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흡(라데니조아)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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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대전쟁 52<던져진 주사위의 면 - 4>
라데니조아  2003-10-12 20:46:28, 조회 : 9,268, 추천 : 36

9월5일 03:36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 콰콰콰콰쾅!!!!!

사단포병의 MLRS 다연장로켓포들이 강 건너편의 연합군 방어선을 향해 계속해서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계속된 전투로 거의 붕괴직전까지 몰렸던 연합군의 방어선은 다시 한 번 호된 불벼락을 맞고 있었고. 방어선에 배치된 연합군은 이에 맞대응할 포병전력이 남아있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 곧 부교설치작업이 끝난다. 3 분 이내에 도하가 시작될 것이니 다들 그리 알고 단단히 준비하라. 공병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지 않는가?

3 분 이내에 도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대대장의 말을 듣고 김병성 하사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좁은 차내에서 웬 담배냐고 조종수와 포수가 투덜거렸지만 김병성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더 이상 뭐라고 하면 발로 두들기면 그만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담배였다.

- 콰아아아아앙!!!!!

이번에 들린 폭음은 연합군의 것이었다.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있던 모터보트 하나가 포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산산조각났다. 보트에 타고 있던 공병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포병의 지원과 연합군 화력의 약화를 기회 삼아 대대적으로 부교를 설치하기 시작한 공병대는 이미 300 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입었음에도 악착같이 부교설치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공병이었다면 저런 상황에서 계속 작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교설치를 지켜보고 있는 한국군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평소엔 노가다 부대라고 놀림받던 공병들이 지금은 쏟아지는 포탄의 소나기 속에서도 악착같이 부교를 설치하고 있었다. 설치되던 부교 5 개중 2 개가 부서지긴 했지만 나머지 3 개는 성공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그것들을 통해 전차들이 강을 도하하는 것이다.

- 강 건너편에서 적 전차부대 발견! 시간이 없다. 도하 시작!

아직 부교가설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대장의 다급한 도하명령이 떨어졌다. 이미 부교 대부분은 사용하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마지막 부분에서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차피 마지막 일부 부분은 그냥 강속에 뛰어들면 그만이니 별 문제는 없었다.

- 콰콰콰콰콰쾅!!!!!!!

이번에도 아군 MLRS는 화끈한 화력을 퍼부었다. 본격적인 도하가 시작되기 전 확실한 엄호라도 해줄려는 모양이었다. 저 포격이 조금이라도 잘못 된다면 공병들의 피로 부설된 부교가 파괴되는 것은 물론이오 도하를 기다리고 있는 아군 병력들도 괴멸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주포에 대탄 장전."

선두 차량들이 부교를 통해 강을 건너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김병성이 포탄장전을 명령했다. 지금 주포엔 적 전차와의 교전을 염두하여 철갑탄이 장전되어 있었으나 도하를 하면 제일 먼저 상대해야 할 적은 연합군의 대전차 진지들이었다. 비록 어제의 전투와 대규모 포격으로 대부분 제압당했지만 아직도 상당한 숫자의 진지가 남아있을 것이다. 상륙주정과 수륙양용장갑차로 먼저 도하한 보병들이 주력 기계화부대의 안전한 도하를 위해 적과 교전중이었지만 확실한 제압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동장전장치에 의해 장전되어 있던 철갑탄이 나오고 대신 대탄이 주포에 장전되었다.

- 콰아아아앙!!!!!

앞서서 도하를 시작한 동료 K-2 전차에서 강 건너편을 향해 불을 뿜었다. 모래주머니로 급조된 대전차포 진지가 힘 없이 무너지면서 불기둥이 일어났다. 아마 진지 내의 탄약이 유폭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 각 차량은 속도를 좀 더 높여라! 위험해도 빨리 도하해야 한다.

"부교 위에서 속도를 올리라니, 기가 막혀서."

대대장의 성화에 할 수 없이 조종수가 속도를 약간 높였지만 정말 짜증나는 명령이었다. 비록 이번에 부설된 부교가 독일제 IRB, 기존 부교들에 비해 폭이 넓었지만 거대한 쇳덩어리인 전차들에겐 거기서 거기였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생기면 바로 강 속으로 풍덩! 하게 된다. 그렇기에 부교 위에서는 조심 또 조심이 기본인데 속도를 높이라니, 아무리 급하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 콰아아아아앙!!!!!

속도를 높이며 부교를 건너던 김병성의 K-2 전차의 120mm 활강포가 갑자기 불을 뿜었다. 대전차포 진지를 발견한 포수가 독자적 판단으로 포격을 가한 것이었다. 부교를 건너는 한국군 전차들의 포가 계속해서 불을 뿜었고 그때마다 연합군의 대전차진지가 하나씩 녹아났다.

마침내 첫 번째 전차가 부교를 건너 도하에 성공했다. 부교 마지막 부분의 설치가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계속 부교설치를 하고 있던 공병들이 옆에서 손을 흔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곧 이어 두 번째 전차도 도하했고 김병성이 탄 K-2 전차가 세 번째로 강을 건넜다.

- 타타타탓! 타타탕!

- 투우우웅!!! 콰아아아앙!!!!!!

강을 건넌 뒤 제일 먼저 들려온 것은 보병끼리의 격렬한 전투를 생생하게 알려주는 소화기와 보병용 중화기의 총성이었다. 사방에 소총탄이 난무하고 기관총과 유탄발사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총성도 간간히 들려왔다. 그러나 전차가 도하한 이상 그런 보병들간의 전투도 이제 끝이었다.

- 투타타타타타!!! 투타타타!!!

도하한 한국군 전차들의 공축기관총이 연합군 병사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대부분 미군으로 구성된 연합군 병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에 당황하여 급히 숨거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애초부터 미군들은 전차를 상대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이미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대전차무기도 부족한 그들이 한국군 전차들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가졌다 해도 결과는 뻔할 뻔자지만.

전차들의 화력지원을 바탕으로 한국군 보병들이 연합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연합군 병사들은 순식간에 총을 버리고 백기를 흔들었다. 3 개 기보사단의 대규모 파상공세를 막아낸 그들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 진격! 무조건 진격이다! 전선을 정면 돌파한다. 적에게 시간을 주면 안된다!

대대장의 우렁찬 구호가 통신기에서 울려퍼졌다. 이제 진격이었다. 최단시간 내에 전선을 돌파하고 미군의 좌우익을 분리시키면서 미군 상륙항인 평택을 쳐야 하는 어려운 작전이었다. 이제 겨우 그 작전의 첫 번째 단추를 끼웠을 뿐이었다.

"모두들 전쟁이 끝나간다고 말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야. 앞으로 몇 시간동안 얼마나 더 죽일지 몰라. 특히 지금같은 상황에선..."

김병성이 불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의 말대로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24 시간 이내에 종전될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그 근거로 한국군의 대대적 반격과 양군 지상군의 엄청난 피해, 비핵참전국들에 대한 대대적 핵공격을 들고 있었다. 그만큼 앞으로 죽을 사람도 많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전쟁이 터진 이후 지금까지 죽은 사람보다 오늘 하루동안 죽을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9월5일 04:12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중대 탄약 및 연료보급 완료. 진격 재개한다."

중대 통신망에 대고 조성비 대위가 간단히 명령했다. 연료와 탄약보급, 전력손실로 인한 전차보충 및 중대 휴식으로 인해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한시가 바쁜 이 마당에 거의 6 시간 진격이 정지된 것은 너무나 큰 시간낭비였다. 전투를 중단한 것만 벌써 3 시간째였다. 그동안 다른 아군부대가 공격을 계속한 것도 아니었다. 보나마나 방어전에 전념하고 있는 인도군도 부대를 정비하고 대규모 공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콰콰콰콰쾅!!!!!!

공세 전에는 대규모 포병지원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은 간헐적으로 자주포 몇 문이 지원을 해줄 뿐이었다. 고속진격을 거듭하면서 포병대와 거리가 멀어지긴 했지만 진격이 정체되는 동안 거리가 좁혀졌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인도군도 사정이 좋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동안 포병대가 한국공군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아 큰 타격을 입어 충분한 포병지원을 할 수 없었고 공주에서 전선을 정면돌파하고 있는 8 기갑사단때문에 병력을 집중할 여유도 없었다. 더군다나 연합군은 수원에서 평택으로 남하하고 있는 또 다른 아군 부대까지 상대해야 했다.

"녀석들은 너무 섣불리 들어왔어. 위험부담이 너무 큰 작전을 무리하게 강행한 건 녀석들이니 불만은 없겠지."

조성비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동안 K-2 전차들이 부드러운 엔진음을 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전차들의 뒤에는 번뜩이는 40mm포를 앞세운 K-300 보병전투차들이 기세등등하게 돌격을 시작했다. 이들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인도군이 얼마나 될지, 그 저항은 어느 정도일지 모르지만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전투를 통해 얻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나저나 이 일대는 논도 거의 없고 지형도 비교적 평탄해서 기동에 큰 장애가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전투거리는 1500m 미만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이 한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갑전을 벌이기에 비교적 좋은 곳이었다. 물론 동시에 전차 수십 대가 전차전을 벌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경험한 전장들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었다.

- 전방에 적 전차부대 출현! T-90S입니다. 인도군입니다!

- 콰아아아아앙!!!!!!!

선두전차의 급보와 함께 전차포가 불을 내뿜는 요란한 포성이 진동했다. 먼저 공격한 것은 인도군이었다. 인도군 T-90S 전차의 125mm 활강포가 요란스런 포성과 동시에 포탄을 내뿜었다. 그러나 발사된 포탄은 두터운 K-2 전차의 전면장갑을 뚫지 못했다. 거리가 1500m 미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군의 포격은 K-2 전차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 적 전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뭐야? 선공을 걸겠다는 건가?"

방어에 치중해야 할 인도군이 오히려 스스로 기어나와 전투를 걸어왔다는 사실에 조성비가 당황해 했으나 한편으로는 매우 흥분했다. 적이 스스로 싸우러 나온 이상 고히 돌려보내면 예의가 아니었다. 한 번 찾아온 손님은 성대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내는 것이 동방예의지국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조성비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중대, 당황하지 말고 그대로 맞받아쳐라. 우리는 세계최강의 전차고 녀석들은 구닥다리 T-72를 업그레이드한 수준의 전차에 불과하다. 가볍게 짓밝아라!"

- 콰아아아앙!!!!!!

조성비가 짓밝으라고 하지 않아도 중대원들이 인도군을 가만히 냅둘 리 없었다. 막 커브길을 돌아 달려들던 T-90 전차 두 대가 일거에 격파되어 거센 불길을 내뿜었다. 제일 먼저 사격을 가한 T-90 전차는 아군전차 4 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완전 박살나다시피 했다.

- 콰아아아앙!!!!!!

- 5 호차 피탄! 전투불능입니다!

인도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애초부터 한국군의 K-2 전차를 격파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도군은 전차 3 대씩 조를 이루어 한국군 전차 한 대를 향해 집중공격을 퍼부었다. 그런 공격을 퍼붓는다고 해서 K-2 전차를 격파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공격을 감행한 인도군으로선 어떻게든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동원해야 했다. 그 첫 번째 희생자는 중대 5 호차였다.

"3 호차와 4 호차는 5 호차를 엄호하라. 다른 차량들은 계속 공격해. 현무에게도 지원 요청한다. 적이 너무 많아 우리 힘으로만 상대하기 어렵다."

- 여기는 현무 리더, 알았다. 즉시 지원하겠다. 적 기갑부대의 공격으 확실하게 차단해달라.

스스로 현무 리더라고 밝힌 상대방이 조성비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중대의 뒤를 따르던 기계화보병 중대가 바로 콜사인 '현무'였다. 진격이 중지되고 부대가 정비하는 동안 새로 호흡을 맞출 기보중대도 교체되었다. 갑자기 바뀐 것이 한둘이 아니라 전투중 혼란을 우려한 조성비였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혼란은 커녕 호흡만 잘 맞을 뿐이었다.

"1 시 방향에 거리 1074, 적 T-90S에 철갑탄 발사."

- 콰아아아아앙!!!!!

인도군과 접촉한 이후 조성비의 전차가 처음으로 불을 뿜었다. 측면에서 찌르고 들어오는 다른 아군 전차를 상대하던 그 인도군 전차는 가련하게도 조성비의 전차에서 쏜 포탄에 측면을 관통당하고 고철로 전락했다. 기적적으로 탄약유폭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지 탄약이 유폭했으면 전차 승무원들은 모두 인간 바비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 슈우우우우웅~~!!!!!! 쉐에에에에엑~~!!!

전차들의 뒤를 따르던 K-300 보병 전투차들에서 일제히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다. 한국제 K-2 전차에는 대전차 미사일 능동방호장치가 있어서 웬만한 대전차 미사일 공격은 알아서 방어해내지만 인도군의 T-90S에는 드로즈드나 쇼트라같은 러시아제 능동방호장치가 달려있지 않았다. 그것은 4 세대 전차에 비해 방어력이 약한 편인 3 세대 전차들에겐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 콰아아아아아앙!!!!!! 콰콰콰쾅!!!!!!!

- 투타타타타타!!!!!

대전차 미사일이 전차 상부 위에서 연달아 터지면서 전차 다섯 대와 BMP-3 보병전투차 4 대가 일시에 격파당했다. 동시에 전차들을 추월한 K-300 보병 전투차들이 40mm 기관포를 쏘아대며 전투의 전면에 나섰다. 갑자기 전투전면에 나선 아군 기보중대때문에 당황한 건 조성비였다. K-300이 뛰어난 보병 전투차이긴 해도 방어력도 화력도 전차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현무, 대체 뭐하는 짓인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전차를 상대로 현무가 전면에 나서서 뭐하자는 건가? 어서 뒤로 물러서라!"

- 충고 감사하지만 물러서진 않겠다. 적은 이미 전차 다수를 잃었다. 우리만으로도 충분하다.

"에잇! 씨팔! 바보같은 자식들!"

기보중대장의 답변을 들은 조성비가 통신기를 끄고 현무들을 욕했다. 현무는 지금 전과에 눈이 팔려 엄청난 위험부담의, 무모할지도 모르는 전투를 시작한 것이다. 화력도, 방어력도 전차에게 밀리는 보병 전투차들이 전면에 나서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왜 다 이긴 싸움에서 전공다툼을 하려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거리 895, 적 BMP-3 보병 전투차에 대탄 발사!"

- 콰아아아앙!!!!!

전투개시 이후 조성비의 전차가 두 번째로 불을 뿜었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며 기관포와 대전차 미사일로 아군 전차들을 지원하려던 BMP-3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산산조각났다. 인도군의 BMP-3들이 연막탄을 펼치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격파되지 않으려 발악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 투타타타타타!!!!!!

그러는 동안 K-300 보병 전투차들의 40mm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전차를 격파하는 것은 확실히 불가능했고 기껏해야 외부센서를 파괴할 뿐이었다. 한국군 기계화보병도 격파보단 외부센서 파괴와 보병 전투차 격파에 주력하고 있었다. 40mm 철갑탄 수십 발을 연속으로 두들겨맞은 BMP-3의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 콰아아아아앙!!!!!

하지만 기계화보병들의 분전도 여기까지였다. K-300 보병전투차 3 대가 거의 동시에 적 전차의 포격을 받고 박살났다. 상당한 방어력을 지닌 K-300이었지만 보병전투차의 방어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전차포는 그 한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125mm 포탄에 직격당한 보병전투차들은 단순히 격파된 정도가 아니라 분해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현무들은 어서 뒤로 물러서라! 머뭇거리다간 현무들은 전멸할 것이다! 어서 도망치란 말이야! 전 차량들은 적 전차에게 공격을 집중하라! 거리 953m, T-90S에 철갑탄 발사!

- 콰아아아아앙!!!!!

아군 기보중대의 후퇴를 독촉하고 중대를 지휘하고, 직접 전투까지 하느냐 조성비는 정신이 없었다. 방금 전 발사한 포탄이 적 전차를 격파했으나 거리가 1000m 이내로 가까워지면서 아군 전차 두 대도 격파당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한국군이 유리한 상황이었다.

- 콰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전차의 포성이 들리면서 인도군 전차 서너 대가 일거에 격파당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적 전차가 격파당한 것은 좋은 일이었다. 갑자기 후방에서 공격을 받은 인도군이 당황해 하다가 앞뒤에서 계속 공격을 당해 차례차례 격파당했다.

- 놈들이 오인사격이라도 한 거야? 이거 너무 싱겁잖아?

- 전방에 새로운 적 전차부대 출현! 기종은 T-80U! 중대급입니다!

"놈들이 바보같이 오인사격 할 리가 없어. 그럼 혹시?"

인도군의 후방을 공격한 새로운 적 전차부대의 등장에 조성비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 공격하지 마라. 우리는 세작이다.

콜사인 '세작'은 러시아제 무기로 무장한 한국군 부대를 통칭하는 것으로 그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전격투입되어 적 내부에서 교란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들었다.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투입시기가 앞당겨진 모양이었다. 세작은 간첩, 스파이를 이르는 말이다.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중대는 진격을 서둘러라. 적이 정비할 여유를 주면 안된다."

세작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한 조성비가 다시 진격을 재촉했다. 계속해서 밀어붙이지 않으면 인도군 주력부대가 아군 8 기갑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이동할 것이 분명했다. 중대가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22 기계화보병 사단이 모두 옥쇄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은 계속해야 했다. 공격을 독촉하는 조성비는 어느 새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대대장을 닮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9월5일 04:32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 투타타타!!!

"개자식들! 지들이 중국군인줄 아나!"

다가오는 일단의 적군들을 향해 총을 쏘며 김동현 준장이 이를 갈았다. 준장이라는 계급에 어울리지 않는 K-2 소총을 들고 있었지만 최소한 이 곳, 부천에서는 장군이건 사병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포위섬멸될 위기에 처한 연합군이 마지막 발악으로 다시 한 번 부천을 강행돌파하기 위해 최후공격을 시도하면서 한국군의 방어선도 엄청나게 흔들렸다. 그런데 장군이라고 해서 지휘소에 앉아 상황만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단 한 명의 병사가 아쉬운 판국이었다.

"으아아아악!!!!!!"

옆에서 같이 총을 쏘던 병사 한 명이 가슴에 총탄을 맞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헐러덩 쓰러졌다. 급조된 방어선이라 바리게이트도, 엄폐물도 너무 엉성하게 설치되어서 아군의 사상자 수가 급증하고 있었다.

"모두들 조금만 버텨! 그냥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속절없이 죽어가는 부하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 김동현이 처절하게 외쳤다. 그러나 김동현 자신도 그 '조금'이 얼마나 될 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대체로 오늘 안으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확실하지 않았다. 다른 전선에서 총반격이 시작되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자세한 사정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놈들이 또 몰려온다!"

누군가가 외치자 모두들 바싹 긴장하며 전투에 대비했다. 텅 빈 탄창을 뽑아내고 새로운 탄창을 끼운 김동현이 남은 탄창이 10 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곤 한숨을 푹 쉬었다. 탄창 10 개는 지금과 같은 시가전에선 순식간에 소모된다. 곳곳에서 출몰하는 연합군때문에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부천에선 특별히 전선이란 것도 없었다. 부천시 전체가 거대한 전선이었고 양측 병사들이 서로 뒤섞여서 싸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지금 김동현이 있는 이곳에 형성된 방어선도 어디까지나 국지적인 방어선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유있게 보급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 투우우웅!!! 콰아아아아앙!!!!!!

- 투타타타탓! 투타타타!!

어디선가 터진 유탄을 신호로 하여 양측이 다시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무수히 많은 탄환들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다녔고 그때마다 한국군 또는 연합군 병사들이 못다한 삶을 마감해야 했다. 평소같으면 연합군은 무리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보병들의 대규모 공격을 자제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급박한지라 희생은 신경쓰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 타타타타!!

김동현이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달려오던 적군 두 명을 차례차례 사살했다. 보급만 잘 된다면 마음놓고 총을 갈겼겠지만 총알이 부족한지라 지금처럼 조준사격으로 총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적이 소규모라면 이런 정확한 조준사격이 심리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수 있겠지만 떼거지로 몰려오는 적에게 그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다.

- 콰아아아앙!! 콰콰콰아아앙!!!!!!

결국 연합군 보병들이 방어선 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고물이 다 된 자동차들 위로 올라서던 몇 명의 연합군이 즉각 저격당했지만 쏟아지는 적의 대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곳곳에서 수류탄이 터지면서 한국군들이 난도질당하고 방어선이 차츰 엷어지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았다.

"유 하사! 기폭장치를!"

총구를 돌리며 엄폐물을 찾던 미군을 사살한 김동현이 최대한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한 쪽 손에는 소총을 다른 손에는 기폭장치를 들고 있던 유 하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유 하사는 결혼할 상대가 있었으나 몇 달 전 전황이 불리해지자 일방적으로 파혼했다. 보통 전쟁이 터지거나 터지기 직전 군인들이 급히 결혼을 하는 것과 다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을 사랑하기에 하는 행동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쿠콰콰콰콰콰쾅!!!!!!!!!!!

두 눈을 꼭 감은 유 하사가 힘껏 기폭장치를 눌렀다. 곧바로 거대한 폭발이 이들을 덮쳤다. 바리게이트와 건물 곳곳에 준비되어 있던 고성능 폭탄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폭발했다. 곳곳에 은근히 숨겨두었던 LPG 가스통들도 폭발에 휘말렸다. 수백 명의 한국군과 연합군이 이 거대한 폭발에 휘말렸다. 거대한 불기둥이 부천시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9월5일 05:12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81 기보여단, 병력 및 장비 80% 손실이라니..."

밀려드는 한국군 기갑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신규부대가 전투시작 3 시간만에 전력의 80%에 달하는 거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에 드레이크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81 기보여단 말고도 멕시코와 필리핀군 기갑사단은 완전 괴멸되었고 부랴부랴 투입된 인도군 기갑대대 하나도 녹아나고 있었다.

"3 군 사령관의 통신 요청입니다."

통신참모가 시무룩하게 보고했다. 금강방어선이 무너지고 의당에서 이곳까지 허겁지겁 도망치면서 사령부는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장비면에서 상당히 열악한 인도군의 통신시설을 빌려 쓸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제대로 지원은 못하고 병력만 빼간 주제에 염치없이 통신을 요청하다니, 드레이크가 몹시 분개했지만 3 군 사령관 존 워터스 대장은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다.

"통신 연결하도록."

드레이크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통신이 연결되는 대로 워터스에게 강력하게 항의할 생각이었다. 지금 항의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지만 드레이크에겐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다.

"통신 연결됐습니다."

통신참모가 보고하자 15인치 소형 모니터에 3 군 사령관 존 워터스 대장의 모습이 천천히 나타났다. IT강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인도였지만 군대까지 IT화 된것은 아니어서 통신상태가 상당히 불안정했다. 전군에 IT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군대는 한국군이 거의 유일했다. 한국이야 말로 진정한 IT강국이었다.

"사령관님!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건 잘 아실 겁니다! 애초에 병력만... 사령관님, 어떻게 되신 겁니까?"

경례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몰아붙이던 드레이크가 모니터에 나타난 워터스의 모습에 놀라야 했다.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고 그 붕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3 군 사령관이 부상을 입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 보기 흉한 꼴을 해서 미안하네. 지휘부 근처에 적의 공습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이쪽 통신사정이 그리 좋지 않으니 이해하게. 그리고 지금 그쪽 상황이 나쁘다고 들었네. 정확한 건 파악하지 못했지만 기갑사단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모두 4 세대 전차로 구성된, 아무런 전력피해도 입지 않은 정예부대입니다. 포병화력도 상당히 막강합니다. 최소한 기갑여단 2 개에 군단급 포병지원 또는 항공지원이 있어야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그정도 전력을 동원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시간을 끄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드레이크가 강조했다. 원정군 3 군에는 4 세대 전차인 M-1A3이나 M-4 전차가 적었기에 전차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 군은 그정도의 전력을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좌우익으로 적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네. 방금 전 11 기갑기병연대장이 항복하겠다고 통보해왔네. 전차가 단 한 대도 남지 않고 모두 격파당했다는군. 물론 한국군도 만만찮은 피해를 입었지만 한국군 후속부대가 계속 공격을 하고 있어서 어려운 상황이야.

"저도 마음같아선 백기 들고 한국군 지휘부로 찾아가고 싶습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드레이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응수했다. 11 기갑기병연대의 전차가 모두 격파당했을 정도면 청주쪽에서 격파된 양군 전차만 몇백 대는 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이쪽에서도 비슷한 숫자의, 아니 더 많은 숫자의 전차가 박살났으니 즉각 항복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 그래도 인도군이 좌익의 한국군을 잘 저지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7 기보사단을 그쪽으로 돌려주겠네. 한국군 위장부대때문에 이동이 어렵긴 하지만 금방 도착할 걸세.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펜타곤에선 종전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펜타곤에서 종전을요?"

전쟁기간 내내 한국을 초토화시키자는 강경론으로 가득찬 펜타곤이 종전을 생각하고 있다니 의외였다. 그러나 이내 들려온 워터스의 대답은 그 의문을 말끔이 풀어주었다.

- 시드니, 멜버른, 캔버라, 체르니고프와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트빌리시와 멕시코시티, 아라드와 클루지, 그리고 쾰른과 시라스. 어때? 단 세 시간동안 날라간 도시들이야. 곳곳에서 한국군에게 밀리고 있는 건 둘째 치고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이번 전쟁으로 유명무실해진 유엔과 기타 국제기구 및 NGO, 중립국들의 강력한 항의와 핵보복 우려로 몇 시간동안 사용이 중지된 핵이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다시 위기타개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세 시간 전 시드니 피폭을 시작으로 무차별적에 가까운 핵전쟁의 결과가 이런 참혹한 결과로 나온 것이다. 피폭당한 도시들의 인구숫자만 2천만 명이 넘는다. 왠만한 중소국가의 인구 숫자와 맞먹는 수치이며 1차대전시 전사자 숫자보다 많다.

양측이 이렇게 마음 놓고 핵을 사용하는 것은 핵사용을 제한한 협정때문이었다. 핵 가진 나라끼리는 서로 핵공격 하지 말고 핵 없는 놈만 때리자는, 핵보유국들의 파렴치한 협정때문이었다. 비핵참전국들은 전쟁기간동안 핵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시 협정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을 처절하게 후회하고 있었다. 핵보유국들은 비핵참전국들을 위해 핵을 나눠줄 생각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핵없는 나라의 설움이었다.

"전쟁기간 내내 죽은 숫자보다 종전 마지막 날에 죽은 사람이 더 많은 희한한 전쟁이군요. 정말 이런 엿같은 전쟁은..."

- 콰콰콰콰콰쾅!!!!!!!!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던 드레이크가 갑작스런 폭음에 말을 멈췄다. 다시 지휘소 부근에 한국군의 포격이 가해지고 있었다. 한국군 지상부대가 직접 지휘소 근처까지 밀고 오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 어찌되었건 지금 상륙군의 철수작전이 시작되었네. 한국에서 병력을 무사히 빼내기만 한다면 유리한 종전이 가능해. 만약 그러지 못하고 포위섬멸당하거나 집당항복하게 되면 그 반대가 되는걸세. 그리고 278 기갑기병연대도 가져가게. 우익의 방어는 인도군 부대로 어떻게 해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제 병력을 투입해도 늦은 시점이었지만 새로운 임무인 아군의 무사퇴각을 위해선 최선을 다해 적을 저지해야 했다. 그나마 정면에 투입된 한국군이 기갑사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 그럼 나중에 볼 기회가 있으면 그때 보세. 이쪽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그럼...

워터스가 통신을 끊자 드레이크가 고개를 떨구었다. 화풀이나 하려고 생각했는데 화풀이는 커녕 더 힘든 짐만 챙기게 된 셈이었다.

- 콰콰콰콰콰쾅!!!!!!

"한국군 기보대대 하나가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사령부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듯 싶습니다. 이곳도 위험합니다."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어디 있나? 다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야."

참모장이 사령부 이전을 건의했으나 드레이크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사방에서 포위당한 3 군에게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었다. 조금 있으면 상륙지인 평택항마저 한국군의 자주포 사거리에 진입할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어."


9월5일 05:25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 동쪽 20km지역

- 전쟁의 완전승리가 다가왔다! 모두들 최선을 다하여 침략자를 물리치자! 마지막 웃는 자는 바로 우리다! 승리의 여신이 우리에게 미소를 짓고 있다!

"웃기고 있네. 반격 전보다 전선이 더 밀렸구만 무슨 얼어죽을 승리야?"

병사들을 선동하는 장성의 연설에 김인호가 기도 안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탄 K-1A1 전차가 적 전차의 공격을 받고 전투불능 상태에 빠진 뒤 미군의 MLRS 포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겨우 후퇴한 김인호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승리가 다가왔다는 연설내용을 불신하고 있었다.

- 콰아아아아앙!!!!!!

오사카 방위를 위한 최종 저지선 주변으로 미군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직접적인 전과를 노리는 것이 아닌 곧 있을 공세에 대비하여 자기네 전차들을 보호하기 위한 연막탄 사격이었다. 짙은 연막이 저지선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강한 바람이 불면서 연막을 몰아냈는데 지금은 바람의 강도가 많이 약해져서 연막이 상당히 짙었다.

- 곧 적이 몰려올 모양인가봐.

동료 전차장의 걱정스러운 음성을 들은 김인호가 이번에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다섯 시간 전에는 MLRS의 대대적 포격에서도 살아남는 기적이 일어났지만 기적은 계속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공세보다 방어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뿐이었다.

- 전방에 적 전차 발견! M-1A2! 숫자 급증중! 거리는 3천 이상이다!

"날탄 일발 장전."

적 전차의 접근이 확인되자 김인호가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적 전차와의 거리가 2000m 이내로 좁혀지기 전에는 포격이 금지되었다. 4 세대 전차가 없는 오사카와 교토 방면의 한국군 기갑부대는 2000m 바깥의 미군 전차를 격파할 수 없었고 본토에서의 대규모 접전으로 탄약보급도 원활하지 않아서 포탄을 낭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군 역시 보급이 어렵고 4 세대 전차가 없기에 피차 사정은 비슷했다.

3000m 바깥에 있던 미군 전차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저지선으로 다가왔다. 다가오던 미군 전차 몇 대가 대전차지뢰를 건드리고 격파당했지만 그런 전차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미군 전차부대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2000m에 가까워졌다. 아군 포병대가 TOT를 날려주면 참 좋겠는데 포병대의 사정도 그리 여의치 않은 듯 아직까지 포병지원은 없었다.

"11 시 방향에 적 M-1A2 전차, 날탄 발사!"

- 콰아아아앙!!!!!

적 선두전차와의 거리가 2000m 이내로 가까워지자 김인호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발사명령을 내렸다. 육중한 K-1A2 전차가 흔들리면서 뿜어낸 포탄이 정확하게 M-1A2 전차의 정면을 가격했다. 그러나 그 전차는 아직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2000m라는 거리는 확실한 적 전차 격파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이정도 거리에서 적 전차 격파 확률은 50 대 50 정도였다.

그러는 동안 김인호 말고도 다른 한국군 전차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포탄을 튕겨내며 계속 달려오는 미군 전차도 있었고 포탄을 막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격파당하는 전차도 있었다. 반면 미군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는 한국군 전차들이 잘 구축된 콘크리트 진지 내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진지에 의해 한국군 전차가 노출되는 부분은 극히 좁았다.

- 쿠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앙!!!!!

지금까지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못한 포병대가 속죄라도 하는 듯 대규모 포격을 가했다. 포탄들이 전차 상부를 두들기면서 일거에 10 대가 넘는 전차들이 활활 타올랐고 불타진 않아도 격파당해 기동을 멈춘 전차도 상당했다.

"1 시 방향에 적 M-1A2 전차, 날탄 발사! 발사 후 다시 날탄 장전."

새로 목표를 지정한 김인호가 우렁차게 발사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발사된 포탄은 확실하게 M-1A2의 전면장갑을 관통했다. 포탄이 전면장갑을 관통한 이후 후방 탄약고까지 뚫고 간 듯 그 전차는 몇 초 뒤 후방에서 거대한 불길을 내뿜었다.

- 놀부와 흥부는 즉각 적 좌우측면을 두들겨라! 이제부터 역습이다!

또 다른 명령이 내려오자 좌우익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차대대가 일제히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놀부와 흥부였다. 전차 수십 대가 갑자기 튀어나오자 미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식간에 몇 대의 전차가 고철로 변했지만 미군은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곧 미군이 조직적으로 반격을 하면서 한국군 전차들도 하나둘씩 빠르게 격파당했다.

- 이대로 가다간 놀부와 흥부는 전멸합니다! 구원해야 합니다!

- 안 돼! 섣불리 나서다가 모두 죽는다! 2 차 투입부대가 있으니까 기다려! 그리고 놈들은 조금 있다가 물러날 게 뻔해!

대대장과 사단장의 고함으로 가득 찬 통신망을 노려보던 김인호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로운 목표를 지정했다. 전장에는 수십여 대의 양군 전차들이 격파당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격파될 전차의 숫자는 더 많을 것이다. 김인호의 K-1A1 전차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9월5일 06:11 황해남도 해주시

"독일군을 주축으로 한 혼성 기갑사단 2 개가 급거 북상하고 있습니다만 상대해야 할 적은 러시아 극동군의 전차 1천여 대입니다. 그리고 해안을 따라 중국군 5 개 사단이 남하하고 있는 것도 염두해야 합니다."

"개성의 4 군단이 아군 방어라인을 돌파하고 진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 프랑스 혼성 기갑여단이 급파됐지만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말이야. 중국에 있는 병력만 있었어도 이렇게 밀리진 않을텐데 말이야. 너무 처참하군. 구멍이 너무 커. 그렇지 않나?"

적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밀려오고 있다는 급보를 받은 갈란트 2 군 사령관이 고개를 저으며 아쉬워했다. 기갑부대가 조금만 더 있었어도 어떻게든 싸울 생각을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너무 암담했다. 현재 원정군 2 군이 운용할 수 있는 전체 전차숫자는 1천 대가 약간 안되는 실정이었다. 러시아군만 1천 대가 넘는 전차를 동원했고 중국 및 한국군의 전차까지 생각하면 도저히 비교가 불가능했다.

"역시 남의 전쟁에 끼어드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그냥 본국방어에만 전념했어야 하는데..."

갈란트는 미국의 아시아전선 파병 요청을 적극 지지했던 것을 매우 후회했다. 그 결과 독일군 주력 기갑부대는 중국에서 핵공격을 받아 전멸했고 또 다른 주력부대는 러시아 극동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주요도시가 핵공격을 받았고 군사력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독일은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4 군단을 저지하던 미군 기보여단 하나가 통채로 항복했답니다."

며칠 밤낮을 꼬박 샌 통신참모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보고했다. 통신참모는 참모진중 유일한 미군이었고 그때문에 미군 기보여단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집단항복했다는 사실때문에 다른 참모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항복해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미 전쟁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인 참모장이 말한 것은 원정군 2 군의 집단항복이었다. 다른 참모들과 갈란트가 놀라 눈이 휘동그래졌다. 갈란트 자신도 항복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상당한 전력이 남아있었고 대규모 포로로 인한 종전협상에서의 불리함을 우려해 항복만큼은 피하려 하고 있었다.

"항복이라니? 참모장, 아직 우리에겐 1천 대에 가까운 전차가 있고 적과 마지막 일전을 벌일 여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항복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지금 항복하지 않으면 2 군이 모두 전멸할 겁니다. 아군 기갑사단이 러시아 극동군을 저지한다 해도 해안을 따라 남하중인 중국군과 개성의 4 군단을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저항하다간 미군 별동부대 꼴 납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참모장이 강력하게 경고했다. 2 군 주력인 2 개 기갑사단의 전투와 상관없이 상륙항인 해주가 중국군과 한국군에게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현실적 문제였다. 후방을 차단당하고 상륙항이 점령당해 지리산 근처에 고립된 별동부대는 사방에서 가해지는 집중공격을 받았고 방금 전 통신이 두절되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스웨덴, 핀란드 등 주요 중립국 언론들은 전투현장에서 한국군의 협조를 받아 별동부대가 항복했다는 사실을 생방송으로 보도했지만 미군은 이를 부인하고 있었다. 정확한 것은 갈란트도 알지 못했다.

"원정군 1 군과 3 군도 마찬가지입니다. 1 군은 결국 넓은 곳으로 진출하지도 못했고 서울점령도 실패한 채 좁은 지역에 고립되어 최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3 군은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 금강 방어선이 돌파당했고 지금도 한국군의 대공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황해의 미 해군 항모 4 척중 2 척이 전투불능에 빠져서 항공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단 말입니다."

참모장이 결단을 촉구했다. 처음엔 항복에 반발하던 다른 참모들도 점점 고개를 숙이며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갈란트는 아직까지도 항복을 결정하지 못했다. 항복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의 항복이 앞으로 전황과 종전협상에 어떠한 결과를 낳을 지도 생각해야 했고 항복 후 병사들의 안전문제도 생각해야 했다.

"사령관님, 우린 미군이 아닙니다. 남의 전쟁에 휘말린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이건 유럽에서처럼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협력했고 독일과 프랑스같은 다른 유럽국과의 관계가 나쁜 편이었던 영국군 장성이 한 말이라곤 믿기지 않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그냥 좋아서 미국 뒤만 졸졸 따라다닌 건 아니었다. 영국인 대다수도 미국의 팽창정책에 반대하고 있었다. 물론 미국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유럽국과 비교해서였다.

"항복, 항복이라..."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다 죽은 다음엔 늦습니다."

참모장이 갈등하는 갈란트에게 쐐기를 박는 발언을 했다. 주요 도시에 핵폭탄이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2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단 몇 시간만에 죽은 상황에서 수만 명은 의외로 적어 보였지만 전선에서 핵사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한국군에게 항복의사를 전달하시오. 현 시각부로 전 부대는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항복하라고 전하시오. 그리고 우리의 항복사실을 태평양 통합 사령부에 보고하도록."


9월5일 06:53 서울특별시 종로구 전시지휘벙커

"다행이군요. 전쟁이 끝나가니..."

각 전선에서 들어오는 보고를 받으면서 백기철이 오랫만에 밝은 표정을 지었다. 남부지역에 상륙한 연합군의 별동대와 유럽국가들이 주축이 된 연합군 한국원정군 2 군이 집단항복했다는 소식은 가장 큰 기쁨을 전해다 준 소식이었다.

"그런데 황해도의 연합군은 아직 전력이 비교적 온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항복하다니, 의외군요."

군사분야에 문외한인 백기철로선 2 군의 집단항복 사실이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백기철의 말대로 전력도 온전한 편이었고 상당한 기계화부대도 갖추고 있는 것이 원정군 2 군이었다. 조형구 국방장관이 나서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물론 황해도의 연합군 2 군은 전력이 상당합니다만 러시아 극동군과 중국군, 그리고 평방사와 인민군 4 군단을 모두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서해에서 미군 항모 2 척이 전투불능에 빠지면서 이들에 대한 항공지원도 어려워졌기에 불안감은 더욱 더 증폭되었을 겁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아무리 전력이 충실해도 아군의 전력이 더 막강해 승부가 뻔한 싸움이므로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항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군 2 군은 미군이 아닌 유럽국가들이 주축이라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

"그렇군요. 어찌되었건 다행스런 일입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백기철이 여러 각료들과 벙커를 찾아온 수도방위군 장성들을 격려했다. 모두들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이라 표정이 밝았다. 외교통상부 장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제 전쟁도 끝나가니 종전협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 장성들과 수많은 장병들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니 최대한 노력을 다해 유리한 협상을 만들겠습니다. 이미 주 스위스 대사에게 종전협상을 준비하라 지시를 내렸습니다만 종전협상을 위한 전권대사를 임명하시는 것이 좋으실 듯 합니다."

"그래야겠죠. 그 문제는 잠시 후 의논합시다.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니까 말이오. 그리고 우리 역시 샴페인을 터트릴 여유가 없습니다."

백기철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마지막 대반격으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 결과는 남아있던 지상군 주력사단 다수의 전멸 및 괴멸적 타격이었다. 육군 말고도 공군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해군은 개전당시의 1/4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력만이 남아있었다. 국토가 전화에 휩슬렸고 수많은 국민들이 죽었다. 그래도 핵폭탄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비핵보유국들이나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은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긴 했다.

"전쟁보다 전후복구가 더 어렵겠습니다."

재정경제부 장관이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전후복구를 위해 들어갈 돈은 전쟁수행을 위한 비용 만만치 않게 들 것이 뻔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수많은 전상자들에게 지급할 연금을 마련해야 한다며 걱정했다. 하지만 이런 건 다 승자이기에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만약 이번 전쟁에서 패전했다면 전후복구나 연금지급은 커녕 1차대전 후 독일처럼 배상금 갚기에 급급할 것이다.

"각하, 안좋은 소식입니다. 인도가 시아누크빌과 캄포트, 시트웨와 초이발산에 핵공격을 단행했답니다."

조형구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시아누크빌과 캄포트는 캄보디아 도시이며 시트웨는 미얀마, 초이발산은 몽골에 있다. 미얀마나 캄보디아라면 이해가 가도 몽골에 인도가 핵공격을 감행했다니 좀 의외였다. 인도가 그런 장거리 핵공격능력을 가졌을 리 없었다. 아마 보고중에 오류나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조형구는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렇게 핵을 퍼붓는지... 주요도시에 대한 핵공격으로 죽은 사람이 수천만 명이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만 해도... 휴.."

"어쩔 수 없습니다. 연합국으로선 불리해진 전황을 타개하기 위한 압박을 위해서라도 핵공격을 해야 합니다. 러시아나 중국도 이에 보복하기 위해 핵으로 대응하고 있고 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우리도 핵을 사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통군회의 이철행 의장이 방금 전 공식적으로 오퍼레이션 카오스 및 기타 핵공격을 요청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최초로 핵을 실전사용한 나라는 한국이다. 아랍전선에서 남아공군에 대한 포병용 전술핵탄두 공격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핵이 사용되기 시작한 다음 한국은 단 한 기의 핵공격도 감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군통수권자인 대통령 백기철이 상당한 온건파라는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무슨 소리요? 카오스는 미 본토에 대한 직접 핵공격 아니오?"

"미 본토 직접타격은 카오스의 2단계 계획입니다. 1단계는 미국 주변의 타국 대도시를 박살내는 겁니다. 오타와, 몬트리올, 토론토, 퀘벡이죠."

그 도시들은 모두 캐나다 동부의 대도시들이며 미국과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다. 분명 핵보유국간 핵공격을 금지한 핵사용 제한 조약을 위반하는 건 아니지만 미국에 강력한 심리적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미 본토를 직접 때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도 동반한다. 그렇기에 러시아와 중국도 캐나다에 대한 핵공격은 아직 하지 않고 있었다.

"카오스를 승인한다면 전 역사에 잔혹한 학살자라고 기록되겠죠."

"글쎄요? 더 일찍, 더 많이 핵을 사용한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이 있는데 설마 그러겠습니까? 영국과 프랑스, 인도도 제법 핵을 사용했고요.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새로운 연락이 와서... 뭐라고? 파키스탄이? 개나소나 다 핵이군. 각하, 파키스탄이 두바이를 날렸답니다."

"다들 미쳤어! 도대체 왜들 핵에 환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핵! 핵! 핵! 한 번 터질 때마다 수만 명에서 최대 수백만 명의 무고한 생명들이 죽어가는데! 진짜 누구 말따라 인간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생물입니다."

"모두들 종전협상에서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서로에 대한 경고, 압력의 의미이며 선제핵공격시 즉각 보복하겠다는 의지. 핵이라는 금단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만 그 금단의 영역에 한 번 들어간 이상 모두들 크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분명 수천 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걱정할 정도로 지금 각국 정부와 군 수뇌부는 여유롭지 않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수많은 사람들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국가 이기주의가 최악의 사태로 번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주의니 자비니 그런 단어는 소용 없습니다."

파키스탄의 두바이 핵공격 소식에 백기철이 분노했으나 조형구가 냉철하게 말하며 대통령이 결단을 촉구했다. 두바이는 UAE의 도시로 유명한 석유산지이다.

"진짜... 핵은 못하겠소."

"각하의 결단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많은 핵이 사용됩니다. 미국의 추가핵사용만 저지하면 다른 나라들도 핵을 사용하기 어려워집니다. 핵사용을 막기 위해 핵을 사용한다는 모순되는 말이지만 분명한 사실입니다."

"... 알았습니다. 통군회에서 요청한 계획은 뭡니까?"

"기존 카오스 계획을 축소하여 오타와와 몬트리올만 제압하고 대신 탄도탄을 발사해 밴쿠버를 제압하겠다는 것이 이철행 대장이 요청한 핵공격 계획입니다."

"승인합니다. 노무현함에게 명령을 내리고 통군회에도 핵공격 승인을 전달하십쇼. 그리고...인명피해를 최소화하고 미국에게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핵공격 사실을 통보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네, 각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침내 백기철이 내키지 않은 명령을 내렸다. 조형구가 속으론 뛸듯이 기뻐했으나 대통령 앞에서 그런 마음을 내보일 수 없어 태연한 모습을 취했다. 백기철이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말했다.

"이번 공격으로 핵전쟁이 중단되기를..."


9월5일 07:23 일본 혼슈 지바현 이치노미야

"무서운 세상이야. 심심하면 핵폭탄이 터지는 세상."

"뭐, 우리만 안맞으면 그만 아니야? 핵 맞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말야."

마이클 로버트 하사와 피터 요네츠 하사가 TV를 통해 보여지는 핵폭발 장면을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중립국인 오스트리아의 APA(Austrian Press Agency) 통신에서 내보내주는 자료영상이었다. 핵이 대규모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실제 핵폭발 장면을 직접 촬영한 일은 전무했다. 전쟁이 터진 이후 그리 유명하지 않은 언론들이 중립국 언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계적 언론으로 성장했다.

"어쨌든 이렇게 핵이 사용되어도 정작 핵보유국들은 공격받지 않고 있어. 핵 없으면 서러운 세상이야. 주요 핵보유국들은 참전국들을 위해 핵을 나눠줄 생각도 없는 모양이야. 이미 중남미 국가 다수가 연합에서 이탈했잖아? 핵 맞기 싫으니까 할 수 없겠지."

로버트의 말대로 핵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자신들에게 확실한 핵우산이 없는 나라들은 부랴부랴 병력을 빼내고 전쟁에서 발을 빼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아직 전선에 병력을 보내지 않은 파라과이와 페루는 바로 참전을 취소하고 중립을 선언했다.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벨리즈, 코스타리카 같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오세아니아의 소규모 섬나라들이 참전을 취소했고 유럽에서는 포르투갈이 참전을 취소했다.

이미 전쟁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나라들은 핵공격을 피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파나마와 필리핀은 대규모 미군 병력이 전선투입을 위해 대기중이어서 별다른 걱정이 없었다. 남아공은 예전에 핵을 모두 폐기했다는 선언을 취소하고 일부 핵이 남았다며 자신들도 핵공격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말을 믿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쟁이 터진 후 명목만 이어가던 무기암거래시장에선 전술핵을 찾는 나라들로 붐비고 있었다.

"핵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 무기라고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마구잡이식 핵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어. 하지만 그 목적은 변하지 않아. 서로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종전회담에서 상석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 의한 핵전쟁이라고. 각국의 정치인들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죽고 있어. 그것도 전쟁 주도국들이 아닌 힘없는 약소국들이."

"하지만 덕분에 전쟁이 일찍 끝날지도 모르지. 어느정도 핵을 사용하면 본토 핵공격을 염려하겠고 그렇다면 핵공격을 자제할 수 밖에 없어. 그럼 전쟁은 끝나게 되는 거야."

"그럼 다행이지."

- 방금 전, 평양에 있는 한국의 국방부 임시청사에서 전쟁승리 선언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전선에선 총포탄이 날아다니고 있고 언제 새로운 핵공격이 감행될 지 모르는 마당에 좀 황당한 선언이긴 하지만 한국군 장성은 전쟁승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 역시 미국이 직접 대 한국 핵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지금 전선에 투입된 연합군이 모두 참패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상륙한 연합군 4 개 군중 두 개가 집단 항복했고 다른 두 개도 연신 두들겨맞고 있습니다. 서로 직접 핵공격을 못한다면 지상전에서 승부가 갈리는데 이렇게 전황이 한국에게 유리한 상황이라면 한국이 승리를 확신할만 하죠.

- 어째서 한국은 미국이 자기들에게 핵을 쏘지 못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는 걸까요?

- 당연하죠. 미국이 한국에 핵을 날리면 오히려 손해거든요. 뉴욕하고 워싱턴에 버섯구름 피어오르는 거 보고싶어하는 미국인은 없을 겁니다.

APA의 아나운서와 군사전문가라는 사람이 한국의 전쟁승리 선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반도 전선이 어렵다는 것은 로버트와 요네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군사전문가란 사람은 일본과 중국 전선을 무시하는 크나큰 오류를 범했다. 두 전선에선 아직까지 연합군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도쿄 북부전선만 빼고...

"도쿄가 함락되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몰라. 하지만 도쿄 함락되기 전에 전쟁이 끝날 것 같은데."

요네츠의 걱정스런 말에 로버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이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를 할 가능성이 없었다. 쓰루가를 중심으로 기후와 이곳 이치노미야에 이르는 전선에선 아직까지 총성 한 번 들리지 않았다. 한국군의 대공세가 오사카와 교토 방면에서 있었지만 쓰루가 일대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

- 콰아아아아앙!!!!!

"뭐야? 오발사고인가?"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총성이나 포성은 모두 오발사고나 부주의로 인한 폭발사고에 의한 것이었다. 로버트가 오발사고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전차 4 대가 모두 격파당해 불타오르는 것을 오발이나 폭발사고로 볼 수 없었다.

- 콰아아아아앙!!! 콰콰콰쾅!!!!!!

"이런! 한국군이다! 도대체 언제 여기까지..."

주포를 돌리며 다가오는 한국군 전차들을 보고 기겁하며 말하던 요네츠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급히 엎드려 한국군의 총탄을 피한 로버트가 요네츠의 상태를 확인하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엔 피와 끈적끈적한 역겨운 액체만 있을 뿐이었다. 다시 주변에 한국군의 포탄이 떨어졌다.


*제 글에서 고증상 잘못된 점이라 바라는 점, 오타등이 있으면 메일이나 답변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타나 고증상 오류는 확인즉시 수정하겠으며 바라는 점은 제가 생각해 본 후 알려드리겠습니다.(제 소설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글에서도 나오듯 전략핵이 차별적으로 사용됐습니다. 핵이 이렇게 터지면 수천만 명이라는 목숨이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립니다. 그 수천만 명이 다 핵없는 약소국의 민간인입니다. 대략 핵전쟁은 극도로 반대하고 소설에서도 쓰지 않기로 연재초기 스스로 약속했습니다만 핵없는 나라가 핵전쟁에서 강대국들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희생양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결국 핵전쟁 강행했습니다.(경진님의 3차대전 영향도 있습니다^^)
*이제 에필로그 포함 두 편 남았습니다. 다음편에서 전쟁 끝내고 에필로그로 전쟁 후 간단한 이야기 좀 쓰면 세번째 대전쟁 연재 끝입니다. 아, 시원하다~~


바른생활 NZEO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려요.
2017-12-13
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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