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님 작 <끝없는 전쟁>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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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4)
키루스  2005-07-28 22:28:38, 조회 : 1,682, 추천 : 11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려는 순간, 마침내 잔뜩 찌푸려져 있던 하늘이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비는 조금씩 굵어지더니 어느 새 세차게 땅바닥을 때렸다. 살리나토르의 붉은 머리칼, 갑옷, 튜닉이 흠뻑 젖어서 무겁게 늘어졌고, 얼굴 위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살리나토르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훔치고,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 했다.

  그 때였다. 뿌우우우! 커다란 뿔피리 소리가 군단 기지 안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모든 병사들에게 당장 비상 집합할 것을 명하는 음향이었고, 살리나토르는 즉시 발걸음을 돌려서 연병장을 향해 뛰어갔다. 배가 무척 고팠지만, 그런 걸 챙길 상황이 아니었다.

  연병장 안에는 이미 수많은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제 4플라비아 군단의 장병들이 모두 모이자 군단장 안니우스 갈루스가 연단 위로 올라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지금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방금 전 약 4만 명에 달하는 야만족들이 도나우 강을 건넜다.”
  연병장 안을 가득 채운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과 소란스러움이 떠돌았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본 고참병들은 그래도 나았지만, 살리나토르를 비롯한 신병들은 무척 놀라는 기색이 완연했다. 전쟁이란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이, 늘 이렇게 느닷없이 찾아온다.  

  “조용, 조용, 모두 조용히 하라!”
  갈루스는 세찬 비를 맞아가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후, 연병장 안을 감돌던 웅성거림이 가라앉자 다음 말을 꺼냈다.  

  “우리 군단은 지금 즉시 야만족 토벌에 나선다. 모두들 빠르게 준비를 갖추도록 하라. 한 시가 급하다. 또한 기병대 중에서 제 7, 8, 9켄투리아(백인대)는 본대에 앞서 먼저 출발하여 야만족들의 이동로를 정찰한다. 자, 모두 서둘러라!”

  군단장의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연병장 안이, 아니 군단 기지 전체가 거대한 소란에 휩싸였다. 1만여 명의 병사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무기, 갑옷, 식량 등을 챙겼고, 각종 고함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수많은 깃발이 펄럭이고, 다들 준비를 갖추는 대로 자기 부대를 찾아 뛰어갔다. 대대장, 백인대장 등 여러 장교들은 제각기 휘하의 사병들에게 세부 명령을 하달했다. 아무리 평소에 준비를 잘한다 해도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혼란을 피할 도리가 없다. 실전이 가져다주는 긴장감과 부담감은 훈련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살리나토르는 제 8켄투리아 소속이었다. 따라서 본대보다 빠르게 출동해야 했기에 남들보다 훨씬 더 서둘러야 했다. 그는 그야말로 붉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릴 정도로 뛰어다녔다. 비는 계속 거세게 쏟아졌고, 발이 닿는 곳마다 빗물이 튀어서 정강이와 허벅지를 적셨다. 아까운 점심 식사는 날아가 버렸지만, 이상하게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미련도 없었다. 첫 실전이라는 거대한 명제가 그의 어깨를 묵직하게 짓눌렀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뛰었다.

  갑옷은 원래 입고 있었고, 방패, 창, 칼, 약간의 건량 등을 챙긴 후, 바로 마굿간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마굿간 역시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고막을 어지럽히는 온갖 소음을 한 귀로 흘리면서 자신의 말을 끌어내서 재갈을 물리고 안장을 얹었다. 이어서 등자가 없는 상태에서도 멋진 동작으로 단숨에 말 위에 뛰어올랐다. 바로 재갈을 당겨서 뛰어나가려는데 눈앞에 몇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여어, 벌써 준비를 다 끝낸 거야? 역시 빠르군.”
  절친한 친구인 프로부스와 카루스였다. 그들은 보조병으로 구성된 제 11켄투리아 소속이었기에 본대와 함께 출발하게 된다.

  “난 서둘러야 하니까.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항상 좋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그야 로마 시민은 그 권리를 가진 만큼 의무도 지는 거니까. 그래서 우리들도 인정해 주는 거잖아.”
  프로부스가 가볍게 살리나토르의 농담을 받아넘기자, 카루스도 웃는 얼굴로 끼어들었다.

  “야, 그리고 우리 모두 첫 실전인데, 왠지 떨리지 않냐? 난 여자하고 잘 때보다도 더 심하게 심장이 뛰는 걸.”
  살리나토르는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난 여자하고 자보지 않아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군. 하지만 긴장되는 건 사실이야.”
  프로부스와 카루스의 눈동자에서 갑자기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졌다.

  “반드시 살아 돌아와라. 첫 실전부터 죽음의 강을 건너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래, 특히 넌 아직 여자 맛도 모르니까 더더욱 죽으면 안 돼. 총각귀신이 얼마나 억울한 건지 알아?”  
  “물론이지. 이런 데서 죽기엔 내 맹세가 아깝다고. 이 세상에서 야만족들을 멸할 때까지 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도 죽지 않게 조심해라.”

  “좋았어! 잘 가라. 네게 군신 아테나의 가호가 있기를.”
  “너희들에게도 아테나의 가호가 있기를 빈다.”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살리나토르는 즉시 말의 재갈을 확 채면서 발뒤꿈치로 말의 옆구리를 찼다. 히힝! 말은 커다란 울음소리를 들면서 앞발을 크게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세차게 뛰어나갔다. 말발굽 소리가 울리면서 빗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군단 기지의 한 쪽으로 말을 달린 살리나토르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제 8켄투리아 소속의 장병들과 조우했다. 백인대장이 나서서 병사들에게 일장 훈시를 했다.

  “잘 들어라. 우리의 임무는 야만족들의 이동로, 규모 등을 정찰하고, 아군의 진격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만약 낙오된 적병이 있다면 죽여 버려야 하겠지만, 그 외에는 되도록 싸움을 피해야 한다. 우리가 본대에 앞서서 빨리 출발하는 목적은 적을 정찰하는 것이지, 적과 싸움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란 점을 명심해라. 함부로 날뛰다가 야만족 대부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위에 부딪힌 계란 꼴이 나고 말 거다. 지금은 만용을 부릴 때가 아니란 말이다. 가슴 속에 단단히 새겨 둬라. 알겠나?”

  “옛!”
  수백 명의 우렁찬 함성이 비구름 때문에 대낮부터 어두운 주위를 메아리쳤다.
  “좋아, 모두 출동!”

  백인대장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함성 소리와 말울음 소리가 사위를 가득 메웠고, 로마군 제 4플라비아 군단 기병대 소속 제 8켄투리아의 장병들은 일제히 출발했다. 제 7, 9켄투리아도 차례로 그들과 합류했다. 300여 개에 달하는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렸고, 빗방울은 산지사방으로 튀었다. 쏟아져 내리는 빗발 사이로 그들의 뒷모습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Ⅲ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거세게 쏟아졌다. 가끔씩 번쩍 하는 섬광이 로마군 기병들의 눈을 어지럽혔으며, 우르릉 쾅쾅 하는 천둥소리가 귀청을 울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을 무시한 채 계속 달리기만 했다. 사람 과 말들의 세찬 호흡이 하얀 공기덩어리로 변해서 빗방울 사이로 사라져 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주위가 조금 더 어두워진 것 같기는 했지만, 워낙 좋지 않은 날씨가 계속되었기에 하늘을 보면서 시간을 판별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이제는 배가 고프다 쓰린 것으로 보아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기는 했다. 그동안 로마군 기병들은 식사는 커녕 잠시도 쉬지 못한 채로 도나우 강을 건너 침입해 온 게르만 족들의 흔적을 쫓아서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계속해서 퍼붓는 빗발이 게르만 족들의 냄새를 비롯해 땅에 남은 흔적의 대부분을 지워버려서 추격 작업은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각 켄투리아를 이끄는 백인대장들은 역시 노련했다. 그들은 아주 약간의 흔적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적의 이동로를 정확히 추론해 내고 추격을 계속했다. 백인대장들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전장에서 보낸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었다. 군단장이나 속주 총독 같은 고위 장군들도 백인대장들의 경험과 전투능력을 존중할 정도였다.

  처음 한동안은 잘 포장된 로마 가도 위만을 달렸기에 속도가 무척 빨랐다. 네모진 돌을 쭉 깔아서 이루어진 로마 가도 주위에는 배수로까지 잘 갖춰줘 있어서 비가 별로 추격에 방해되지 않았다. 사방으로 튀기는 빗물이 가끔씩 얼굴이나 몸에 묻는 정도가 다였고, 그거야 이미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푹 젖은 병사들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결국 로마 가도를 벗어나야 했다. 게르만 족들은 처음에는 로마 가도를 통해 로마 제국 영토 내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오지만, 나중에는 가도가 아닌 다른 길을 통해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로마군의 추격을 둔하게 하는 것과 동시에 가도로 이어진 군사 기지들을 피해서 한적한 시골 마을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추격도 가도를 벗어나서 다른 길을 달리게 되었는데, 이게 또 상당한 고역이었다. 네모반듯한 돌로 잘 포장된 가도와는 달리 다른 길들은 그냥 흙으로 이루어졌기에 비 때문에 잔뜩 질척질척해져 있었고, 말발굽이 푹푹 빠져서 속도를 내는데 심하게 방해되었다. 게다가 배수가 잘 안 돼서 가는 곳마다 물웅덩이들이 널려 있었고, 말이 그곳을 밟을 때마다 커다란 물보라가 튀어서 시야를 가렸다. 어떤 재수 없는 병사는 말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헤딩하기도 했다.  
  
    



  
  


바른생활 NZEO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2017-06-29
23:14:12


지크프리드
로마에서는 아테나가 아니라 미네르바라 해야하지 않나요?ㅡ.ㅡ 2005-07-28
23:53:23

 


Leo
What a neat article. I had no ikninlg. 2012-07-02
02: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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