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님 작 <끝없는 전쟁>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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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3)
키루스  2004-09-22 16:29:19, 조회 : 4,364, 추천 : 18



단기 4341년 5월 4일 11:52, 중국 훈장 시 근방

  드넓은 평원 위에 몰개성적인 듯 하면서도 의외로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쇳덩어리들이 잔뜩 몰려들었으며, 새로운 강철의 물결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셀 수도 없는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뭐라고 외쳤으며, 그 육성을 수백 가지 종류의 엔진 구동 음과 각종 소음이 묻어 버렸다. 특히 헬기 로터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심했다. 이 근처에 얼마나 많은 헬기가 모였는지, 사람보다 헬기가 더 많아 보일 정도였다.

  밤을 새워가며 압록강과 두만강을 도강한 수십만 명의 여미일 연합군은 이곳 훈장 시 근방에 재집결했다. 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갖추고 있으며, 연합군의 선봉을 맡아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고려군 78사단, 미군 82사단, 101사단은 이미 집결뿐만 아니라 정비와 보급까지 완료했다. 각급 제대 지휘관들에게 세부적인 작전 계획과 진격 루트가 모두 전해졌으며, 준비가 끝난 부대원들은 속속 헬기에 올라타고 하나씩 이륙했다.

  RAH-66 코만치, AH-64D 롱보우 아파치, UH-60P 블랙호크, OH-58D 카이오와 워리어, MH-47 치누크 등등 가지각색의 헬기들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열을 지어서 날아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전쟁이란 비참한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하게도 시야를 제한하거나 몇 가지 부분을 잘라버리면,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광경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인간이 이 전쟁이라는 고질병을 탈피하지 못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런지도 모른다.

  186cm, 98Kg, 식빵처럼 불룩거리는 근육질을 지닌 거한으로 바벨쯤은 젓가락처럼 다루는 고려군 제 78공수사단장 김호수 소장은 직접 헬기에 타고 선두에 서기로 결심했다. 깜짝 놀란 주위사람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우람한 육체를 블랙호크 수송헬기 속으로 구겨 넣었다.  

  “진정하십시오, 사단장님. 사단장님은 후방에서 부대 지휘를 맡아 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사단장님이 뒤에서 총괄 지휘를 해 주셔야 병사들이 마음 놓고 싸울 거 아닙니까?”

  “아, 시끄러! 내가 무엇 때문에 공수 부대에 자원하고, 지겹게 헬기에 타고 내리는 연습을 했을 것 같나? 나보고 전장에서 아득히 먼 후방에서 책상이나 지키며 폼이나 잡으라고? 웃기지 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렇게 똥 폼이나 잡는 놈들이야. 도대체가 제가 선두에 설 것도 아니면서 무슨 자격으로 병사들에게 죽으러 가라고 한단 말이야!”

  “하지만 명색이 사단장이신데 사단 전체의 지휘를 맡으셔야 하실 거 아닙니까?”  
  “내가 있는 곳에 사령부를 구성하고 휘하 부대를 지휘하면 되는 거야. 자고로 사령부가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수록 효율성만 떨어지는 법이지.”

  “위험합니다. 그러다가 피격당하기라도 하신다면........”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려우면, 방구석에서 발가락이나 후비지 뭐 하러 전쟁터에 나왔겠나? 전쟁터란 애초에 죽을 각오하고 나서는 곳이고, 전방이고 후방이고 없는 거야. 더 이상 잔소리는 듣기 싫다. 나는 내 방식대로 싸운다. 그러면 되는 거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78사단의 참모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블랙호크에 같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이 꼴통 새끼 때문에 내가 30년은 덜 산다니까’, ‘귀신은 뭐하나 몰라, 이 새끼 안 잡아가고’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헬기가 뜨는 것을 느끼면서 김호수는 가슴이 터져 나갈 듯한 흥분을 느꼈다. 이 위대한 작전, 제 3차 세계 대전의 승패를 가를 거대한 작전에서 내가 선두에 서는 거다. 내 손으로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거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 온 그에게 지금 이 순간은 가장 감격적이며 행복한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도 이 희열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절대로!

  수백 대의 헬기들은 맑디맑은 오월의 하늘을 유영했다. 북한의 공항에서 이륙한 수십 대의 수송기들이 하늘을 가득 덮은 헬기의 무리에 합류했다. 이미 수백 Km 전방에서는 무수한 무인 정찰기들이 떠다니면서 계속해서 정보를 수집, 송출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쐐액 소리와 함께 제트기가 스쳐 지나갔다. CAS(근접항공지원)를 위해 날아가는 연합군 전투기들이었다. 가끔씩 창공을 가르는 미사일이나 로켓의 꼬리도 눈에 띄었다.

  5월 4일 12:00, 드디어 여미일 연합군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 갈랴르호른 작전이 시작되었다. 역사의 급류는 세찬 폭포수로 변해 끝도 없는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단기 4341년 5월 4일 12:03, 연해주 상공

  개전 첫날의 대규모 공중전 이래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삼갔던 여미일 연합 공군은 이 날 12:00를 기점으로 아껴뒀던 물량을 한꺼번에 퍼부었다.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룬 비행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자부심이 대단했다. 특히 초음속 제트기를 몰고 다니는 공군 파일럿들은 유난히 자부심이 강해서 육군을 땅이나 박박 기는 땅개 취급하는 경향이 강했다. 원래 CAS가 위험하기도 하지만, 고작 땅개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공군은 어지간해서는 CAS에 나서지 않았으며, 주로 후방 군사 기지 폭격에만 몰두하곤 했다. 이것은 가장 많은 CAS를 기록한 전투기가 미 해병항공대 소속이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날만은 강력한 러시아 방공망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공군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CAS에 나섰다. F-22, F-15E, F-15K, KF-16, F-15J, F/A-18E/F 등등 수백 대의 전투기들이 만주와 연해주의 상공을 가득 메우고, 러시아 공군과 맹렬하게 싸우면서 러시아군 방어선을 집중 폭격했다. 심지어 기체 전체를 금으로 두른 것보다 더 비싸다는 미 공군의 스텔스 폭격기까지 다수가 폭격에 나섰다. 개전 첫날 북한 일대를 초토화한 이후로는 아예 이륙도 하지 않던 스텔스 기였다.

  이미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6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군의 주요 통신 기지와 지휘 시설을 폭파시켰다. 그 대가로 1기가 격추되고, 2기가 피격되어야 했다. 이어서 무수한 전폭기와 폭격기들이 계속해서 전선에 파견되었다.




  대 고려 국 공군 제 1024항공전대 소속 F-15K 스트라이크 이글 파일럿 정기휘 중령은 GPS로 자신의 위치와 폭격 목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 때, 조기공중경보통제기 E-737로부터 러시아 전투기 접근이라는 데이터링크가 들어왔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벌써 주변에 있던 호위기 F-22 랩터의 날개에서 암람이 하얀 연기를 끌며 날아갔다. 공대지 무장을 하도 덕지덕지 달은 탓에 대공 무장이라고는 기관포가 전부인 정기휘는 그저 랩터가 선전하기만을 빌 뿐이었다.
  
  “젠장.......”

  불안했다. 항상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 오던 정기휘로서는 사태가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약 5분 후에 바라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최동욱 중위입니다. 접근하던 Su-27 4기 중 2기는 격추했고, 2기는 달아났습니다.”
  “수고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지상지원이 중요하다고 해도 사이드와인더도 안 달아주는 법이 어디 있어. 공군작전사령부도 해도 너무 한다니까.”

  “하하, 염려 놓으시지요. 제가 안전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저는 그런 종류의 치사한 짓은 안 하거든요.”
  “......무슨 뜻이야?”

  “아니, 정 소령님 애인이 좀 예쁘다고 해서 일부러 정 소령님을 전사시킨 후에 위로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뭐, 이런 식의 치사한 짓은 안 한다는 겁니다. 남자답게 정정당당히.......”
  “이 새끼가, 너 허튼 짓 하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정기휘의 애인 최윤영은 수려한 이목구비에 늘씬한 몸매, 고운 마음씨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최고의 여자로 공군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동료 파일럿들은 모두 최윤영이 플레이보이 정기휘에게 속아 넘어간 불쌍한 피해자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아니, 정상적인 남자가 미인을 보고 접근하는 것도 이상한 겁니까? 대체 어떻게 그런 참한 여자를 꼬셨는지, 원. 윤영 씨가 정 소령님의 정체를 알아야 할 텐데.”
  계속되는 놀림에 정기휘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너 이 새끼 어디 돌아가서 두고 보자.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마.”
  “호오, 진심이십니까? 이젠 김근철 대령님도 두렵지 않으신가 보군요?”
  “......이런 씨발놈.”

  그러나 금방 수그러들고 말았다. F-22 랩터 24대로 이루어진 제 1021항공전대의 전대장 김근철 대령은 대 고려 국 공군 내에서 절대적인 기피 대상이었다. 인간성이 어찌나 사악하고 교활한지 한 번 걸리면 정말 두고두고 못살게 굴었다. 오죽하면 장성들도 김근철이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정도였다.

  다들 김근철의 부하가 된 1021항공전대원들을 불쌍하게 여겼지만,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김근철 아닌 다른 사람은 감히 그들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개도 제 밥그릇을 건드리면 으르렁거리는 법이었고, 누구도 남이 자기 부하를 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자기는 몽둥이로 부하를 패고 다니면서도 남이 머리만 쥐어박고 가도 화를 내는 것이 인간의 심리였다. 유명한 사디스트 김근철은 유난히 그런 경향이 심했으므로 정기휘는 자신의 밝은 미래를 위해 다소의 불쾌함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제길, 어쩌다가 이런 성격파탄자들이 랩터를 몰게 되었는지 원.......”

  이건 진심이었다. 정기휘는 나름대로 자신의 조종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그것을 인정받았기에 이 나라를 통틀어도 몇 기 되지 않는 F-15K의 파일럿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F-22의 파일럿이 되지 못한 것은 큰 불만이었고 김근철이나 최동욱, 최현필 같은 성격파탄자들이 금보다 비싼 랩터를 몰고 다닌다는 것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다. 아무리 조종 실력이 뛰어나고, 전술 입안 능력과 임기응변이 기가 막히더라도 저렇게 사악하고 광기 넘치는 놈들이 중용되다니, 세상이 어찌 되려는지 원........

  정기휘는 잡생각은 집어치우고 임무에 열중하기로 했다. 그가 기기를 살펴보면서 몇 가지 조작을 하자, 날개가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오면서 SLAM-ER 공대지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2분 후, 그의 기체를 포함해서 4기의 스트라이크 이글이 모두 한쪽으로 기울더니 차례로 급강하해 들어갔다.

제일 먼저 급강하한 정기휘의 임무는 방공망 제압이었다. 허공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폭발과 시끄러운 미사일 경보를 애써 무시하면서 정해진 고도에 이르자 버튼을 눌렀다. 무거운 클러스터 폭탄 2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날개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어서 애프터버너를 최대로 켜고 급상승해 빠져 나가는 그의 기체 꼬리에서 엄청난 양의 플레어가 투하되었다.

  클러스터 폭탄에서 분리되어 나온 수백 개의 자탄들은 대공포의 상당 부분을 침묵시켰다. 이어서 계속되는 폭발의 물결이 지상을 뒤덮고, 러시아군 기지 전체에서 새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기휘는 마지막으로 한 탄약 창을 향해 AGM-130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하고는 귀환했다. 그는 윤영이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룰 수 없는 꿈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바른생활 NZEO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2019-09-19
22:18:42


hathaway
아주 퍼 붓는 군요!

융단 폭격도 나왔으면 합니다.
2004-09-22
21: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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