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님 작 <끝없는 전쟁> 완결!

로그인  회원가입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3)
키루스  2005-07-26 21:53:48, 조회 : 2,963, 추천 : 6


  자정이 지나고 밤이 깊어짐에 따라 황궁 안의 잔치는 더욱 농밀하면서도 야릇하게 변해갔다. 다수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황제와 매우 친한 혹은 세력이 강한 사람들만 남아서 그들만의 잔치를 즐겼다. 조명은 더욱 환해졌고, 고급술과 요리가 끝도 없이 날라져 왔다.

  토하는 약을 먹은 필리푸스는 지금까지 먹은 것들을 모두 토해낸 후, 다시금 의자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무희들의 춤을 보면서 미식과 미주를 즐겼다. 그런 그를 누군가가 불렀다.
  “프린켑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갑자기 필리푸스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로마에서 황제를 뜻하는 칭호에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프린켑스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는 그 중에서도 특히 프린켑스란 칭호를 싫어했다.

  프린켑스는 ‘제 1인자’라는 의미로서 원래 공화정 시대에는 원로원 회의에서 제일 먼저 발언할 권리를 가진 사람을 칭하는 언어였다. 그러다가 제정에 들어와서 황제가 언제나 원로원 회의에서 제일 먼저 발언할 권리를 독점하게 되었고, 또 ‘황제는 단지 로마 시민 가운데 1인자일 뿐,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다.’란 의미로 황제를 프린켑스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대단히 특별한 인간이라고 철통같이 믿고 있는 필리푸스로서는 무지한 시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프린켑스란 칭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라서 기분이 나빠진 탓에 홱 돌아서서 뭐라 쏘아주려 했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 고르디아누스, 오랜만입니다. 언제 로마에 돌아오셨습니까?”
  “방금 왔습니다. 오자마자 프린켑스의 존안을 뵙고 싶어서 즉시 달려왔지요.”
  “하하, 이거 영광입니다.”

  상대는 원로원 의원 중에서도 특히 세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루키우스 푸리우스 고르디아누스였다. 올해 쉰다섯 살인 고르디아누스는 로마 전체에서 손꼽힐 정도로 명문 출신이었고, 황제에 버금갈 정도의 재력을 자랑했으며, 인간관계도 좋아서 많은 의원들이 그를 따랐다. 그는 사업 문제로 북아프리카에 몇 달간 체류했다가 로마로 돌아온 참이었다. 워낙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지니고 있는 고르디아누스였기에 가뜩이나 원로원에 비굴한 태도를 자주 보이는 필리푸스는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그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오늘은 고르디아누스를 위해 특별히 재미있는 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허허,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저야 어차피 피곤해서 금방 돌아갈 참이었는걸요.”

  “아니, 부디 사양하지 말아주십시오. 천하의 고르디아누스께서 모처럼 방문해 주셨는데, 제가 어찌 그냥 돌려보내드리겠습니까.”
  “허허, 이러시면 곤란한데.......”

  고르디아누스는 필리푸스의 달콤한 아부가 기분 좋았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승낙도 거절도 아닌 묘한 대답을 했다. 기회를 포착한 필리푸스는 즉시 비서관을 불러다가 뭐라고 명령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물러난 비서관은 잠시 후 두 손으로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비서관이 상자 안에 가득 든 금은보화를 무희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언가 나직하게 얘기하자 무희들의 눈에 탐욕스런 기름기가 돌면서 다들 열렬히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는 사이에 조명이 차츰 어두워지더니 어느새 무희들이 있는 곳만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음악가들은 말초 신경을 묘하게 자극하는 묘한 음률을 연주했다.

  기이한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순간, 갑자기 무희들이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무희들은 처음부터 무척 얇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던지라 옷 벗기 작업은 순식간에 끝났다. 이어서 그들은 날씬한 팔다리를 흐느적거리고 풍만한 젖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면서 현란한 율동을 보였다.

  고르디아누스는 잘 숙성된 포도주를 마시면서 무희들의 나체 춤을 관람했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탄탄한 육체와 정력을 지니고 있는 그는 벌써 성욕이 치미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민감하게 포착한 필리푸스는 재빨리 또 다른 제안을 했다.

  “어떻습니까?”
  “아주 멋지군요.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춤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무희들 중에 마음에 드시는 여자가 있으면 아무나 골라 가지시지요. 제가 선물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글쎄요. 다들 워낙 예뻐서 쉽게 고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시다면 또 하나의 쇼를 하면 어떨까요?”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쇼가 있습니까?”
  “끝내주는 게 하나 있죠.”

  필리푸스가 비서관에서 살짝 손짓을 하자 비서관은 즉시 바쁘게 움직였다. 몇몇 사람들이 오가면서 무희들과 필리푸스, 고르디아누스 사이의 일직선 통로에 수십 개의 촛대들을 이열로 놓았다. 준비가 완료되자 필리푸스는 일어나서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자, 거기 있는 무희들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하겠다. 여기에는 나와 고르디아누스가 있고, 너희 무희들과의 사이에는 촛대들이 늘어서 있다. 이 촛대들을 지그재그로 돌아서 제일 먼저 우리에게 안기는 여자들에게 오늘 밤 총애를 내리도록 하겠다.”

  무희들의 눈빛이 더더욱 영롱하게 반짝였다. 어차피 이곳에 모인 무희들은 다들 창녀를 겸하는 여자들이다. 그녀들에게는 이 나라의 황제인 필리푸스나 유력한 원로원 의원인 고르디아누스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은 곧 큰돈을 챙길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잘만 하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절로 의욕이 솟아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종류의 이벤트는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여자들에게는 뭔가의 짜릿한 느낌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무희들 중에는 벌써 흥분해서 몸을 비비 꼬는 여자도 있었다.

  이윽고 필리푸스가 마치 전차 경주의 출발을 알리듯이 근엄한 폼으로 하얀 손수건을 허공을 향해 던졌다. 손수건이 바닥에 닿는 순간 무희들은 일제히 출발했다. 하얀 나신이 어스름한 촛대 사이를 유영하면서 색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출발한 지 30초도 지나기 전에 무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면서 필리푸스와 고르디아누스의 품에 뛰어들었다.

  퇴폐와 욕정으로 가득 찬 밤이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Ⅱ




  로마력 1003년 6월 21일, 베오그라드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듯이 찌뿌드드했다.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살리나토르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불쾌한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신병 훈련소를 나와서 이 곳 베오그라드의 제 4플라비아 군단에 배속되었지만, 살리나토르의 나날은 신병 훈련소에 있을 때와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매일 똑같이 군대식의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체력 훈련, 창검술 훈련, 말타기 훈련, 집단 전술 훈련, 모의 실전 등 갖가지 훈련을 거듭할 뿐이었다. 게르만 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고, 실전 감각을 계속 유지해야 했기에 조금이라도 훈련을 게을리 할 수는 없었다.

  훈련 외의 시간에는 목욕이나 가벼운 도박 혹은 레슬링 등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가도 및 공공시설 보수, 다리 만들기, 초소 만들기 등 몇 가지 부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로마군에는 따로 공병이 없었고, 필요할 때는 모든 병사들이 즉시 공병으로 변하는 시스템이었다. 실제로 로마 제국 곳곳을 연결하는 수많은 가도들을 비롯해 로마의 도시 여러 곳은 로마 군단병들이 건설했다.

  약간 무료한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언제 있을지 모르는 첫 실전을 대비해서 열심히 훈련을 하고 무기를 손질했다. 그러는 동안에 우연히 같은 군단에 배속된 절친한 친구 프로부스를 만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도 교우 관계를 넓히면서 새로운 친구 루키우스 카루스를 사귀었다. 카루스도 프로부스와 같은 속주민으로서 보조병 소속의 기병이었다.

  살리나토르는 이 둘과 친해지고, 또 군단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 군단 안의 계급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장교와 사병들 간에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사병이더라도 군단병과 보조병은 엄연히 대우가 틀렸고, 거기서 보병과 기병은 또 대우가 틀렸다. 어쨌든 로마는 피라미드형 계급 사회였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속주민은 어디에서나 구별되었다. 또 기병은 보병보다 전투력이 높고 귀했기에 보다 나은 대우를 받곤 했다.

  살리나토르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기병이었으므로 다른 사병들보다 급료, 각종 비용 계산, 숙소 등에서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군대에 오기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점이었지만, 살리나토르는 그의 아버지 가이우스 율리우스 덕분에 남보다 훨씬 앞선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 때때로 프로부스와 카루스는 살리나토르에게 부러움을 표하곤 했는데, 살리나토르는 그냥 웃어넘겼다.

  여러 면에서 남보다 편하긴 했지만, 아직 그런 차이를 민감하게 느끼거나 이용하기에는 세상 경험이 부족했다. 프로부스나 카루스도 가볍게 부러움을 표할 뿐, 특별한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마는 위로 가는 통풍구, 이른바 출세 코스가 늘 충분하게 열려 있었기에 출발선이 다소 늦어도 본인이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실제로 속주민 출신으로 군단에서 전공을 세워 차근차근 출세해서 황제의 자리까지 올라간 인물도 있을 정도였다.    
    
  



  
      


바른생활 NZEO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2017-08-21
10:00:31


최홍석
먹고 마시는 잔치 보니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로마를 망하게 한 원인 중 하나는 납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냥 참고만 해 주셨으면 합니다.

1. 납으로 된 상수도관
2. 납으로 된 유약을 칠한 그릇
3. 그 그릇에 포도즙을 넣고 끓인 '사파'라고 불리는 시럽(단맛 때문에 좋아했다는데, 단맛이 나는 이유는 아세트산납 때문이라는군요.ㅡ.ㅡ...-_-;;;)
4. 필기도구 : 납(!!!)(여담으로, 흑연이라는 이름이 생긴 이유도 검은색인데 천 년 전에 쓰던 납보다 글씨가 잘 써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답니다.(납으로 쓰면 당연히 글씨가 회색이 되죠. 땜납 들고 글씨 써 보시면 감 오실 겁니다.(먼산)) 나중에 이게 탄소라는 것이 알려지고, graphite라고 명명되기 전까지 '검은 납'이라 불렸고, 연필심이라고 할 때 연이 바로 납을 뜻합니다.)
2005-07-28
01:15:10

 


박민규
그렇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납으로 로마가 망했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것으로 추정되어서인데 상수도관의 경우 납의 독성을 중화시킬 장치를 따로 마련해 두기도 했습니다. - 출처 :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참고. 2005-07-28
09:12:05



최홍석
납중독인지는 몰라도 당시 시대에 납을 무진장 많이 썼다는 뜻이 되겠죠.(땜납으로 글씨쓰기의 압박은 -_-;;;) 그리고 납으로 된 상수도관 정도로 납중독이 될 만큼 녹아나오려나는 생각해 볼 문젭니다. Ksp의 문제가 생기겠군요.
그리고 제가 방금 전에 쓴 글들의 출처는 'Chemistry'라는 책입니다.(소설보다는 조금 낫겠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납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이 소설에서 바란 건 아닙니다. 단지, 고증할 때 참조하시라는 뜻에서 올려 봤습니다.
p.s P206/P207 함량변화가 대대적으로 일어난 첫 시기가 로마제국 때라지요.-_-
2005-07-28
13:30:06

 


무엘
글쎄요. 납중독설은 지금은 폐기되었는데.... 상수도관의 경우는 의외로 회성분이 많아서 현재 남아있는 유적에도 하얗게 남을 정도 입니다. 납관도 물에 함유된 석회가 벽에 들러붙어서 그렇게 심한 효과는 안냈을 거라고 하네요. 로마인 이야기를 참고하시길... 2005-07-29
01:50:54



football
Hello Everyone! I like watching <a href=http://www.finsfootball.com/bbc-football>bbc football</a>. I usually watch <a href=http://www.finsfootball.com>football online</a> as I do not have PVR. How about you? 2011-02-19
19:37:02



Taro
Artlices like these put the consumer in the driver seat-very important. 2012-07-01
08:31:54



bfarufwl
bKyOvT <a href="http://axukyfxkajqg.com/">axukyfxkajqg</a> 2012-07-01
18:12:29



hbidkkowqs
IYEa5t <a href="http://laxczgsfbbab.com/">laxczgsfbbab</a> 2012-07-03
16:37:56



Name
Password
Comment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155  <살리나토르 전기> 작가 공지.......  [28]  키루스 2005/08/19 6 2599
154  <살리나토르 전기> 막간의 휴식.........(4)  [675]  키루스 2005/08/15 2 4005
153  <살리나토르 전기> 막간의 휴식.........(3)  [3]  키루스 2005/08/12 6 1571
152  <살리나토르 전기> 막간의 휴식.........(2)  [4]  키루스 2005/08/10 6 1498
151  <살리나토르 전기> 막간의 휴식........(1)  [2]  키루스 2005/08/07 5 1632
150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7)    키루스 2005/08/05 3 1833
149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6)  [5]  키루스 2005/08/02 2 1659
148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5)  [4]  키루스 2005/07/30 4 1540
147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4)  [4]  키루스 2005/07/28 11 1687
 <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3)  [8]  키루스 2005/07/26 6 2963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16]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