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건 전쟁소설


THE 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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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QUIM 2부
서종건  2003-01-07 10:38:55, 조회 : 6,460, 추천 : 8


몇년만에 이렇게 하루만에 다시 연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ㅡㅡ; 이번 부는 저번 보다 좀 짦습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짧게 많이 연재할 생각입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길게 쓸 시간이 없거든요ㅡㅡ;;

그럼 2부 올라갑니다^^;

3월5일 01:02분
평안북도 신의주시 압록강 제2철교

언제나 그렇지만 이렇게 추운 밤에 보초를 선다는 것은 몹시 서글픈 일이다. 특히 눈 내리는 밤은 더욱 그렇다. 이렇게 눈발이 날리는 날이면 상념만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국경지대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그와 상반되는 지루함.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독한 추위. 꽃 피는 3월이라는데 이 곳은 눈이 온다며 박성수 하사가 투덜댔다. 눈이 많이 오지 않는 남쪽 지방에서 자란 그에게 이런 엄청난 폭설은 알 수 없는 경외감마저 느끼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에게도 이런 폭설은 정말 짜증나고 지겨울 따름이었다. 눈이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설작업을 실시했는데도 이 빌어먹을 눈은 또다시 차가운 철교를 조금씩 덮고 있었다.
"박 하사님. 저기."
조치수 이병이 가리키는 쪽, 그러니까 중국 측에서 웬 트럭하나가 느린 속도로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트럭이라. 영화에서 보면 이럴 때 트럭에서 갑자기 적군이 나타나서 병사들을 죽이던데.. 박성수는 잠깐 엉뚱한 생각을 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의가 없는 생각이다.
"정지! 정지!"
"에고. 추운데 수고하십니다 그려."
나이 40은 된 듯한 트럭 운전사가 그들을 보며 능글맞게 웃음을 지었다.
"뭐, 저희야 항상 하는 일인데요. 뒷 트렁크에 들어있는 건 뭡니까?"
"아! 저거요? 옷들이죠 뭐. 오늘 오전까지 납품해야 하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지체하면 너무 늦을 거 같아서요. 허허. 여기 세관에서 허가증도 있습니다. 빨리 가야 하는데, 이것 참."
트럭 운전사는 1분1초가 아깝다는 표정이었다. 운전사가 건넨 허가증을 확인한 박성수는 그냥 보내주고픈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그냥 보내기에는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잠깐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저희도 그냥 보내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희가 군인이다 보니 말입니다. 만약에라도... 아시죠?"
"허허.. 물론이죠."
박성수의 말에 운전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나 박성수는 운전사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조치수를 불렀다. 박성수의 명령을 받은 조치수는 귀찮다는 듯 엉금엉금 뒷 트렁크를 향해 뛰어갔다.
"추운데 근무하시느라 고생하시는데 이거라도... 몸 좀 녹이시라구요."
운전사가 꺼낸 건 술이었다. 박성수의 입에서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하. 뭐 이런 걸 다.. 야! 치수야! 뭐하냐! 바쁘시다는데 대충 하고 나와라!"
-퍽!-
"억!"
박성수가 말을 꺼내기 무섭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조치수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엎어졌다. 그 뒤를 이어 검은 그림자 하나가 차 트렁크에서 뛰어내려 남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 저거 뭐야! 씨발! 빨랑 잡어!"
박성수가 고래고래 악을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조치수가 급히 일어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더럽게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놈이다. 그냥 숨어 있었으면 대충 보내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박성수의 몸도 뛰기 시작했다. 그가 떨어뜨린 술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빌어먹을! 잡으란 말야!"
잡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반해 몸이 너무 굼떴다. 검은 그림자와 그들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박성수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름을 느꼈다. 다급해진 그에게 조치수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야.. 야! 뭐 하는 거야! 으악! 안돼! 쏘지마!"
-빠바방!-
너무 늦어버렸다. 아쉽게도 그의 고함소리는 조치수가 쏜 세 발의 총성에 묻혀 버렸다. 퍼벅 소리와 함께 등에 총알을 맞은 듯 도망가던 그림자가 한번 움찔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맙소사... 좆 됐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은 조치수는 총을 들고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그를 향해 달려간 박성수의 주먹이 조치수의 안면을 강타했다.
"미친새끼!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줄 아냐! 이런 쌩또라이 새끼!"
멀리서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번 쓰러진 그림자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


3월5일 08:12분
평안북도 용천군 인흥리

어제 밤새 내린 눈에도 불구하고 부대까지 가는 도로사정은 새벽에 완료된 제설작업으로 인해 운전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검은색 아스팔트와 황토가 섞인 도로변의 눈들과는 달리 들판을 가득 매운 백색의 결정체들은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듯 경쟁하듯 햇빛에 반짝였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도 석민의 불편한 마음을 감춰주진 못했다. 어젯밤 술이 떡이 되어 거실에서 퍼질러 자다가 새벽에 몰래 도망간 준호 덕분에 석민은 따뜻한 아침밥 대신 혜진에게 잔소리만 배부르게 먹고는 쫓겨나다시피 집에서 나와야 했다.
"필승! 신분증 좀 보여 주십시오."
귀찮은 표정으로 신분증을 줬다 다시 받은 석민은 위병의 경례도 건성으로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런 그가 영내로 들어선 순간 부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중대 상황실에 들어서면서 마주친 장교들과 부사관들의 경직된 표정이 석민의 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무슨 일이야?"
부대로 돌아가면 단단히 따져야겠다는 다짐도 잊어버린 체 석민은 다른 군인들처럼 얼굴이 잔뜩 굳은 준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일이 터졌다."
"일?"
"신의주 쪽 국경 검문소에서 밀입국하려던 중국인 한 놈이 아군 사격에 죽었단다."
"뭐!?"
석민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그를 쳐다보자 석민은 잠깐 미안하단 표정을 짓고는 다시 준호에게 질문공세를 시작했다. 어쩐지 지난밤 꿈자리가 사납다 했더니..
"언제? 어떻게 된 거야?"
"오늘 새벽이란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겠고 하여튼, 중국 정부에서 항의 들어오고 난리 났다. 3경비 여단만 죽어 났지 뭐."
"하지만 아직 비상 걸린 건 아니잖아?"
"정부에선 대충 사과하고 넘길 모양인데.. 중국이 문제지. 요즘 그 인간들 신경 더럽게 날카로울 텐데.. 이런 일이 터지다니.. 젠장."
"까짓 거 한번 붙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둘 모두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북.중 전쟁에 참전했다던 김필규 상사였다. 평소 때는 온화한 성격인 그는 꼭 중국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곤 했다. 그의 입을 빌리자면 중국은 '형제의 나라를 배신한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들'이었다.
"북조선은 지금의 조선보다 훨씬 힘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제국주의 침략자들을 무찔렀소. 북과 남이 합쳐진 마당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어디 있겠소?"
"하지만 북.중 아니 조국수호전쟁에서 옛 북한군이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비해 중국군도 현대화되고 강력해졌지요. 그들이 그 치욕을 잊고 있을 거 같습니까?"
석민은 북.중 전쟁이란 말을 쓰려다 급히 '조국수호전쟁'으로 말을 바꿨다. 북한 출신 국관들에게 있어 '조국수호전쟁'에 참전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영광 중에 하나였다. 더불어 실전경험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남쪽 출신 군관들에게 알 수 없는 우월감을 느끼곤 했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들의 영광스런 전쟁이 또 하나의 다른 이름으로 불러지는 것을 몹시도 싫어했다. 그걸 알고 있는 석민이 굳이 김 상사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당나라 군대가 아무리 발전해 봤자 당나라 군대지요. 그리고 난 조국과 가족을 맞바꿨소. 내게 있어 조국은 무엇 보다 소중한 존재요. 이런 조국을 위해서라면 난 지금이라도 총을 들 수 있소."
조금 웅성거리던 상황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김필교 상사에게 있어 북.중 전쟁은 영광임과 동시에 죽을 때까지 지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신의주에 살고 있던 그의 가족들은 개전 첫날 중국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무참히 살해당했다. 온 가족이 몰살됐다는 사실을 그가 안 것은 전쟁이 끝나서 였다. 전쟁에서 그가 세운 무공도, 그리고 그가 받은 훈장도 그의 아픔을 상쇄시켜주진 못했다. 그는 어쩌면 그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 그가 또 한번 수많은 전공을 세운다 해도 그의 피맺힌 한이 풀릴지는 미지수였다.
"에구. 맞다. 깜박 잊고 있었네. 김 상사님.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분위기를 살피면서 준호가 약간 흥분한 김필교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모두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각자 자신이 하던 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석민은 처음으로 혜진을 이 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전쟁이 쉽게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있는 이곳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 김경진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6-26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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