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님 작 <끝없는 전쟁>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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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나토르 전기> 첫 실전..........(7)
키루스  2005-08-05 10:16:00, 조회 : 1,849, 추천 : 3


  5개 군단, 약 5만 명의 로마군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바쁘게 움직였다. 우선 숙영지를 모두 철수하고, 대군이 머물렀던 흔적을 깨끗이 지웠다. 기병은 말에 재갈을 물렸으며, 중무장 보병과 함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숨었다. 궁병과 투석병은 제각기 공격하기 편한 지점을 잡았다.

  찌는 듯한 무더위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무척 힘들었다. 땀에 젖은 몸은 불쾌한 냄새와 끈적거림을 유발했으며, 갑옷과 투구는 평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도 병사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드디어 고대하던 기회가 왔다. 여기서 경거망동해서 적이 매복을 눈치 채게 할 멍청이는 없었다.

  마침내 사르마티아 족 부대가 손 안에 잡힐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사르마티아 족들은 바로 앞에 개미지옥이 존재하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유쾌하게 떠들거나 잡혀온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길을 재촉했다. 로마군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다가와라. 조금만 더....... 됐다!
  “쏴라!”

  배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묵직한 호령과 함께 제일 먼저 나선 것은 크레타 출신 궁수들이었다. 로마 군단 소속의 보조병들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활쏘기 실력으로 유명한 크레타 궁수들은 원거리에서 정확한 사격으로 사르마티아 족들을 하나하나 거꾸러뜨렸다.

  사람과 말의 비명이 일제히 여름 하늘 아래를 어지럽혔으며, 듣기에도 섬뜩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고 인마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평화로웠던 여름 정경은 대번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이야앗!”

  크레타 궁수들에 이어 마요르카 출신 투석병들이 기합을 넣으면서 달려 나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면서 가죽끈이 빙빙 돌더니 곧바로 주먹만한 돌멩이를 토해냈다. 빗발치는 쏟아지는 화살 사이로 돌로 만들어진 우박이 섞였다. 인마의 살상은 더욱 가속도를 띄었다.  

  유혈과 혼란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사르마티아 족 전사들은 말을 몰아서 로마군을 향해 돌격했다. 일단 마음 높고 화살과 돌멩이를 퍼붓는 저 궁병과 투석병을 저지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속절없이 이쪽의 피해만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사르마티아 족의 앞을 긴 창과 방패의 숲이 가로막았다. 로마군 중무장 보병들은 방패로 적 기병의 돌격을 막아내면서 창으로 말머리를 찌르고 몽둥이로 말의 다리를 후려쳤다. 말이 크게 울면서 기수를 떨어뜨리고 스스로도 땅바닥에 엎어져서 고통스런 몸부림을 쳤다. 말에서 떨어진 병사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중상이었지만, 대부분은 통증에 신음할 사이도 없이 살해당했다.

  사르마티아 족의 저항도 완강했다. 그들은 송곳처럼 로마 군단병들의 사이를 뚫고 들어와서 창칼과 도끼로 주위를 후려쳤다. 로마군의 얼굴이 쪼개지고 목이 베어져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일부 보병들은 사르마티아 족 기병의 말발굽에 짓밟혀서 머리가 깨지고 갈비뼈가 부서지고 팔다리가 부러졌다. 동료의 죽음에 분노하면서 힘껏 내찌른 창에 한 사르마티아 족이 배를 찔려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낙하했다. 거센 육박전을 벌이는 그들이 머리 위로 새로운 화살과 돌이 쏟아졌다.  

  1만 명 가량의 사르마티아 족 기병들이 로마군의 측면을 치기 위해 전장을 크게 우회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뿌우우우! 출전을 뜻하는 뿔피리 소리가 들판을 울렸고,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던 수천 명의 로마군 기병대가 언덕 너머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이 말 위에 타고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주위에 위압감을 뿜어낸다. 그러니 수천 명의 기병이 창과 방패를 치켜들고 언덕 위에 버티고 선 모습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함성 소리와 함께, 3개 코호트, 3천 명의 기병이 일제히 돌격했다.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으며, 흙먼지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일어났다.

  당연히 사르마티아 족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그 거센 돌격에 맞섰다. 두 개의 돌개바람이 부딪치면서 쇠붙이끼리의 강렬한 충돌로 불꽃이 튀겼다. 말의 투레질 소리와 인간의 거친 호흡이 고막을 파고들었고, 흙먼지로 가득 찬 주위 공기 속에 핏방울과 살조각이 더해졌다.

  살리나토르는 있는 힘껏 창을 내찔렀다. 쨍! 적병과 살리나토르의 창과 방패가 서로 부딪히고 불꽃을 튀기면서 미끄러졌다. 살의에 가득 찬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던 그들은 서로의 육체를 세게 부딪치면서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곧바로 말고삐를 세게 잡아당긴 살리나토르는 그대로 뒤돌아서면서 방패를 횡으로 휘둘렀다. 계산대로 살리나토르의 방패는 적병이 탄 말의 엉덩이를 두들겼다.

  원래 말을 타고 최고 속력으로 돌격하다가 갑자기 멈추는 것은 대단히 시행하기 어려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갑자기 말머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살리나토르는 그걸 해낸 것이다. 그의 말타는 솜씨는 신기에 달한 수준이었다. 상대를 어린 소년이라고 얕보던 적병은 설마 살리나토르가 이렇게 뛰어난 기수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꼼짝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느닷없이 엉덩이를 맞고 놀란 적병의 말은 큰 소리로 울면서 앞발을 크게 들었고, 적병은 말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낙마하고 말았다. 아픈 허리를 쓸면서 간신히 머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살리나토르가 탄 말이 그의 눈앞에서 앞발을 크게 들고 내리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적병의 얼굴이 5층에서 떨어진 메주처럼 찌그러졌다.

  기가 막힌 묘기로 적병을 장사 지낸 살리나토르는 쉴 새 없이 말을 몰아서 즉시 전장을 이탈했다. 한참 밖으로 나가서 아군과 합류한 그는 다시 전장을 향해 최고 속력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이번에는 살리나토르의 창이 다른 사르마티아 족의 방패를 종이처럼 꿰뚫었다. 창끝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의 창이 상대의 가슴을 가르고 들어가서 폐를 찌른 것이었다. 살리나토르의 투구와 갑옷에 피가 튀었다.

  사르마티아 족은 갑옷도 투구도 쓰지 않고 거의 벌거숭이 상태로 싸우기 때문에 방패만 뚫으면 곧 맨살이다. 어떤 병사들은 방패도 없이 오직 무기만 휘두르면서 싸우기도 한다.  

  단 일격에 적을 죽였지만, 그 대신 창을 잃었다. 적병의 몸에 꽂힌 창이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수많은 기병들이 얽히고 설키는 치열한 전장에서 빠지지 않는 창을 가지고 실랑이하는 바보는 숨 쉴 틈도 없이 저승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미련 없이 창을 버린 살리나토르는 곧바로 칼을 빼들고 횡으로 휘둘렀다. 경동맥이 베어진 한 사르마티아 족이 목을 움켜쥔 채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분수처럼 뿜어진 피는 뭉게뭉게 일어나는 흙먼지 속에 묻혔다.  
  
  좌우로 칼을 휘둘러 사르마티아 족들을 하데스의 관할 구역으로 보내던 살리나토르의 시야에 한 적병이 빠르게 뛰어들었다. 깜짝 놀란 살리나토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방패를 들어 적병의 몽둥이를 막았고, 그 순간 몸 전체가 기우뚱하는 충격에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수천, 수만의 기병이 얽혀 싸우는 이런 전장에서 말에서 떨어졌다간 살아남을 확률이 0에 수렴하게 된다. 다행히 뛰어난 솜씨로 재빨리 말 위에서 균형을 잡은 살리나토르는 급하게 말고삐를 돌려서 적병이 추격해 오기 전에 전장을 벗어났다.

  그는 열심히 말을 달려서 진영의 후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천 개의 수레가 있었고, 수레마다 창, 칼, 몽둥이, 활, 화살, 방패 등 무기와 방어구가 가득했다. 싸움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무기를 잃어버리거나 아예 망가지기 마련이고, 그럴 때 재빨리 새로운 무기를 보급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날이 잘 선 창 하나를 골라 든 살리나토르는 다시 전장을 향해 달렸다.

  싸움이 점차 격렬해짐에 따라 승기는 점점 로마군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비록 기병의 수는 사르마티아 족이 훨씬 많았지만, 오랜 전통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술에 따라 기병, 경무장 보병, 중무장 보병이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차츰차츰 적의 주력을 무력화시켜가는 로마군을 감당해 내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기습을 당한 탓에 초반에 화살과 투석에 큰 피해를 본 것도 단단히 한몫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일부 부대가 약탈품을 포기한 채 달아나려 했지만, 그들의 양 측면에서 상처 없는 로마 기병 2개 코호트가 달려들었다. 전면전보다는 오히려 추격전에서 더 많은 전과가 나오기 마련, 수많은 사르마티아 족들이 로마군에게 등과 옆구리를 찔려 죽었다. 겨우 지옥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이번에는 약 6천명의 중무장보병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의 대부분의 사르마티아 족들은 이 땅에 뼈를 묻어야 했다.

  살리나토르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워낙 거칠게 말을 달린 탓에 엉덩이와 허벅지가 무척 아팠고, 얼마나 많이 창칼을 휘둘렀는지 오른팔이 뻐근하다 못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온몸에 맥질한 피는 적의 피인지 내 피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과 혼합된 피는 끈적끈적하고 불쾌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래도 살리나토르는 싸움을 멈추지 못했다. 심한 피로 속에서도 오히려 정신은 맑아졌으며, 자줏빛 눈동자는 더욱 생기에 가득 차서 반짝였다. 벌써 여섯 시간이 넘도록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에 든 창을 죽어라 도망치는 한 적병의 등을 향해 힘껏 찔렀다. 푹 박히는 느낌이 전해져오면서 또 하나의 살생이 완성되었다.

  한창 정신없이 싸우던 살리나토르의 귀에 기운찬 뿔피리 소리가 침입했다. 추격을 그만두고 본진에 모이라는 신호였다. 어느 새 서산에는 새빨간 황혼이 불타오르고 있었으며, 주변 들판과 구릉은 말 그대로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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