.kfz 234를 에워쌌다. 그리고, 대열의 맨 선두에 선 슈타트가 서둘러 차량으로 올라가, 포탑 후위의 탈출용 해치를 열고, 그 문제의 차장을 끌어 내렸다. 주위의 전차병들은 아무래도 다혈질의 슈타트가 한 방 먹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마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러한 최악의 사태만큼은 막기 위해 서둘러 달리고 또 달려 간신히 대오를 휘젓고 한창 흥분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그 차장을 때려눕히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슈타트를 잡아 만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슈타트를 물리고 차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자네는 지금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그리고 소속은?"
   "바이외에서 오는 길입니다. 소속은 제2 SS 기갑정찰대대 1중대 2소대입니다!!"
   "바이외? 거기라면 크리스티안 티히젠 중령님의 제1연대가 주둔한 곳인데…. 그래, 바이외에서 여기까진 무슨 일인가?"
   그러자, 그 차장은 다급한 얼굴로, 전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비상사태입니다! 미 제12 집단군이 베르네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 5시경에 출발했으니, 아마도 9시경이면 이 부근에 도달할 것입니다. 이 공격을 지원이라도 하려는 듯 이미 연합군의 중《重》폭격기들이 이 부근을 철저하게 폭격하고 돌아간 것으로 보아도, 분명히 공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조지 패튼의 제3군은 예비부대로 돌려졌다고 합니다. 이건 분명히 다행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현재 12집단군의 전차대는 제3군 소속 하이슬립 소장의 제15군단 예하 1개 기갑사단과 1개 보병사단에 미들톤 소장의 8군단과 별도의 2개 기갑사단이 증강되어 얼핏 봐도 그 수가 1,600대를 넘어 보입니다. 최소한 5개 기갑사단과 7개 보병사단이 동원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크뤼거 사단장님께서 저희 분대를 보내셨는데, 서둘러 2연대와 3연대에게 출동하라는 지시입니다. 이제 와서 보고 드리기는 죄송한데, 이미 3연대는 출발하여 방어선에 전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카라이첼 연대장님께서도 출동하시면서, 서둘러 출발하라고 재촉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도 적이 더 몰려오기 전에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 이 곳 2연대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적은 대군입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브래들리…, 브래들리…, 브래들리!
   "…12집단군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음…이거 참 심각한데. 브래들리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라면 지금까지 상대해온 미군 기갑사단과는 분명 차원이 다를 거야. 아무래도, …후방의 교도기갑사단에게 지원부대를 급파해 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기갑척탄병 대대의 sd.kfz 251 하프트랙 25대 중 2대는 수리를 갓 끝낸 상태니까 문제없고. 대전차포들은 포탄은 충분히 챙겼을 것이고, 전차들은 어떨까?"
   나는 대충 생각을 한 후에 바로 제2대대장인 25세의 미하일 하인스터캄프 대위를 불렀다. 비록 계급은 같지만, 일단 연대장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므로, 별 문제는 없었다. 연락병이 서둘러 2대대 막사로 달려간 동안, 나는 서둘러 연대의 각 전차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제2연대는 총 4개 대대 중 3개 대대가 전차대대였다.
   그리고 별도로 추가 지급된 신품 중전차들을 모아 급거 편성한 제15중전차 대대까지 총 4개 대대를 점검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둘러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8m가 넘는 판터 전차나 타이거 전차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얼핏 잡아봐도 10m를 넘기는 쾨니히스 타이거와 헤처,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 E-50은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베르네 서쪽 광장 분수대 주변의 공터에 자리잡은 1대대 본부 쪽으로 달려갔다. StG 44 돌격소총을 거머쥔 채 전차에 올라 경비를 서고 있던 전차병 8명이 급히 거수경례를 올렸지만, 나는 경례를 받을 정도로 여유가 많지 않은 상태였다.
   서둘러, 전차 2대를 마주 세워 만든 어설픈 입구를 통과하 바로 전차들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비중대의 정비사들을 대동한 채 전차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다행히도, 1대대의 전차들은 어제 마무리 수리를 했기 때문에 전량 가동이 가능했고, 이어 살펴본 2대대의 전차들도 이상은 없었다. 제2대대의 야크트 타이거 중대(8중대)와 제15중전차대대의 타이거와 쾨니히스 타이거 전차들은 포탄과 연료를 보충 받으면 출동이 가능했고, 마지막으로 둘러본 기갑척탄병 대대 역시 하프트랙 2대가 궤도를 교체하면 출동이 가능했다.
   점검 결과 중장비들은 이상이 없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연대본부로 돌아왔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셔먼 전차의 고기동성이라면 충분히 8시경에도 도착이 가능했다. 물론, 근처에 매복하고 있는 제116 기갑사단과 SS 116 [바이엘] 전차사단의 각 전차 사냥꾼 대대들의 구축전차와 대전차 자주포들이 이들을 중간 중간에서 요격하여, 시간을 지체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도착시간은 늦어도 9시가 넘었다. 베르네에서 방어거점이라고한다면 서북부 4km쯤에 있는 나지막한 구릉지대외에는 적합한 곳이 없다.
   이 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보카주들이 가득한 도로망을 크게 우회해야 하므로, 절대적인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은 대서양 방벽을 구축하면서 자연히 2.6km구간의 방어선이 구축되었고, 2연대가 이 지역을 수비하게 되면서 이 방어선을 더욱 단단히 구축하고 있었다. 2연대의 공병대대란 공병대대는 모두 투입된 이 대역사는 그 거창한 의도와는 달리 완성도는 영 아니었다.
   전차들의 진공을 가로막을 벨기에의 문이나 통나무 장애물, 대전차 지뢰지대는 간신히 완성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 대전차호들이 완전히 개설되지 않았고, 전차 엄폐호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대전차포 진지들은 78%가 완성되었으므로 서둘러 병력을 전개시키면 일단 근접해 오는 셔먼을 막을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 방어선도 계속되는 적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지원군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에 하나 더 붙여 야보들의 공습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 문제라면 각 대대의 대공소대들이 알아서 할 문제였고, 루프트 바페도 이런 전투가 벌어진 사실을 알면 구원군을 보낼 것이니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차였다. 1,000대가 넘는 전차가 몰려오는 판에 2개 기갑연대의 전차들로 과연 얼마나 저지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인 셈인데 문제는 조금 전의 점검 결과 제2연대의 전 전차대수가 정확히 118대였다는데 있었다.
    과연 이 정도의 전차로 1,000여대가 넘는 미군 기갑부대를 막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침부터 줄곧 내 옆에 있었던 바크만 선배 역시 그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심각한 분위기였다. 460여대의 다스라이히 사단의 전차들 중 거의 300대가 넘는 전차들이 투입되는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다스라이히 사단의 전력의 태반이 녹아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다. 슈트룸 타이거 8대를 장비하고 있는 3연대는 일단 원거리 상에서부터 셔먼 전차대의 진격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제2연대는 장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결국,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와 E-50으로 최후까지 방어선을 저지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차들의 주포도 결국은 슈트룸 타이거처럼 한 발에 여러 대의 전차들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팬저 베르페나 네빌 베르페를 배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 병기들은 모두 보병사단의 포병연대에 지급되었기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포병이 없다면, 전차대에 이어 몰려들어올 보병사단을 저지하기가 어렵게 되며 그러한 그들을 1개 기갑척탄병 대대만 저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들은 대전차 전투를 수행하기에도 빠듯한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2연대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잠시 책상에 펼쳐진 베르네 근처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나지막한 언덕에는 방어진지들이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으므로 당장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 곳은 제3연대가 방어해야 할 지점이었다. 나는 좀더 동쪽의 2연대 방어구역을 살펴보았다. 그 곳도 언덕이 있기는 하지만, 그 구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다.
   때문에 대전차 지뢰지대가 3연대 방어구역보다는 많은 편이었고, 벨기에의 문이나 통나무 장애물도 200여 개소가 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교묘하게 위장된 기관총 진지와 대전차포 진지 40여 개소가 배치되어 있었다. 접근하는 보병들은 기관총 진지의 MG 42로 처리하고, 전차들은 75mm Pak 40 대전차포와 88mm Pak 43/71 대전차포로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동부전선에서의 실전 경험을 미루어 보아도, 결국에는 2선 방어선으로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방어선은 돌파당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바로 광활한 평원지대를 지나 베르네로 진격할 수 있는 기갑부대에게는 천혜의 지형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베르네에 주둔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하여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도대체 왜 여기로 정해야 했을까? 그렇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결국 이 방어선에 2연대 전체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결심을 굳혔고, 제2연대는 그렇게 베르네 방어선으로 출발하였다. 110대가 넘는 전차와 25대가 넘는 하프트랙과 포탄과 기타 보급품을 가득 실은 크룹사제 트럭 80여대가 줄을 지어 베르네 방어선으로 향하였다.

   [ 프레데릭 제럴드. 1944. 6. 14. 베르네 ]

   같은 시각. 베르네 서북부 전방 6km. 미 제12집단군

   오마 브래들리 제12집단군 사령관은 한창 질주하는 자신의 윌리스 지프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로, 조금 있으면 시작될 베르네 공략전이었다. 그는 제12집단군 사령부를 출발할 때부터 무엇인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작전 개시에 앞서, 공군이 충분하게 폭격을 감행하여 독일군의 기갑전력을 분쇄시켜 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탈리아 카시노 전선에서 보여주었던 그 졸렬한 폭격의 악몽을 그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다. 독일군이 단 한 명도 없는 애꿎은 카시노 수도원을 폭격해서, 독일 공수부대에게 기가 막힌 방어거점을 제공하여 케셀링 공군원수를 기쁘게 하질 않나, 카시노 읍에다 그토록 융단폭격을 했음에도, 공격해 들어갔던 인도사단이 패퇴해 돌아오질 않나, 그는 이제 공군의 말이라면 아주 신물이 다 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번 베르네 폭격도 그러했다.
    듣자하니, 베르네 상공을 지나가는 아군 전투기들은 거의가 무사 귀환할 확률이 낮다고 했다. 분명 적의 지휘관은 공군에서 몇 번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자임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예 P-51D 무스탕 전투기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리가 없었다. 물론, 독일군의  Me 262 슈발베나 하인켈 He-162 폭스 예거나 코메트 같은 아군의 복엽기를 능가하는 기동성과 막강한 화력을 갖춘 제트 전투기들의 도래도 그러했지만, 그 전투기들이 항시 출격이 가능한 기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숫자적으로 우세한 아군 폭격기대들이 폭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지상 곳곳에 매복한 88mm Flak 36 대공포와 날렵한 쿠겔블리츠와 비르빌벤트, 뫼벨바겐 같은 대공전차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는 주변의 초토화된 보카주 지대를 바라보며 틀림없이 이런 곳이나 초토화 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직하게 웃었다. 이 어이없는 전황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어디부터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브래들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이미 제12집단군의 전차들은 보카주 지대를 벗어나 너른 평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베르네로 질주해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평원지대로 들어서자, 조종수들이 흥분을 했는지, 전차들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 되어가고 있었다.

   1944년 6월 15일 7: 34 베르네 서북부 전방 4km. 제 2 SS 기갑사단 "다스라이히" 제2연대

   6월 14일의 하루가 저물고 15일의 아침이 밝아오면서 고요하기만 하던 노르망디의 대지에 갑작스럽게 요란한 엔진음과 진동이 지축을 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정도 진동이라면 판터나 타이거, 쾨니히스 타이거같은 중《重》전차들도 못지 않지만, 이번의 진동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서히 보카주 지대로부터 몰려오던 진동은 평야지대로 들어서자, 더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 캐터필러 굴러가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르! 끼기기기긱!"
   "놈들이 몰려오고 있군!"

동부전선에서의 승리 이후 처음으로 SS 기갑사단은 대규모의 전차군단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제2 SS 기갑사단 '다스라이히'의 전차들이 급하게 출동하여 전개한 방어선의 중앙에 포진한 전차들의 전차장들이 일제히 페리스코프를 통해 전방에서 몰려오는 대규모 전차들의 행렬을 보고 있었다. 틀림없는 오마 브래들리 장군의 제12 집단군의 대공세였다. 얼마나 많은 전차와 차량들이 몰려오는지 전방은 완전히 흙먼지 투성이였다. 그 흙먼지를 뒤로 한채 약400대가 넘는 규모의 전차와 하프트랙들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몰려오고 있었다. 각 전차장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동부전선에서의 T-34/85, Js-Ⅰ·Ⅱ·Ⅲ 스탈린 중전차 트리오 등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전차대와의 전투 이후 처음으로 보는 대전차 군단이었다. 그 전차군단의 선봉에 선 전차는 M26 퍼싱, M4A3E8 셔먼과 약간의 M3 스튜어트 경전차, M10 울버린,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 등이었다.
   캐터필러들이 요란하게 지면에 부딪치면서 발생한 진동이 지축을 울렸다. 서둘러 도착한 제2연대의 전차들은 모두가 전차 엄폐호에 매복하여 방어진형을 구축하고 있었다. 비교적 전고가 높은 아군전차들이지만 미군 전차 역시 전고가 높기는 마찬가지. 서로 처지는 비슷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누가 먼저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보유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직접 1개 대대를 거느리고 동쪽을 수비하고 있었다.
   장갑이 강력한 쾨니히스 타이거 전차가 횡대를 이루어 배치되고, 그 좌우익으로는 대전차포와 판터, 타이거, 그리고 lV호 구축전차와 헷처 구축전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언덕 아래로는 폭 300m의 대전차 지뢰밭과 피아노선 코일들이 전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쪽으로도 몰려오는 미군 전차들은 어림잡아도 500대가 넘었다. 생산성이 우수한 미군전차들의 실루엣과 엄청난 미국의 공업력에 철십자 훈장을 수여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히익! 대단한데요. 저 녀석들 아주 작정을 한 모양입니다."
   슈타트가 잠시 해치 밖으로 나가 전방을 살핀 후 다시 포탑 내로 내려오며 말했다. 전차장 석에 앉아있던 나 역시 큐폴라에 있는 프리즘을 통해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터였다. 프리즘 밖의 전방은 가히 경이로웠다. 5km밖에서부터 거대한 흑먼지를 일으키며 대량의 전차들이 몰려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열의 선두에 거대한 전차들이 보였다. 나는 그간의 실전경험을 통해 저 전차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미군 전차 중에서 저렇게 거대한 전차라고는 90mm포 장착 M26 퍼싱 중전차 이외에는 없었다. 저런 중전차들을 대거로 투입한 것을 보면 미군이 이 전투에 얼마나 큰 힘을 쏟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굵은 땀방울이 목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엇인가 대어를 잡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페리스코프를 계속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래, M26 퍼싱을 대량으로 사냥할 수 있는 기회구나. 어이! 데카른! 후방에 있는 야크트 타이거나 E-50은 얼마나 되지?"
   그러자, 기관총 사수 데카른(Dekarn, 22세. 다니던 대학을 잠시 휴학하고 곧바로 전차병과에 자원하여 제럴드 프레데릭의 쾨니히스 타이거에 배속되어 지금까지 계속 복무중이다.)상병이 무전기를 들어, 대대 후방에 위치한 제3대대에게 연락을 취했다. 데카른 상병은 MG 34 기관총을 다루기도 하지만, 무전기를 통해 계속 다른 전차들과의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다. 특히 후방의 야크트 타이거 부대와는 지속적인 연락을 취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프레데릭 대위가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에 특별히 집착하는 이유는 쾨니히스 타이거의 차체를 이용해 개발된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의 128mm포가 1km상에서는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1000m: 230 or 200mm] 이번 전투에서는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의 JS-Ⅱ, Ⅲ 스탈린 중전차를 격파하는 데 사용하는 APCBC: 43형 철갑유탄 대신에 일반적인 39형 철갑유탄 등 40여발을 적재해 왔다.
   그리고 측면장갑이 약한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의 엄호를 위해 새롭게 실전배치된 E-50 60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E-50은 Ⅴ호 전차 판터나 Ⅵ호 전차 타이거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되어진 전차로 대략 41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다. 판터의 75mm 포를 쾨니히스 타이거, 야크트 판터, 엘레펀트, 나스호른 등에서 사용하는 강력한 대구경 88mm L/71로 교체하고 차체의 크기가 쾨니히스 타이거와 같아졌으나 장갑 경사가 더 주어진 덕에 쾨니히스 타이거보다 방어력이 우세했다.
   개발회사는  아르구스(Argus)외에도 아우토 우니온(Auto Union)과 아들러(Adler)사로 구성되었다. 이 전차는 차체 양편에 각각 6개의  로드 휠(road wheel)을 장착하고, 일반적인 토션 바(torsion bar) 형식이 아닌 포르쉐 식(Porsche's type)의 서스펜션(suspension)을 장착하여 내부 공간의 극대화 및 생산성, 생산 비용의 절감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병기 실험과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바펜프루팜트(Waffenprufamt) 6 (독일 병기국 6과)의 담당자인 H.E. 크니프캄프[Kniepkamp]는 매우 뛰어난 엔지니어겸 감독자였는데, 전차 표준화 계획인 E 시리즈 계획의 열렬한 지지자이기도 하였다.


   크니프캄프는 E 시리즈 개발 계획에 아르구스, 아들러와 판터의 개발에 참여한 만(MAN), 다임러 벤츠(Daimler-Benz) 등과 같은 전차 개발회사들을 설득하여 참여시키기도 하였으며, 각각 10/25/50/75 톤 급의 전차 개발 계획의 초안을 마련하였다. 이외에도 아들러사가 독자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자한 초중전차인 E-100(100톤급 전차)를 나중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순조롭게 추진된 E 시리즈 중에서 특히 E-50 전차는 당시 주력전차인 판터(Panther)와 타이거(Tiger-I)를 대체하는 차기 주력전차를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개발된 E-50은 헨쉘의 뉘르베르크 공장과 체코의 프라하 인근에 새롭게 건설된 헨쉘사의 공장등 10여곳의 공장에서 양산이 준비되었고 곧 1943년 8월, 생산라인이 갖추어 지면서 서서히 생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판터보다 더 큰 차체에 이 차량을 고속으로 주행시킬 대출력 800마력 가솔린 엔진 개발이 지지부진 해졌고, 그 큰 차체를 제작하기 위해 소요되는 공수의 양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면서 생산량은 그렇게 시원스럽지가 않았다.
   한편 히틀러 총통이 직접 동년 10월에 프라하 공장을 방문했었는데, 그때 당시 총통조차도 판터보다 미덥지 않은 E-50의 생산라인을 지켜 보면서 그렇게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주포와 방어력, 포탑의 장점 등을 설명하는 여러 기술자들의 설명에는 그런대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확실히 E-50의 슈말트룸이라 불리는 포탑은 상당히 혁신적인 작품이었다. 슈말트룸(Schmalturm)은 벤츠(Benz)와 체코의 슈코다(Skoda)사에서 판터 F형(Panther F)과 판터(Panther) II 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크룹(Krupp)과 슈코다에서 새롭게 개발된 75mm KwK 44 L/70 전차포를 탑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E 시리즈 개발 계획이 추진되면서 판터 F와 판터 II 개발 계획이 중단되고 이때 개발된 슈말트룸에는 보다 강력한 포인 75mm L/100(타이거가 개발 당시인 1941년 중반부터 개발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끝내 완성되지 못했음)나 88mm L/71을 장비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실험 결과 슈말트룸은 동일한 포를 장비한 판터의 포탑 들에 비해 제조단가가 무려 30% 이상 저렴할 뿐만 아니라 동일한 장갑판을 사용하였을 때에 매우 우수한 방어력을 가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슈말트룸의 우수성이 증명되자 포탑 전면장갑의 두께를 80에서 120mm로 증가시키는 한편 다른 측면의 장갑 두께도 증가시키는 작업이 서둘러 이루어졌다. 또한 포탑 천장이 평평하게 되어 있고 구조물들이 없는 덕택에 판터, 타이거 등과 비교하였을 때 전차장의 시야확보도 매우 용이한 것으로 밝혀졌다.


   차이스(Zeiss)에서 개발된 스테레오식 거리 측정기와 미군의 M3 리/그랜트, M4셔먼(M3 Lee/Grant, M4 Sherman) 전차 등에 부착된 포 안정장치를 모방하여 제작한 포 안정장치 덕택에 포의 명중률 또한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되었다.
   전차장의 큐폴라(cupola)는 포탑 왼쪽에 치우쳐 장착되었는데, 기존의 것에 비해 제조단가가 싸면서도 전차장의 시야는 더 넓게 확보할 수 있었으며 방어력 또한 향상되었다. 또한 쾨니히스 타이거에 부착된 전차장용 큐폴라(cupola)가 들어서 미는 방식인 것에 비해, 슈말트룸의 것은 힌지가 부착되어있어 단순히 젖히는 형식으로 설계되어 있어 고장날 염려가 없을 정도로 신뢰성이 높아 쾨니히스 타이거 전차병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확실히 프레데릭 대위는 쾨니히스 타이거의 큐폴라 해치 만큼은 제발 개량을 해주었으면 하는 희망 사항을 여러 차례 쪽지에 적어 베를린으로 보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아 풀이 죽을 뿐이었다.
   이렇게 여러 장점이 결합된 E-50은 혁신적인 성능이기는 했지만 쾨니히스 타이거에 장착된 마이바흐(Maybach) HL230 엔진 장착으로 인하여 기동성이 떨어져 후방 수비를 맡게 된 것이었다. 서둘러 신형 엔진이 장착되어야 했다. 하지만 과연 E-50과 대적하게 될 연합군의 반응은 어떠할까 생각도 해보았다. 외형적으로 쾨니히스 타이거의 차체와 매우 유사하지만 불필요한 볼트, 드릴링, 절단 작업 들을 최대한 억제시켜 크기에 비해 작업 공정은 간편해졌으며 제작 시간 역시 많이 단축시켰다.
   그리고 타이거 이후 독일의 중전차에 적용되었던 철판 결합 방식인 인터 록킹(강철판에 홈을 만들어 서로 물리도록 한 다음 용접하는 방식)을 적용해 단순히 용접한 것에 비교하였을 때 차체 강도가 매우 높은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미군 전차들이 이 전차를 상대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만은 분명했다. 더군다나 판터에 익숙한 연합군은 이 전차를 새로운 판터의 형식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된다면 연합군은 별 무리 없이 달려들 것이고 그만큼 독일군은 전과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프레데릭 대위는 미소를 지은 채 다시 페리스코프를 살펴보았다.
   "300m 전방, 좌측으로 M4A3 후기형으로 보이는 셔먼 5대!! 좋아! 저 5대부터 잡는다. 발사 준비!"
   "예! 문제없습니다!"
   슈타트가 자신있게 대답하고 장전수가 39형 철갑유탄을 폐쇄기에 밀어 넣었다. 슈타트가 서서히 발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조준기로 다가가 서서히 목표를 고르기 시작했다. 포탑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드디어 괜찮은 목표룰 잡았다. M4A3E2 점보 셔먼! 아군의 판터 전차의 75mm kwk 40포로도 격파가 불가능하다는 저 전차를 한번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왼쪽에서 2번째 M4A3E2 점보 셔먼 전차! …저 녀석을 잡아야겠다. 슈타트! 준비됐지?"
   "예! 이미 날려버릴 준비는 다되어 있습니다! 근데 저 녀석 전면 장갑이 140mm를 넘긴다는데 괜찮겠습니까?"
   슈타트는 심히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이었다. 미국이 생산한 모든 셔먼 시리즈 중에서 가장 비싼 셔먼이라는 저 전차는 그 가격만큼, 막강한 중장갑을 두른 전차였다. 확실히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과연 이 장포신 88mm Pak 43/71 포로 잡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저 녀석을 먼저 잡아야 미군의 기세가 어느 정도 꺾일 테니까…. 준비해라!"
   조준기를 다시 보니 점보 셔먼은 이미 2km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격파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저 녀석은 장포신 76mm포를 탑재한 형식이었다. 잘못하면 우리가 당하는 것이었다.
   "발사!"
   프레데릭 대위가 발사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슈타트가 격발기를 힘껏 눌렀다. 그러자 포신이 후퇴하면서 철갑유탄을 발사하였고 그 결과 차체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대한 덩치와 무거운 전투 중량이 이 반동을 어느 정도 흡수해 주었기 때문에 차내의 전차병들은 차분하게 다음 목표물을 물색할 수 있었다.
   "쾅!"
   "콰릉! 콰쾅!
   프레데릭 대위의 전차를 주축으로 한 선두의 중전차들이 일제 포격을 개시하자, 곧이어 좌우의 판터, lV호 전차, 헤처, 야크트 타이거 구축전차, 그리고 교묘하게 위장 매복한 75mm Pak 40 대전차포가 연달아 불을 뿜었다. 그러자 도합 100발이 넘는 포탄들이 미군 전차 대열을 향해 날아갔다. 신나게 달려들어오던 미군으로서는 갑작스런 포탄 세례에 제대로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독일의 방어선을 경시한 덕분이었다. 선두에 섰던 미군전차들이 그대로 전면에 포탄이 피탄되어 격파되어 갔다. 6월 15일은 미국 독립 이래 미군 최악의 날이었다.

1944년 6월 15일 9: 45 베르네 서북부 전방 4km. 미 제12집단군


   "쾅!" "콰릉!"
   "퍼펑!"
   고속으로 돌격해 들어가던 미 제12 집단군의 전차들은 갑작스런 독일군의 공격에 갈팡질팡이었다. 기세 좋게 선두에서 달려 들어가던 M4A3E2 점보 셔먼 전차 4대가 88mm 철갑탄에 피격되어 불타오르고 있었고, 가까스로 포격을 피한 몇 대는 곧장 응사를 했지만, 독일군의 진지로 추정되는 언덕으로는 단 한발도 날아가지 않고 있었다. 이에 각 지휘전차들이 휘하 전차들을 통솔하여 대열을 정비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곧 지휘전차들도 차례차례 대전차포에 저격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아비규환의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그나마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여 필사적으로 조준 사격을 감행하려는 전차들도 몇 대 있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대전차포팀이 그것을 놓칠리가 없었다. 곧바로 그 전차들을 향해 75mm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쾅! 쾅!"

상륙 작전 이후 소수의 판터 전차, lV호 전차를 격파한 전과 만으로 독일 기갑사단 전체를 평가한 것은 큰 실수였다.


   그러자, 좌측에서 막 조준을 마치고 사격을 위해 정지했던 M26 퍼싱 1대가 측면에 철갑탄이 명중되어 격파됐다. 전차는 대폭발을 일으켰고 그 광경을 바라본 나머지 전차들이 서둘러, 응사를 하며 돌격해 들어갔지만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발사한 포탄이 명중할리가 만무했다.
   포탄들은 대부분 방어선 앞의 무인지대에 탄착하여 하릴없이 폭발만 하였다. 그 와중에도 독일군은 쉴새없이 공격해 왔다. 이미 방어전을 치루는 독일군에게 있어 공격하는 미군 전차들은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동쪽으로 500여대가 넘는 전차부대를 보냈고 서쪽으로도 이미 400대가 넘는 전차들을 보냈다. 이제 그들의 신세가 걱정되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이야…. 공격해 들어가던 제8기갑사단 B여단장 제이슨 바우어 대령은 포대경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져 버렸다. 애초에 대규모의 독일군이 매복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상륙과 동시에 간단하게 Ⅳ호 전차와 해안 함포 포격에 힘입어 Ⅴ호 전차 판터를 몇 대 격파한 전과만 믿고 그대로 밀고 들어온 것이 실수였다.
   "오늘에 와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오! 신이시여!"
   "쾅! 콰릉!"
   독일군은 완벽하게 매복하고 미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격렬한 전차포와 대전차포, 그리고 팬저 파우스트로 보이는 보병용 대전차 병기들이 잇달아 불을 뿜으며 전차들을 마구 격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2개 기갑사단의 전차 전력이 연합하였고 그의 B여단 소속 1개 전차대대를 포함한 3개 대대 전차들을 끌어 모아 합성한 기갑부대는 거의 독일군의 밥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차들은 이렇다할 반격도 못하고 있었다. 몇 대의 M36 잭슨 대전차 자주포가 대응사격을 하기는 했지만 독일군 전차들에게는 거의 명중이 되지 않았고 명중된 전차들도 대부분이 쾨니히스 타이거 전차였다. 독일군의 매복 지점과의 거리는 무려 1.8km나 벌어져 있었다. 장갑이 강력한 독일전차들에게 승리의 여신이 미소지은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진격해 들어가는 대로 진지에 포진한 독일군은 아군 전차를 정확하게 조준하여 공격하고 있었지만 반면 아군 전차들이 발사한 포탄들은 날아오는 적탄들을 피하던 도중 발사한 것이라 그런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우어 대령은 이 처참한 상황을 바라보며 두 발을 동동 구리고 있었지만 그 안타까움이 지금 속수무책으로 격파당하고 있는 전차대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선두에 섰던 1개 중대 규모의 M4A3E2 셔먼 전차들은 이제 3대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중장갑을 앞세워 독일군의 대전차포 진지를 향해 철갑탄을 날리고 있었지만 강력한 장갑과 주포로 효율적인 방어전을 펼치는 독일군의 공격에 오래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포탑 전면 177mm의 장갑에 대하여 효과적인 공격이 되질 않자 언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점에 포진해 있던 독일군의 88mm Pak 43/71 대전차포들이 일제히 측면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목표의 조준을 마친 듯한 포병들이 포신을 최대한 낮춘 채 철갑탄을 발사하였고 그 철갑탄은 빠른 속도로 M4A3E2 점보 셔먼의 차체 측면을 향해 날아 들어와 작렬하였다.
  "쾅!"
  "펑! 퍼펑!"
  요란한 폭음과 함께 가장 오른쪽에서 대전차포 진지를 공격하던 장포신 76mm포를 탑재한 M4A3E2  점보 셔먼 한대가 그대로 폭발을 일으키며 주위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우어 대령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그 전차의 잔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당시 탄약고에 폭탄을 피격 당해 대폭발을 일으킨 전함 아리조나호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이 곳을 향해 몰려오고 있는 미군 기갑부대의 고전을 예고하는 하나의 신호탄과도 같은 것이었다.




社道光嘆 (2003-06-07 22:58:28)  
역시 잘 쓰십니다. d(+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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