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건 전쟁소설


THE REQU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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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P PURPLE Chapter-1 이런 뷁!(2)
서종건  2003-07-13 22:03:00, 조회 : 6,119, 추천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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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야깁니다. 앞으로 연재속도가 상당히 빨라지겠습니다^^;

5월4일 같은 시간 동해 인근 해역
SS-599 아키시오

-수측실입니다. 방위 1-2-0 장거리에서 연속적인 미약한 노이즈. 저주파 탐신음 같습니다."
"확인하라, 저주파 탐신음이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거리가 정확치 않고 반향음을 확인할 수 없어 표적의 위치까지 알 수는 없지만, 헬리콥터 탐신음으로 추측됩니다.-
"알았네. 피곤할 텐데 수고했네."
다리카 중좌는 수측실을 짧게 칭찬하고는 약하게 인상을 쓰며 부함장을 돌아보았다. 와야키 소좌 역시 다리카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언가가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의심이 가지 않나? 또 저 친구들이 허탕을 친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저희가 추적을 한 것만 거의 보름입니다. 대잠 헬기가 핑을 신나게 날려대고 있다면...아무래도 무언가 확실히 발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1-2-0이면 가네시오가 있을법한 위치는 아니지만... 혼다 중좌가 워낙 돌출행동을 잘 하는 편이니 아무래도 불안해. 이러다가 우리가 걸릴지도 모르고 말이지."
다리카는 작도판 앞에서 턱을 괴고 다시 해도를 확인했다. 만약에 한국 구축함을 기점으로 아키시오와 정 반대 위치에 있던 가네시오가 포착 당했다면 비슷한 거리에 있는 아키시오 역시 포착 당할 확률을 배제할 수 없었다. 충전된 전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아키시오로서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일단 좀 이르더라도 함을 정지시키고 스털링으로 충전부터 해두도록 하지. 늦봄이라기보다는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이니 저심도에 정지해 있다면 웬만해선 탐신이 불가능할 테고... 충전을 완료할 때쯤이면 구축함과의 거리도 꽤 멀어져 있지 않을까 싶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함장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리카가 와야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잠깐 잠수함의 상황을 체크하던 다리카는 곧, 인근 저심도 수괴 사이에서 기관을 정지시켰다. 아키시오가 항해를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조추진체계인 스털링이 저출력으로 충전을 시작했다.
다리카는 요즘 들어 이래저래 불안정한 양국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 곳을 떠나고픈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충전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사실 그의 그런 조급한 마음을 접을 수밖에는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잠수함 그 자체라는 것을 그는 명심, 또 명심했다.

"후...... 죽겠군."
함장이 내린 휴식 명령에 고이케 히토시 2조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오랫동안 수염을 깍지 않아 덥수룩해진 턱수염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다. 수측실 여기저기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흘렀다. 정말 간만의 휴식이었다. 그러나 쉰다고는 하지만 침묵상태까지 해제된 건 아니었기에 아직 고이케 2조를 비롯한 수측실 요원들의 행동은 조심스러웠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은 거죠?"
고이케 2조가 흥분된다는 표정으로 수측장을 쳐다봤다. 고이케 2조나 다른 나머지 대원들의 얼굴에서도 이제 작전이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역력했다. 잠깐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측장이 설래설래 고개를 저었다.
"이런. 벌써부터 흐트러지는 건가?"
"하하. 그런 건 아니고...... 그래도 무슨 일 있겠습니까?"
"쯧쯧.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더욱 긴장해야 하는 거네. 게다가 요즘처럼 일. 한 양국의 관계가 비정상적일 때는 더더욱. 자칫 우리 아키시오가 큰 실수라도 한다면 그건 바로 전쟁으로 연결될 수도 있어. 명심하라고."
"예. 예. 아무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고이케 2조를 보면서 아키시오의 수측장 구라타 아츠시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입에서 '요즘 젊은 놈들은,' 이란 말이 나오려는 걸 겨우 목구멍에서 삼켰다. 자신이 젊었을 때와 지금의 고이케 2조가 어느 하나 다를 게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갑자기 그의 입에서 픽 웃음이 나왔다. 벌써 이런 생각을 하다니, 자신이 그렇게 늙어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많아봐야 그와 다른 수측실 대원들과의 나이차이는 열 살 미만이었다.
뻑적지근한 몸을 비틀자 뼈 마디마디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보다 더 피로를 느끼는 듯 했다. 다만 그의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 그의 심연에서부터 올라오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었다. 구라타는 제발 자신의 불길한 꿈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5월4일 PM 5:12 독도 인근 해역
SS-598 가네시오

"현재 22노트입니다. 함장님?"
가네시오의 부장 나카시마 고노 소좌의 관자놀이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턱 선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미 나카시마의 셔츠는 마치 샤워를 한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처음과 달리 점점 고조되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나카시마 소좌는 분명 느끼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보고를 올린 그가 함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혼다 중좌는 애써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흔들리면 가네시오는 끝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몸과 심장을 조여오는 거대한 공포를 물리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혼다 중좌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공해까진.. 아직 멀었나?"
"약.... 12km 정도입니다."
"12km라......"
처음으로 부장의 의견을 따른 것이 잘한 결정인지 혼다 중좌는 은근히 고민하고 있었다. 부장의 말대로 디젤이 아닌, 전동기로 추진하고 있는 가네시오의 배터리 양은 아직 충분한 상태고 동쪽 해역에 한국 해군의 잠수함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크게 우회해서 공해로 빠져나가는 것은 확실히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그 잠수함을 마지막으로 추적했던 때가 벌써 3일전이었다. 지금 그는 아직도 한국 해군의 잠수함이 이곳에 남아있으리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소너가 정상으로 작동한다면 이런 조급함은 덜할 것이다. 지금 그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면서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맹인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최고 속도로 항해하는 배에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는 소너는 아직까지 발명되지 않았다.
몇 몇 승무원들이 애가 타는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울부짖는 가네시오의 목소리를 듣기에 그들은 너무 여렸다.


5월4일 PM 5:15 독도 인근 해역
SS-599 아키시오

"응?"
아키시오가 재충전을 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던 구라타 아츠시의 몸이 움찔했다. 구라타의 귀에, 심연 저편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울부짖음이 잡혔다.
"어이! 이봐. 고이케 2조."
"네?"
한쪽에서 잡담을 나누던 고이케 히토시 2조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구라타를 쳐다봤다. 구라타는 대답을 하기보단 직접 자신의 귀를 덮고 있는 헤드셋을 톡톡 쳤다. 그의 행동을 눈치챈 고이케 2조와 다른 수측실 대원들이 급히 헤드셋을 들어 각각 그들의 귀에 가져다 댔다.
"으...... 이...... 이것은......"
눈을 감고 온 신경을 귀에 집중시키던 고이케 2조의 입에서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몸을 떨던 그가 눈을 번쩍 떴다.
"들었나?"
"네. 도대체, 이런......"
자신의 귀를 때리는 듯한 격한 소음. 간간히 들리는 스쿠류의 소음으로 봐서 이건 잠수함이 내뿜는 소리라고 밖에는 생각할 게 없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한가지 의문이 뒤따랐다. 잠수함이 자신을 노출시킬 위험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폭주하는 것은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도대체 왜?
"한국 해군이 신형 디코이를 시험하는 건......"
"멍청한 녀석! 그걸 말이라고 해?"
와타나베 3조의 말에 고이케 2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러나 고이케 그도 머리 속의 혼란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다.
"쉿. 조용히. 조용히. 모두 침착해."
구라타가 손을 들어 대원들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잠수함의 소너를 담당하는 그들은 잠수함의 귀와 눈이었다. 구라타는 항상 자신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함장과 잠수함이라고 해도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이런 혼란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함장님께 보고를 올리는 수밖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함장님. 잠깐 수측실로 와 보시겠습니까?"
구라타가 발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느낌과 동시에 커튼이 젖혀졌다. 함장 미즈타니 다리카 중좌가 살짝 고개를 들이댔다.
"왜? 무슨 일인가?"
"잠깐 이 것 좀 들어보십시오."
구라타가 건넨 헤드셋을 받아든 다리카 중좌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헤드셋을 귀로 가져갔다. 잠깐 헤드셋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집중하던 다리카 중좌가 놀란 얼굴로 구라타를 쳐다봤다. 구라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잠수함 소음이 확실한가?"
"네. 소음으로 봐서는 가네시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네시오? 그럴 리가."
다리카 중좌는 모든 게 의문 투성이 뿐이었다. 가네시오가 저렇게 폭주를 한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고 가네시오가 이쪽 해역에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순간 다리카는 3O분전에 들렸던 저주파 음을 떠올렸다.
"젠장. 확실하군. 그래. 가네시오가 걸렸던 거야. 바보같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도. 그런데 도대체 왜 가네시오가 여기에 있는 걸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가네시오가 포착됐다 하더라도 지금 돌진하고 있는 방향인 1-2-0이 아닌 반대방향이 되어야 옳았다. 그때 다리카 중좌를 뒤따라왔던 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함장님. 지금 저희가 위치한 곳이 저희가 생각하는 지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자이로에 오차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입니다. 워낙 변침이 심했던 까닭에. 게다가 그 동안 GPS 수정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잠수함이 위치 추정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관성항법(Intial Navigation)이다. 이 방법은 측정위치산출방식으로 컴퓨터에 의해 정학한 잠수함의 위치를 산출한다. 관성항법 장비는 3차원 공간에 자이로로 안정되고 가속도계에 연결된 플랫폼에 설치되어 있으며 가속도계가 동서남북의 날개 위에 놓여있다. 움직이는 물체는 가속도를 가지며 움직인 거리만큼 역방향으로 복귀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나침의나 속도계는 조류 때문에 표시되는 침로와 속력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관성항법 장비는 잠수함 위치를 정확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며 나침의와 속도계에 의해 산출되는 침로와 속력과의 차이도 제시해준다.
그러나 관성 항법 장비도 장시간 잠항해 있을 경우 오차가 발생하며 수시로 GPS나 다른 수단에 의해 최신 위치를 수정한다. 다시 말하면 잠수함이 최종 위치를 가지고 잠항하여 관성 항법 장비에 의해 추정 위치로 수중에서 항해를 하며, 통신 수신 또는 스노켈시에 GPS위치를 확인하여 정확한 위치를 수정한다.
<출처: 버거비의 잠수함탐방 http://bodugy.ms98.net/>

"젠장. 그랬군."
다리카 중좌가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지금 가네시오가 저 정도의 속력으로 이 곳으로 돌진하고 있다면, 자신들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했다.
"어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지금도 꽤 늦었습니다."


5월4일 PM 5:20 독도 인근 해역
NH-90 기내

"대단하군요. 말 그대로 폭주입니다."
소라를 맡고 있는 강성형 중사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자신들이 쫓고 있는 이 잠수함은 필시 일본 해군의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전에 한번 수집한 적이 있는 오야시오급의 소음과 비슷한 수준의 소음이 그런 강 중사의 예측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흥분한 강 중사의 말을 들은 손용호 소령이 누런 이빨을 들어내며 큰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일본 잠수함대에 골탕을 먹은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렸는데 오늘 그 복수를 철저하게 해준 셈이었다. 오히려 엉덩이에 불을 덴 것처럼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저 잠수함이 가련할 지경이었다.
"일본 녀석들이 이번 일 가지고 또 뭐라고 시비 거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기장 한경호 중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별일 있겠어? 여기는 우리 영해라고. 저놈들이 우리말 듣고 부상하지도 않을 테고. 그리고 내가 저 잠수함 함장이라면 쪽팔려서 이 사실 못 밝힌다. 아니, 쪽 팔릴게 뭐야? 당장 자기 목부터 잘릴텐데. 게다가 우리가 저놈을 공격했냐? 우리는 그저 경고할 뿐이야. 일본이 항의하면 어때? 물증이 있어? 잡아 때면 그만이지."
손 소령은 자신들의 이런 행동이 한. 일간의 회담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이어도 남쪽, 제4, 5광구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가 발견된 이후, 일본은 줄기차게 한국에 공동개발을 요구하고 있었다. 일본은 원유가 발견된 곳의 일부가 대륙붕공동개발구역에 포함되었다는 것과 이 일대가 일본의 EEZ 안쪽이라는 이유였다.
물론 한국은 이런 일본의 요구에 절대 불가 방침을 견지하고 있었다. 원유가 발견된 대륙붕의 일부가 공동개발구역의 일부라고 해도 그 구역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과 제4, 5광구가 한국이 관할하는 대륙붕이라는 점. 그리고 EEZ 협정과 대륙붕 협정은 전혀 별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한 한국은 무인도인 조도(鳥島)와 남녀군도를 기점으로 한 EEZ를 일본이 주장할 경우 한국도 이어도를 기점으로 설정한 EEZ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음을 밝혔다.
이 지루한 싸움이 벌써 3년을 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소극적이던 일본이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된 것은 도쿄 대지진 이후였다. 2년 전, 그 전부터 계속되었던 지질학자들의 경고대로 도쿄에서 터진 대규모 지진은 그렇지 않아도 침체되어 있던 한. 일 양국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일본은 일본대로 큰 타격을 입은 게이힌(京濱) 공업지역의 재건에 허리가 휠 지경이었고 그 때문에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한국의 산업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서 추정매장량 100억 배럴이라는 이 광대한 규모의 유전은 더욱 돋보였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10년 분량에 맞먹는 이 유전을 개발할 경우 원유수급을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한국 경제를 뿌리부터 바꿀 수도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일본도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 일본의 속셈을 알고있는 한국이 일본의 요구를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그런 가운데 회담이 계속 질질 끄는 듯한 느낌을 보이자 일본 경제계의 집중적인 로비를 받은 일본 정부의 압박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남해에서 해군과 공군을 동원한, 훈련을 빙자한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였다. 또한 동해와 남해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들을 자국의 EEZ를 침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나포함으로써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요즘 일본이 워낙 드세야지요. 요즘 뉴스 보니까 일본 정치인 중에 차라리 전쟁을 일으켜서 유전을 독차지하자는 사람도 있다던데요."
"에이. 그런 놈들이야 소수고. 별일 없겠지. 별일 없을 거야......"
애써 웃긴 했지만 한 중위의 걱정에 손 소령도 약간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침투한 잠수함 추적했다는 이유 때문에 전쟁을 벌일 정도로 일본이 미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전쟁을 일으킬 명분도 안되거니와 만약 그런 이유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미 인류는 멸종해야 했다. 물론 옛날엔 스페인 해군이 자국 상인의 귀를 배어갔다는 이유로 영국이 전쟁을 일으킨 일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17~18세기가 아니지 않는가.

'젠킨슨의 귀' 전쟁 1738년. 영국 상선 제네컨 호의 선장 로버트 젠킨스(Robert Jenkins)가 1731년 서인도 제도에서 스페인 경비대에게 한쪽 귀가 잘렸다는 사실을 영국의회에 보고하게 된다. 이 사건이 정치 쟁점화 되고 반스페인 여론이 조성되어 결국 1739년 10월. 영국은 스페인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다. 이 전쟁이 이른바 '젠킨스의 귀' 전쟁이다. 한 인간의 귀가 원인이 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전쟁인데 사실 그 이면에는 식민지 문제에서 비롯된 양국간의 긴장과 갈등이 그 주된 이유라 할 수 있다. 특히 스페인령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밀수에 관여한 영국 상인들이 스페인 해안경비대에게 갖은 고초를 당한 일이 많았는데 이런 일련의 일들 때문에 영국의 스페인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은 상태였다.
참고로 과거에 스페인와의 전쟁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던 영국 해군은 전쟁 후, 자만했고 반대로 스페인 해군은 패전을 계기로 새롭게 거듭나 있었다. 양국은 여러 곳에서 전쟁을 벌였는데 영국 해군은 카리브해에서 스페인 해군에 대패하는 등, 자만에 따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일단. 저놈들이 영해 밖으로 나갈 때까지만 기다리자고. 뭐. 그때까지 연료가 남는다면 말이야."


5월4일 PM 5:31 독도 인근 해역
SS-599 아키시오

"저주파 액티브 탐신입니다! 로터음도 포착! 방위 1-2-0. 거리 2000m 정도입니다. 가네시오 근처입니다."
"이런."
다행인 건지, 아니면 운이 없는 건지 아키시오가 체 시동을 걸기도 전에 저주파 소너음이 아키시오 수측실 대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시동 중지해야 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우리도 걸립니다."
"빌어먹을. 늦었어. 늦었다고. 헬리콥터가 지금 떠난다 해도......"
가네시오가 내뿜는 소음이 바다를 뒤흔들고 있긴 하지만 저 헬리콥터가 그들을 잡아내지 못하리란 보장은 할 수 없었다. 출항 전 정보가 확실하다면 저 헬기는 기존의 슈퍼링스가 아닌, 신형 NH-90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 기종은, 족집게처럼 아주 작음 소음이라도 잡아낸다는 유럽의 FLASH 저주파 소너를 탑재하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저들이 돌아갈 때까지 이대로 손만 빨고 있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젠장. 너무 가까운데....."
자꾸 가네시오와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던 다리카 중좌가 발을 동동 굴렸다. 다리카 중좌의 귀에 가네시오의 소음이 들리는 듯한 환청이 일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 당장 저들이 이 곳을 떠난다면 겨우 충돌은 피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눈치 없는 한국 해군의 헬리콥터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다리카 중좌의 속이 바싹 타 들어갔다. 자칫하면 아군 잠수함끼리의 충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이없는 일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5월4일 같은 시간. 독도 인근 해역
NH-90 기내

"연료 빙고 상태입니다."
한 대위가 한 손으로 연료 게이지를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남아 있는 연료의 양을 가리키는 게이지가 계속 빙고 상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 정도 연료면 자함인 최영함에 딱 돌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쩝. 벌써?"
연료 게이지를 쳐다본 손 소령이 은근히 아쉬움을 나타냈다. 처음 긴장과는 달리 계속 잠수함을 추적하면서 슬쩍 즐거움을 느꼈던 그였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이만하면 저놈들도 많이 놀랬겠지. 그래. 공해도 얼마 안 남았고...... 돌아가자."
"네. 알겠습니다."
부장의 대답과 함께 디핑 소너와 연결된 와이어가 천천히 헬리콥터로 들어왔다. 디핑 소너를 완전히 수납한 헬기는 잠깐 호버링을 거듭하다가 기수를 북서쪽, 최영함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우리 먼저 간다잉. 또 보자고."
"킥킥."
장난스런 손 소령의 말투에 한 대위가 웃음을 터트렸다.
헬기를 조종하던 손 소령이 무심코 고개를 돌려 서쪽 하늘을 쳐다봤다. 낙조였다. 눈이 시리도록 붉은 태양을 동해의 물결이 집어삼키고 있었다. 손 소령은 해처럼 붉디붉은 동해의 파도가 태양이 흘린 선혈이라고, 그의 마지막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섬뜩하리만치 무서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 동해의 물결이 자신을 유혹함을 느낀 손 소령이 두렵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5월4일 같은 시간 독도 인근 해역
SS-598 가네시오

"조금만, 조금만 더. 공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혼다 중좌가 연신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방금 전, 또 한번 가네시오를 때린 한국 해군 헬리콥터의 액티브 탐신 이후, 승무원들 사이에는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승무원들을 진정시키던 혼다 중좌가 옆에서 들릴 정도로 바드득 이를 갈았다.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그의 손과 턱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겨우 참았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무능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자신들을 농락하듯 줄곧 그들을 따라오는 한국군 대잠기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혼다 중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 자신들의 앞쪽에는 그들과 같은 일본 잠수함대의 동료함. 이키시오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네시오의 소너는 더 이상 그 효율을 발휘할 수 없었다.

5월4일 PM 5:45 독도 인근 해역
SS-599 아키시오

-위이이잉.-
아키시오 내부에 스털린 기관이 힘차게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헬리콥터가 사라진 직후, 바로 시동을 걸었는데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시동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전동기 추진의 한계였다.
"기관실. 시속 2노트로 증속! 조타실. 급속 변침!"
"기관실. 시속 2노트로 증속하라! 조타실. 방위 0-9-0으로 급속 변침!
다리카 중좌가 다급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부장 시로가네 와야키 소좌가 급히 명령을 보완해 복창했다. 이미 가네시오와 꽤 가까워졌다는 수측실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급히 피한다면 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이잉!-
거대한 3000톤급의 잠수함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쿵! 쿵!-
충격은 함미에서 밀려왔다. 충돌이었다. 다리카 중좌는 자신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가네시오가 빠른 속도로 아키시오의 함미와 부딪히면서 조심스럽게 옆으로 몸을 틀던 아키시오의 동체가 그 방향으로 휙 꺾였다. 충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키시오의 동체가 완전히 방향을 꺾는 순간 가네시오의 함미타가 마치 칼처럼 아키시오의 기관부와 함미타를 훑었다.
"으으으으.."
털썩 그 자리에 쓰러진 다리카 중좌가 마치 지진을 방불케 하는 진동에 몸을 떨었다. 공포였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리카 중좌를 휩쓸었다. 충격으로 인해 작도판에 올려져 있던 여러 물품이 다리카 중좌의 몸을 덥쳤다.
"윽!"
오른손 손 마디마디에 느껴진 큰 아픔에 다리카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작도판에서 떨어진 머그잔이 그의 손에 떨어져 깨져 있었다. 파편에 긁혔는지 손에서 조금씩 피가 흘렀다.
시작이 그랬듯 공포의 끝도 갑작스러움이었다. 순간적으로 격한 진동이 사라지고 함 내부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곧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터졌다. 첫 번째 충돌 때 당한 듯, 큰 부상을 입고 쓰러진 부하들이 몇 있었다. 그 사이에는 부장도 끼어 있었다. 뇌진탕을 당한 듯 부장은 함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힘겹게 부장에게 다가갔다. 순간 그는 뜨뜻하게 적셔진 아랫도리를 느꼈다. 오줌을 지린 모양이었다.
"젠장......"
후끈 달아오른 그의 표정과 대조적으로 뜨뜻했던 아랫도리가 빠르게 식혀졌다. 곧이어 끝없는 서늘함이 다리카 중좌를 엄습했다.

기관부의 기능을 상실한 아키시오는 그대로 해수의 흐름을 따라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키시오의 함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구명부이가 사출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구명부이는 자이로의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다.


5월4일 PM 5:55 독도 인근 해역
SS-598 가네시오

"빌어먹을. 젠장. 으......"
부장을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난 혼다 중좌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터졌다. 생각지도 못한 충돌이었다. 그의 왼쪽 팔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아마 충돌할 때 팔목이 나간 모양이었다. 질긴 아픔이 신경을 타고 혼다 중좌의 두뇌를 때렸다.
"214급과 충돌한 것 같습니다."
"214?"
아직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혼다 중좌에게 부장이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렸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혼다가 오른손으로 이마를 쳤다.
"빌어먹을. 214......"
정황으로 볼 때 부장의 말대로 자신들과 충돌한 상대는 한국 해군의 214급이 맞는 듯 보였다. 아키시오가 이 해역에 있을 리가 없는 이상, 그들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함정은 214 뿐이었다.
"피해 상황은?"
혼다 중좌는 생각보다 자신이 오래 정신을 잃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물음에 부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오른쪽 함미타 사용 불가능. 그리고 소너와 어뢰관 모두 사용 불가능입니다. 충돌 때 큰 피해를 입은 모양입니다."
"침몰 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이건가. 214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들 역시 꽤 큰 피해를 입은 걸로 추측됩니다. 최악의 경우 214의 침몰까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저들 잠수함은 우리보다 훨씬 작습니다."
"침몰이라."
콱 침몰해버렸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엿같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혼다 중좌가 힘겹게 명령을 내렸다.
"일단 상부에 보고해. 한국 해군의 214로 추정되는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젠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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