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루스님 작 <끝없는 전쟁> 완결!

로그인  회원가입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11)
키루스  2004-10-15 16:33:55, 조회 : 3,853, 추천 : 22




단기 4341년 5월 4일 23:11, 우수리스크 서남쪽 157Km

  김도형 병장은 운전대를 세차게 틀었다. 한창 오른쪽으로 달리던 그의 K-2 전차가 왼쪽으로 세차게 방향을 틀었다. 김도형은 과속 딱지를 떼기 딱 알맞은 속도로 미친 듯이 달리면서도 브레이크를 거의 밟지 않고 계속해서 거친 방향 전환을 실시했다. 전차의 바로 옆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그 충격에 차체가 흔들리자 김도형의 과격 운전은 더더욱 심해졌다.

  “썅, 적당히 해! 하나도 못 맞히잖아.”
  “이런 거지같은! 너 내 허리뼈를 부러뜨릴 작정이냐?”

  전차장이며 포수 등이 불만을 토했지만, 김도형은 코방귀도 뀌지 않았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고 당신들이나 똑바로 하십시오. 내 운전 솜씨에 목숨이 달린 주제에 뭔 잔소리가 그리 많습니까?”
  “저런 썩을 놈의 새끼!”

  끔찍스러울 정도로 격렬한 전투 탓에 연합군과 러시아군의 소모는 엄청나게 빨랐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피해는 양군 사령관들의 눈과 입을 한계까지 찢어놓았다.

  한 K-1 전차가 T-80U의 포격을 맞고 박살났다. M-1A2 SEP2 전차 한대가 그 T-80U의 포탑을 날렸다. 2초 후에 이중목적 고폭탄 두 발이 그 미군 전차의 상부를 파고들었고, 그대로 차체를 주저앉혔다. 김도형의 전차에 달린 120mm 활강포가 불을 뿜었고, 이번에는 러시아 전차 한 대를 제대로 무력화시켰다.

전차에 설치된 연막이 자동으로 터지고, 유탄이 마구 발사되더니 대전차 미사일 몇 기를 떨어뜨렸다. 까앙! 거의 동시에 세찬 충격이 느껴지고 전차가 장난감처럼 흔들렸다. 천만다행히도 빗맞았는지 전차는 멀쩡하게 계속 달리고 있었다. 뒤에서 튀어나온 아군 K-1A1 전차가 그 가증스러운 T-90을 폭파시켰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거의 본능적으로 페달을 마구 밟으면서 운전대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 김도형의 눈에는 새빨간 핏발이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숨결은 천식 환자처럼 거칠었다.

  전장의 공포, 주변의 아군이 마구 죽어 넘어지고, 팔다리가 찢어지고, 쇳덩어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광경을 보면서 느껴지는 공포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 기록적인 속도로 정신병 환자를 양산하는 곳이 바로 여기, 전장이었다.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제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오직 하나, 희망이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 반드시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그 지독한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병사들을 계속 싸우게 한다.

  말수는 적어도 늘 성실하고 꼼꼼한 아버지, 잔소리가 심하지만 유난히 다정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매일 까불고 못살게 굴면서도 의외로 오빠를 챙겨줄 줄 아는 여동생, 대 고려 국 육군 병장 김도형은 가족사진이 박힌 펜던트를 주먹으로 꽉 쥐고는 살아 돌아가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거듭했다.



단기 4341년 5월 4일 23:34, 동북아 일대

  지상전은 계속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당연히 승리를 위해 모든 상급 부대의 지원을 몰아줘야 할 때인데, 의외로 그것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았다. 양쪽 다 해군의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동해의 함대는 둘 다 전멸했다. 그리고 서해의 여일연합함대 역시 처음에는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며 지상군을 지원했지만, 지금은 제 코가 석 자였다.

  거의 홀로 연합군과 맞서 싸우고 있는 러시아의 분노와 불평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국 역시 아군의 믿을 수 없는 참패와 러시아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사정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위대한 중화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반도국과 섬나라 놈들을 작살내고, 시끄럽기 짝이 없는 로스케 놈들도 닥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진격시킬 지상군 병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중국은 고려나 미국 또는 러시아처럼 예비 병력이 잘 갖추어져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 15억이란 인구가 무색하게도 동원 가능한 병력 수는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결국 있는 병력을 잘 써야 하는데, 제 1차 동북 대회전에서 기갑 전력의 1/3 이상이 지리멸렬한 타격이 너무 컸다. 흩어진 병력을 모아서 재편성하고 베이징 근처의 주력 부대를 진격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중국군 장성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무리 서둘러도 5월 6일은 되어야 동북 대평원에 대군을 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중화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주석 첸우핑은 그렇다면 공군과 해군만이라도 있는 대로 긁어모아서 서해에 있는 여일연합함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군사적인 효율성과는 상관없이 단지 지도자의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모한 공격에 나선 예는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찾아 볼 수 있다. 지금의 중국군이 바로 그러했다.  

  아무튼 중국의 전투기는 우라지게도 많았다. 지난 이틀간의 공중전에서 그렇게 많은 수가 격추되고도 또다시 수백 대의 전투기와 공격기가 하늘을 메웠다. 이들은 주로 구식 전투기와 낡은 공격기로서 멀리서 대함 미사일만 쏘고는 바로 돌아갔다. 중국 해군은 북해, 동해, 남해 함대가 모두 전멸해서 싸울 수 있는 수상함이 없었다. 대신 디젤잠수함 몇 척이 괜히 서해 바다 속을 오가면서 귀찮게 굴었다.

  몇 시간동안 꽤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이 공격으로 중국군이 얻은 공적은 전혀 없었다. 여일연합함대는 긁힌 상처 하나 없이 건재했으며, 중국군 전투기와 잠수함만 파괴당해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함대 방위에 주력해야 하는 탓에 연해주 근방의 아군을 도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것은 포병과 공군이 전부였다. 연합군이나 러시아군이나 매우 강력한 태도로 공군에게 CAS를 요구했다. 이렇게 지독한 독촉은 양측의 공군이 다들 처음 당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공권 확보를 위해서는 열심히 싸웠지만, 러시아 공군은 물론이고 연합군 공군도 갈랴르호른 작전 초반의 적극적인 공격과는 달리 지금은 좀처럼 CAS에 나서지 않았다.

  미 공군이 자랑하는 수십 기의 전략폭격기를 동원해서 펼친 대규모 폭격은 러시아군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았지만, 그 때문에 입은 피해도 엄청났다. 스텔스 폭격기 5기를 포함해서 총 11기의 폭격기가 격추 되었다. 이것은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지독한 피해였다. 수십 년간 전 세계를 휩쓸고 다니면서도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유명한 미 공군의 스텔스 폭격기 단 한 번의 전투에서 5기나 격추당한 것이었다. 그만큼 러시아 공군의 실력이 출중하고, 방공망이 막강하다는 증거이긴 했지만, 미 공군으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었다.

  그래서 미 공군 사령관 데이빗 톰슨 중장은 지상군의 열렬한 호소를 과감히 씹고, 단 한기의 폭격기도 내보내지 않았다. 연합군 총사령관 헤럴드 딘 대장도 그의 고충을 인정해서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가끔씩 전폭기 몇 대가 폭탄을 떨어뜨리고 간 것이 이들이 펼친 CAS의 전부였다. 러시아 역시 가끔씩 적 MLRS 파괴를 위해 자살특공대를 보낸 것 외에는 특별히 지상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미일 연합 공군의 거센 공격에서 제공권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단기 4341년 5월 5일 00:13, 우수리스크 서남쪽 150Km

  날이 바뀌었다. 하루가 지나가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만 이 근처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수십만 명의 병사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고, 일부 폐인들은 컴퓨터 앞이나 도박판 앞에서 밤을 샐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대평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약간 특이한 폐인들은 끔찍한 폭렬지옥 속에서 쇳덩어리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대평원 위에는 희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수천 대의 전차들이 얽히고 설켜서 죽음의 춤을 추었다. 밀고 밀리던 전황에 변화가 생겼다. 끝도 없이 밀려오던 2개의 강철 물결, 그 중 하나에 균열이 생기더니 점점 크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대 고려군 백골 3사단, 제 1차 한국 전쟁 당시 최초로 38선을 넘어 이북으로 진격했다는 자부심을 가득 안고 있는 제 3기갑사단 병사들은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그들은 거대한 러시아군의 전차 대열을 조금씩 허물어뜨렸으며, 그 내부로 쐐기처럼 파고들었다. 신중한 성격의 사단장 이강삼 소장은 무모한 추격을 자제하고 건실한 태세를 유지하면서 러시아군의 출혈량을 서서히 늘려갔다. 함부로 돌출했다가는 앗 하는 사이에 포위될 염려가 있었다.

  러시아 전차집단군, 이 거대한 골리앗도 계속되는 돌팔매질에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려군 병사들은 러시아군의 아픈 상처를 자꾸만 후벼 팠다. 00:35, 세 시간여의 치열한 전투 끝에 마침내 3사단은 러시아군의 전차 대열을 제대로 쪼갠 끝에 자그마치 700m -쌍방이 투입한 기갑 전력이 얼마나 두꺼웠는지를 안다면, 실로 대단한 전공임을 느낄 수 있으리라- 나 전진하는 데에 성공했다.    

  꽉 막혀 있던 댐에 드디어 구멍이 뚫렸다. 갇혀 있던 봇물이 무서운 기세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 부분에 무지막지한 포격이 집중되었다. 수백 대의 MLRS, K-9, 크루세이더 등이 제각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주장했다. 그리고 고려군 3사단이 혼신의 힘을 다해 뚫어낸 통로를 향해 미군 5군단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 몰려왔다.

  미 육군 5군단은 냉전 시대에는 독일에 주둔하고 있었다. 구소련의 침략으로부터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을 보호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따라서 막강한 구 소련군에 맞서기 위해 미군 내에서도 유난히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기갑 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던 것이 냉전이 끝나고 해외 주둔 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실시되면서 소수 부대만 독일에 남고 나머지는 미국 본토로 철수했다.

본래 5군단의 휘하 사단은 2개였으나, 최근의 대규모 군비 증강에 의해 4개 사단으로 불어났다. 그 중 2개 사단은 팀 스피리트 훈련을 핑계로 한반도에 들어와서 지금 싸움에 나서고 있으며, 나머지 2개 사단은 배에 실려서 동북아시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구 소련군을 상대하기 위해 독일에 주둔해 있던 5군단, 그런데 그들이 처음으로 러시아군과 실전을 벌이게 된 전장은 엉뚱하게도 유럽이 아닌 동북아였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따지고 보면 이곳의 지형은 그들이 본래 전장으로 설정했던 중부 유럽 일대와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5군단 소속 제 1기갑사단과 제 11기계화보병사단은 기세 좋게 돌격하면서 막강한 화력을 마음껏 뽐냈다.  



단기 4341년 5월 5일 01:00, 연해주 상공

  지상의 아귀다툼과 살육도 수천m 상공 위에서는 한낱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었다. 마하의 속도로 밤하늘을 가르는 전투기 안에서는 지독한 폭발음도 인간의 비명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검은 비단 위에 은색 보석들을 흩뿌려 놓은 듯한 아름다운 정경이 더 실감나게 다가왔다. 새까만 비단 위를 멋들어지게 가르는 은색의 선은 오욕칠정에 물든 인간들을 비웃는 듯했다.

  잠시 동안 멍하니 밤하늘을 감상하던 정기휘 중령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의 애기 미르를 몰고 연해주의 하늘을 날고 있는 중이었고, 그가 지휘하는 제 1024항공전대 소속 F-15K 편대는 러시아의 한 군수 공장을 폭격해야 했다.

  갑자기 후방의 조기경보기 E-737로부터 데이터 링크가 들어왔다. 새로 들어온 정보를 살펴보던 정기휘의 영화배우 같은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런 엿 같은 일이 있나!”

  그것은 그의 편대에 하달된 임무가 변경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새로운 임무는 후방의 군수 공장이 아니라 러시아군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기갑 부대 위에 미사일을 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죽을 가능성이 엄청 가파르게 수직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동북 대평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차전에서 전황이 유리해지자 여미일 연합군 지휘부는 즉시 아껴둔 화력과 병력을 몽땅 투입했다. 일단 승기가 보이면 모든 전력을 퍼부어서 승세를 굳히는 것은 전쟁의 기본이었다. 연합군 총사령관 헤럴드 딘 대장은 직권으로 공군의 CAS를 결정했고, 마침 근처를 날고 있던 정기휘의 편대가 재수 없게도 딱(!) 걸린 것이었다.    

  물론 정기휘는 이런 자세한 내막을 몰랐지만, 알았다 해도 짜증과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명령은 명령, 그가 군인인 이상 좆으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 했다. 정기휘는 굵은 손가락으로 기기를 조작하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새로 하달된 임무를 봤겠지? 10시 43분 방향으로 항로를 수정한다.”
  “라져!”





바른생활 NZEO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2019-09-19
22:13:51


김도형
항상 내 이름이 별로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님의 글속에 제 이름은
나름대로 훌륭하네요. warfog의 현재 유일한 글로써 건필 부탁합니다
2004-10-18
08:18:39



Name
Password
Comment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11)  [1]  키루스 2004/10/15 22 3853
154  <끝없는 전쟁> 제 1차 동북 대회전....(6)  [18]  키루스 2004/09/02 21 4361
153  <끝없는 전쟁> 제 1차 동북 대회전.....(8)  [4]  키루스 2004/09/07 20 4068
152  <끝없는 전쟁> 제 1차 동북 대회전....(7)  [24]  키루스 2004/09/04 20 4235
151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16)  [8]  키루스 2004/11/01 19 3954
150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15)  [123]  키루스 2004/10/28 19 4452
149  <끝없는 전쟁> 제 1차 동북 대회전......(10)  [8]  키루스 2004/09/13 19 4496
148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12)  [352]  키루스 2004/10/18 18 5404
147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6)  [4]  키루스 2004/09/30 18 3931
146  <끝없는 전쟁> 블라디보스토크 공방전....(3)  [5]  키루스 2004/09/22 18 4364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4][5][6][7][8][9][10]..[16]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