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사이즈



  윤민혁(2004-06-16 02:20:40, Hit : 23434, Vote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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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사이즈]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1)


  근미래 가상 전쟁소설 <아이언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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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1.

  "에미르(Emir)! OZ77로 망 전환한 다음 전방으로 더 전진해서 저 능선 위를 막아라! 주파수는..."
  지금은 1973년 10월 9일 오전.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지금 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군 7기갑여단 예하 71전차대대의 잔존 전차 8대의 지휘권을 인접 대대인 77전차대대 대대장 아비그도르 카할라니(Avigdor Kahalani) 중령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사실뿐이었다.
  77전차대대에 남은 전차는 단 6대 뿐이다. 71전차대대의 잔존 전차까지 모두 넘겨주지 않으면 도저히 칸 아르나바(Khan Arnava)와 텔 다후르(Tel Dahur) 두 축선에서 부스터 능선 방향으로 전진, 어젯밤에 능선 바로 앞 통로를 확보한 시리아군 <아사드(Asad)> 공화국수비대 전차여단의 전진을 저지할 수 없었다.
  시리아군 전차여단은 전차 3개 대대와 기보 1개 대대로 구성되고, 전차 1개 대대는 31대다. 그러니까 지금 7기갑여단 예하 77전차대대와 71전차대대의 잔존 전차 14대 - 능선 너머 멀리에 고립돼 있는 자미르(Zamir) 대위의 전차 4대는 뺀 숫자다. - 는 시리아군 전차 93대와 정면으로 충돌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다. 인접한 188기갑여단에서 배속받은 야이르 나프시(Yair Nafshy) 중령의 4전차대대는 분산된 채 와해돼서 통제가 되지 않고, 요스 엘다르(Yoss Eldar) 중령의 75기보대대는 전차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천하무적이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수적 열세 하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미 여단은 오늘 아침나절의 전투에서 부스터 능선을 빼앗겼고, 적은 능선 남쪽으로 형성된 와디(Wadi : 비가 오면 물이 흐르지만 평소에는 말라 있는 강이나 개울을 가리키는 아랍어. 건천乾川)를 따라 여단의 측익을 우회하려 하고 있다. 이들을 저지하기에 현재 7기갑여단은 너무 열세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적군 단대호를 알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그걸 알 리가 없는데? 그러나 그런 걸 의심할 시간도 없었다. 지금 당장 능선 위에는 적 전차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쪽에서 115밀리 전차포탄이 여러 발 날아와서 아군 전차들을 불태웠다. 그는 서둘러 에미르 하사의 71대대 A13호 전차에서 뛰어내려 다음 전차로 가기 위해 자기 전차인 B42호차에 뛰어올랐다. 이제 다른 전차는 모두 불렀고, 남은 차는 C12호차 뿐이었다.
  그는 단차장 큐폴라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승무원 헬멧의 통신 커넥터를 포탑 내부 컨트롤러에 삽입했다. 그리고 조종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제 C12호차 쪽으로 가야 한다. C12호차는 전방 능선 위에서 전방 휴전선 일대 대전차호 쪽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조용히 투덜댔다. 각 대대 전차들 주파수가 중대별로 다르니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육성으로 무전 주파수를 입력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짜증났다.
  대대장만 살아 있었어도! 대대장 메나헴 라테스(Menahem Ratess) 중령은 약 20분 가량 전에 지프차를 타고 지휘하던 중 - 여단의 예비전차 부족 때문에 라테스 중령은 자신이 탈 전차를 수령하지 못했다. - 시리아군 전차포의 직격으로 지프 운전병, 대대 무전병, 대대 작전참모와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그가 살아 있고 그의 무전기만 무사했어도 이런 쓸데없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상황 때문에 71대대는 사기가 크게 꺾여 뒤로 수백 미터나 물러나 버렸고, 그래서 77전차대대 혼자 위기에 노출된 셈이었다.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라테스, 라테스! 여기 카할라니!]
  전차를 몰고 전진하는 동안 라테스 대대를 부르는 77대대장 카할라니 중령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렸다. 그는 잠시 살아남은 전차 전차장들의 계급을 생각해 보았다. 이제 보니 자신이 제일 높았다. 그는 상사니까. 지금 부르러 가는 C12호차가 차선임인데, 그는 중사였다. 그는 무전기를 잡았다.
  "카할라니. 여기 콘스탄트(Constant). 당소가 대대 최선임임."
  [관등성명은?]
  "... 권경준, 권경준 상사임. B중대 4소대 선임하사라는 통보, 이상."
  이스라엘인 이름치고는 이상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난 이스라엘군이 아닌가? 계급도 이상하다. 내 계급은 상사가 아니라 대위다. 그러나 그런 걸 따질 틈이 없었다. 권경준이 그런 의문을 품기도 전에, 카할라니 중령이 바로 무전을 날려 왔다.
  [잘 들어라, 콘스탄트! 귀소는 즉시 내가 있는 이 지점을 인수해서 저 와디 입구를 통제해야 한다. 와디를 빠져 나오는 적 전차를 모조리 파괴해야 한다. 이상!]
  카할라니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의 휘하에 있는 전차는 단 6대. 그나마 오늘 오전 내내 치열한 전차전을 벌였기 때문에 남은 탄약은 고작해야 전차마다 네다섯 발이 전부일 것이다. 71대대라고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른 건 아니지만, 적어도 71대대는 잔여 전차가 77대대보다는 많고 교전 시간도 짧았으니까 77대대보다는 탄약을 몇 발 더 가지고 있다고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시간 동안 77대대도 차내탄약 재배치를 마치고 합류해서 역습을 들어가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권경준으로서는 카할라니의 지시를 그대로 따를 수가 없었다.
  "수신완료. 하지만 당소는 현재 탄약이 없음!"
  [......]
  권경준이 탄 센추리언(Centurion) 개조 전차에는 탄약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른 전차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까부터 각 전차마다 능선 위를 장악하라고 지시했을 때 돌아온 모든 전차장의 대답이 똑같았던 것이다. 솔직히 71대대가 교전 자체는 적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탄약보급 우선순위에서는 77대대에 밀려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여튼 그의 말을 들은 카할라니는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침묵했다.
  [알았다. 현 위치에서 잠시 대기하라. 이상]
  "수신완료."
  그러는 사이, 멀리서 육중한 포성이 들려온다. 영국제 105밀리 L-7 전차포 특유의 포성이었다. 지난 2010년 2차 한국전쟁 당시 해병대 전차들이 쏘아대던 포성이라서 낯익었다. 아니, 그런데 지금은 1973년인데? 이상하다. 1973년에 살고 있는 내가 2010년 전쟁을 어떻게 경험한 거지?
  하여튼 이제 전차포성만이 아니라 주변에 야포탄이 빗발치듯 낙하하기 시작했다. 10월 7일 오후 2시 이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나 겪었던 적 포탄 낙하 상황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별다른 감흥도 없지만, 지금까지 71대대가 치른 희생의 60퍼센트는 바로 이 포병사격에 의한 것이었다. 뭐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포탄을 맞아 죽으면 적어도 지금의 악몽에서는 해방될 수 있을 텐데.
  [콘스탄트, 여기 카할라니!]
  그때 갑자기 카할라니가 권경준을 불렀다. 권경준은 통신 헬멧에 붙은 무전기 키를 잡으면서 대답했다.
  "여기 콘스탄트. 이상."
  [귀소측 상황은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음. 귀소는 현 위치에서 약간 더 전진해서 능선 위를 장악하고 와디를 계속 통제해 주기 바람. 적이 통과하지 못하게 해야 함. 이상!]
  "... 뭐, 뭐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대대장도 아닌 카할라니가 지금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탄약도 없는 전차를 가지고 적 전차대가 지나갈 통로 바로 앞에 진출해서 적을 견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미쳤나, 이 사람? 권경준은 그가 혹시 이쪽 사정을 다 몰라서 그런 지시를 내린 게 아닌가 하는 헛된 기대에 다시 한 번 상황을 보고하려 했다.
  "당소 전차들은 모두..."
  [알고 있음! 귀소 전차를 적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진출시켜라. 그러면 적은 아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서 전진을 멈출 것임!]
  그렇게 말하면서, 카할라니의 휘하 전차들이 천천히 와디 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권경준은 카할라니의 의도를 알았다. 최소한 적이 긴장하고 이쪽으로 사격을 지향하는 사이에 적과 정면 충돌하겠다는 뜻이다!
  "... 알았음. 귀국 명령에 따르겠다. 이상."
  그렇게라도 해야겠다면 어쩔 수 없었다. 사실 71대대 차량들을 희생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와디와 언덕의 표고 차이와 거리로 생각하면 와디를 따라 전진해 오고 있을 시리아군 전차는 71대대 차량들을 쏠 수 없었다. 그리고 와디 건너편에서 71대대 차량들을 쏠 수 있는 각도를 확보할 만한 시리아 전차들은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어 명중탄을 내기 힘들 것이다. 결국 권경준은 조종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속 전진, 능선 위로 올라간다!"

  그의 센추리언 전차를 포함한 71대대의 잔존 전차 8대가 능선 위로 올라섰다. 능선 전면에는 폭이 좁은 와디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 멀리에서 꾸물대는 녹색 거북이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이미 적에게 함락된 A-2 요새진지 근처에 있는 그 녹색 거북이들이 T-62인지 T-55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거리는 대략 2킬로미터 이상. 명중탄은 쉽게 나오지 않을 거리였다.
  그리고 능선에 올라선 직후, 권경준은 카할라니의 의도대로 전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능선으로 파고 들어오던 시리아군 전차 11대가 그들을 발견하고 머뭇대면서 다급히 연막을 치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잘 하면 카할라니가 저 11대를 다 격파할 때까지 무사히 여기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면 그의 전차는 뒤로 물러나서 탄약을 재보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77대대와 교대해서 얼마간 와디 입구를 통제한 다음 77대대가 탄약보급을 마치자 마자 바로 부스터 능선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권경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었다.
  잘 하면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시리아군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동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서 여기로 증원부대를 보낼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많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벌써 사흘이나 싸웠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권경준은 들고 있던 쌍안경으로 멀리 A-2 요새진지 방향의 시리아 전차들을 바라보았다.
  "... 아?"
  전차 생김새가 조금 이상했다. 난생 처음 보는 디자인은 아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형태다. 저 길쭉한 독일제 120밀리 55구경장 포신, 현용 독일군 전차들처럼 각진 쐐기형 장갑을 장착한 포탑. 아주 낯익다. 지난 몇 년 동안 적 장비식별 교육 때마다 죽어라 보아 온 디자인. 동북아시아에서는 한국군의 K-2 전차와 맞상대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MBT다. 중국제 12식 전차.
  "저게 어떻게 여기 있지?"
  저 전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어떻게 여기에 저게 있는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저놈의 개발 시기는 2010년. 2012년 중국혁명기념일 퍼레이드에 처음 등장하면서 실전배치가 확인된 신형 전차다. 1973년에 나올 수 있는 놈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권경준은 자신의 전차가 끔찍한 운명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제기랄, 연막 쏘고 후진! 후진!!!"
  [퍼펑!]
  권경준이 그렇게 고함치는 것과 동시에 바로 옆에 있던 C12호차 포탑이 육중한 폭음 속에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12식 전차는 K-2 전차와 동등한 사격통제장치와 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센추리언 전차 따위는 4천 미터 거리에서도 명중시켜서 파괴할 수 있었다. 이대로 능선 위에 있는 건 자살행위였다.
  [퍼퍼펑!]
  이번에는 A13호차가 불타올랐다. 권경준은 그 폭발 속에서 에미르 하사의 머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면서 다시 한 번 조종수에게 재촉했다. 전차가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뭐하나? 빨리 후진해!"
  [변속기 고장! 전차 기동불능!!!]
  돌아온 대답에 권경준은 입을 딱 벌렸다. 전차가 움직일 수 없다? 제길, 이래서 영국제 전차는 믿을 수 없었다. 영국제 전차는 21세기까지도 현수장치와 변속기가 걸핏하면 망가진다는 악평이 분분한 물건이다. 분명히 이 전차는 미국제 변속기로 개장된 타입이니까 그런 비난이 먹힐 전차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권경준은 다급히 고함을 치면서 큐폴라를 짚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전 승무원 차를 버려라! 탈추..."
  그리고 그 순간, 권경준은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하늘이 거꾸로 보인다. 지평선이 위쪽, 푸른 하늘에 떠 있는 구름 하나가 아래쪽에 있다. 그것까지 깨달았을 때, 권경준은 무언가에 부딪힌 다음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으아...!"
  권경준이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색이 누렇게 뜬 싸구려 천장 벽지였다. 형광등 갓도 먼지가 잔뜩 앉아 시커멓게 되어 있고, 방에서는 조금 전까지 실감나게 풍겨오던 화약 냄새와 디젤유 타는 냄새, 골란고원의 뜨거운 열기와 먼지바람 대신 퀴퀴한 노총각 냄새와 그 냄새를 없애라며 맞은 편 방에 사는 인간이 던져준 방취제의 미모사 향이 섞인 묘한 냄새만 풍겼다. 전장의 열기와 죽음의 공포 때문에 흘린 식은땀만은 꿈과 똑같았지만, 그나마 이스라엘군 기갑병 전투복이 아닌 여단 간부용 트레이닝복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 개꿈이었나."
  자리에서 일어난 권경준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은 다음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던 기계화학교 교육참고 팜플렛을 집어들었다. <골란고원의 77전차대대>였다. 어느 예비역 육군 장성이 현역 시절 기계화학교에 교관으로 있을 때 번역했던 책인데, 시중에서도 <골란고원의 영웅들>이라는 이름으로 사서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과음하면 오히려 잠을 못 자는 편인데, 어제는 마침 매월 정기적으로 치르는 대대 간부 친목회가 있어서 BOQ 앞 벤치에서 맥주를 잔뜩 퍼마셨었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김에 오랜만에 이 책을 뒤적이다가 새벽녘에 잠들었었는데, 잠들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본 부분이 바로 10월 9일 오전 부분이었다.
  "... 아하암..."
  권경준은 책을 내려놓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나서 벽시계를 들여다보았다. 07시 10분.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다.
  "우아아아아아-!"
  멀리서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여단 BOQ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는 127기보대대 일직사관 하나가 애들보고 힘찬 함성 몇 초간 발사 어쩌고 하면서 쓸데없는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권경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대강 씻고 옷 갈아입은 다음에 아침밥 먹으러 간부식당에 가야 할 것 같았다.
  "흐암..."
  권경준은 길게 하품하면서 눈을 비볐다. 어제 과음한 탓일까? 눈이 침침하고 갑갑한 걸 보니 눈곱이 많이 낀 것 같았다. 머릿속도 흐리멍텅하고 영 기분이 좋지 않다. 마침 오늘은 약속도 있고 하니 빨리 찬물로 씻고 정신 좀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권경준은 세면도구를 챙기면서 마음 속으로 투덜거렸다. 어떻게 중대장 BOQ에 개인 세면장이 없느냔 말이다. 수도권이나 임진강 이남에 주둔 국군 부대는 BOQ 모두 각 방마다 화장실을 겸하는 세면장이 설치돼 있는데.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 이곳 BOQ는 말로만 BOQ 건물이고, 건물부터가 주둔지의 다른 병사용 막사와 마찬가지로 임시 가건물이다. 당연히 세면장이나 목욕탕 등은 병사용 막사처럼 통합구조로 되어 있었다. 여단에 단 네 명 있는 여군장교 때문에 목욕탕만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지만, 그 외에 특별한 배려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심지어 화장실조차도 여군용은 남군용 화장실의 좌변기 한 칸을 여군 전용으로 설정해 두었을 뿐이다.
  그 후줄근한 BOQ 건물에서 중대장용과 그 이하 장교용 BOQ의 차이점은 단 하나, 2인 1실이냐 1인 1실이냐는 것뿐이다. 중대장 이하 장교들은 부사관들과 유대를 다진다는 목적에서 같은 대대 부사관 한 사람과 같은 방을 쓰는 것이 BOQ 배정 원칙이었다.
  그런 원칙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중대장과 여군장교들뿐이었다. 그들만이 독방을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여군장교 인원이 단 한 사람 있는 중대장을 제외하고 짝수 인원이었다면, 그들도 2인 1실을 써야 했을 것이다. 그게 원래 원칙이니까.
  [끼이익!]
  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경첩에 기름칠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북한 현지에서 제작한 프레임이 불량인지 잘 맞지 않아 항상 소음이 많이 생기는 탓이다. 그런데, 이 소리는 자기 문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 일어났냐?"
  바로 앞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숙인 채 거북한 눈을 비비고 껌뻑이던 권경준이 고개를 들어 보니, 사제품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부스스한 얼굴을 한 여군장교 하나가 바로 앞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눈을 비비고 있었다.
  "좋은 아침."
  "... 주현이 너도."
  맞은편 방을 쓰는 127기보대대 2중대장 김주현 대위의 아침인사에 권경준이 대답하면서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이런 식의 아침 대면은 익숙하지 않았고, 덤으로 멋쩍기도 했다.

  2.

  찬물로 샤워를 해서 부족한 수면으로 흐트러진 정신을 맑게 한 다음, 머리를 빗고 길게 땋은 머리에 어제와는 다른 예쁜 리본을 맨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학년장이 붙은 교복을 단정하게 입으면서 요즘 유행하는 최신 가요를 흥얼대고, 책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서면 거리는 아직도 어두침침하다.
  항상 마주쳐서 알고 있는, 신문 돌리는 아르바이트 대학생과 눈웃음으로 인사하고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으로 종종걸음을 치면 어느새 또래 학생들이 정류장에 길게 줄을 서 있다. 그 맨 뒤에 줄을 서고 나면 소꿉친구인 키 큰 남학생이 그녀를 보면서 이제 왔냐고 웃어준다. 너무 귀여운 나머지 목숨을 걸고 지켜주고 싶은 여동생을 보는 것 같은 따스한 눈빛...

  "... 그런 게 어울릴 리가 없잖아!"
  그렇게 투덜대면서 강유진 소위가 얼룩무늬 베레모를 머리에 깊게 눌러썼다. 교복이 아닌 전투복 상의 좌측 주머니 상단, 공수 윙 위에 붙은 서브듀드 병과기장은 고등학교 학년장이 아니라 기갑병 마크다. 육군 복장규정상 머리카락은 땋을 만큼 기를 수 없어서 리본은커녕 머리핀 하나도 달 수 없다.
  그리고 강유진은 유행가를 흥얼거릴 수도 없다. 정말로 아는 최신 유행가가 없으니까 말이다. 강유진이 흥얼거릴 수 있는 음악은 대한민국 육군 10대 군가밖에는 없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 육군 기갑병과 소위로 2개월 전에 독립 7기갑여단 예하 77전차대대 2중대에 소대장으로 부임한 강유진 소위의 진면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유진은 사관학교 1학년 때부터 심지어 어제까지 아까 생각했던 그런 이미지로 통해야만 했다. 하기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벽에 달린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조정하는 와중에도 강유진은 그런 현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확실히, 스스로 보기에도 너무 어려 보였다.
  신장 161센티. 대한민국의 현재 표준으로 보면 작다고 하기 그렇지만, 육군사관학교의 여생도 평균신장은 167센티다. 평균보다 6센티미터나 작은 셈이다. 아니,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의 평균신장도 요즘은 165센티 정도 되니 고3 평균보다도 작다. 육군사관학교 여생도 선발 신체조건 기준이 2011년 기준으로 딱 161센티니까, 아슬아슬하게 선발 기준에 턱걸이를 한 셈이다.
  그뿐인가? 동글동글한 얼굴과 상당히 크고 맑은 눈매는 누가 보더라도 25세라는 실제 나이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아무리 잘 봐줘야 이팔청춘이라고 할 정도다. 군인의 거친 생활에도 피부가 망가지지 않아 뽀얀 피부를 보면 더 그렇다.
  그런 탓인지 강유진은 고등학교 때에는 중삐리라고 통했고, 사관학교에서는 고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외에도 유사한 별명은 수두룩했다. 고삐리, 로리 등등, 지난 10여 년 동안 그런 별명에 치를 떨며 학창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그게 싫어서 고등학교 때에는 한때나마 불량 서클을 기웃거린 적도 있었을 정도다. 그리고 사관학교 들어와서도 따라붙은 그 지겨운 별명에 강유진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모든 분야에서 톱을 쟁취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육군사관학교 71기 수석졸업생이자 육군 기계화학교 전차과정 수석수료생 강유진 소위였다. 할 수만 있었다면 대표화랑까지 했을 것이지만, 불행히도 대표화랑이 되기에는 생도대 간부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너무 많았다. 특히 생도들 중에서 키가 가장 작아 육사 71기 졸업생 전체를 대표하기에는 너무 폼이 안 난다는 게 문제였다.
  어쨌든, 강유진은 적어도 사관학교 동기들 사이에서만큼은 2학년이 되기 전에 외모 콤플렉스를 벗어 던질 수 있을 만한 평판을 얻는 데에는 성공했고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실적도 쌓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푸른 야전으로 나와 소대장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일이었다. 왼손 손가락에서 빛을 발하는 붉은 루비 반지를 받아 끼울 수 있었던 181명 중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강유진은 내심 뿌듯했다.
  "......"
  그러나 그 뿌듯함은 지난 두 달 동안 몇 번이고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어젯밤은 더했다. 대대 전 간부가 모여서 여단 BOQ 앞 등나무 벤치에서 가로등 불빛을 벗삼아 전자레인지로 데운 훈제치킨과 새우깡, 양파링 등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던 자리에서, 자그마치 대대장이 강유진을 보고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2중대 2소대장. 너 학교에서 별명이 고딩 아니었나?"
  올해 37세로 중령 진(중령 진급이 확정된 소령을 가리킴.)인 77전차대대 대대장이 그렇게 말할 때, 강유진은 바로 그 쓸데없이 뚫린 주둥아리에서 나온 똑같은 말을 지난 2개월 동안 네 번째로 들은 참이었다. 계급이 깡패에다가 성추행 내지는 확실한 인격모독 - 즉 가혹행위 - 도 아니라 화를 내지도 못하고, 그저 앉은자리에서 캔맥주 여덟 개를 연거푸 들이키는 게 강유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다른 선임 장교들도 그 말을 듣고는 그저 박장대소만 할 뿐이었고 말이다.
  뭐, 그나마 직속 상관인 중대장은 자신을 몰래 따로 불러내서 원래 대대장님 인간이 좀 그렇다면서 자기 별명 - 이상하게도 중대장 별명은 엉덩이였다. - 도 그 인간이 붙였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참으라고 달래 주었다. 상급자 중에도 그렇게 자신의 어려 보이는 외모를 장난감으로 삼지는 않는 사람이 있긴 하다는 생각 덕에, 강유진은 취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가까스로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휴우..."
  숙취 같은 게 없다는 게 다행이다. 강유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그런 일에 대한 각오도 없이 사관학교에 지원한 건 아니었다. 그런 걸 각오해 가면서까지 사관학교를 지원한 이상, 강유진은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참고 견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유진은 짧게 중얼거렸다.
  "절대 지지 않을 거야..."

  강유진 소위의 꿈은 <한국의 리델-하트(Liddell-Hart)>였다.

  3.

  "정말 여전하네, 그 양반."
  대대 간부식당 옆 벤치에 앉은 김주현이 권경준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77전차대대장 강정일 중령 진은 확실히 못 말리는 사람이다. 예전에 함께 전장에서 싸웠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한 게 없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김주현은 들고 있던 종이컵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북한에서 가공한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 특유의 시큼한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뭐, 대대장님이 변하면 그거야말로 세계 종말의 징조일 거라고 중대장님이 그러시더라만."
  권경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중대장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은 합동참모본부 정보참모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 125기보대대 3중대장 김철진 소령 이야기였다. 문득 김철진 소령과 마지막으로 만나본 게 벌써 4년 전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김주현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잘 지내셔?"
  "뭐. 지난달에 뵈었을 때에는 괜찮으시던걸. 의족도 이젠 불편하지 않고 업무도 수월한 편이라고. 본부장님도 자기를 유난히 좋게 보시는 것 같고 하니까, 이러다간 인맥 잘 타서 정말 육군 최초의 장애우 장성 될 것 같다고 너스레도 떠시더라."
  약간은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권경준이 대답했다. 그것을 본 김주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올해 서른 살이지만, 지금 이렇게 떠들고 있으니까 옛날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때처럼 서로 마주앉아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다행이네... 나도 다음 간부휴가 때 가서 뵈어야겠다."
  "뭐, 중앙부서에 정보 파트라 그런지 이래저래 쉬는 시간은 별로 없으시더라. 나도 일요일날 갔는데 그 날도 출근하셨다가 저녁때 퇴근하셔서 그때 뵈었고."
  김주현의 말에 권경준이 대답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확실히 후방부대나 중앙부서로 가면 갈수록 간부들은 어려워진다. 김주현도 2개월 전까지 수도방위사령부 동원여단 참모와 육군 기계화학교 교관, 교육중대 중대장 직책을 수행하면서 피부로 느꼈던 일이다. 하물며 합참, 그것도 정보참모본부라면야 오죽할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김주현은 고개를 들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솟아 있는 작은 봉우리 위에서 여단 방공대 소속의 저탐레이더 레이돔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봉우리 이름이 뭐더라? 그래, 운두봉(雲頭峰)이다. 평양특별시 형제산구역 궁골 1동에 솟은 해발 128미터짜리 작은 야산. 지금 국군 제7기갑여단 여단사령부와 예하 77전차대대, 127기보대대 주둔지의 동남쪽 끄트머리가 바로 이 운두봉이었다.

  국군 7기갑여단은 제6기갑여단과 더불어 2013년에 창설된 신편 독립기갑여단이다. 예하에 신편 전차 2개 대대에 해체된 27보병사단에서 인수받은 1개 전차대대를 합쳐 전차 3개 대대, 그리고 신편 기보 1개 대대에 31기계화보병사단에서 넘겨받은 127기보대대를 합쳐 2개 대대를 보유한 막강한 기갑여단이 바로 7기갑여단이었다.
  그리고 6기갑여단과 7기갑여단은 2011년을 기해 북한이 정식으로 한국의 보호국이 되고 한국군 육/공군 병력 일부가 북한에 대한 방위 책임을 지고 북한 영내에 주둔하게 되면서 필요에 따라 창설된 부대였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편성되어 있는 기존 부대를 파견해도 상관없을 일이었지만, 몇 가지 정치적인 이유와 군 전력증강 필요성이 절묘하게 맞물린 탓에 이루어진 일이다.
  기존의 전통 있는 기보사단과 기갑사단, 일부 보병사단, 기갑여단들 대부분은 옛 휴전선을 기준으로 형성된 국경선 이남의 예전 주둔지를 그대로 지키고 있고, 다만 총 4개 보병사단과 2개 기갑여단으로 편성된 2개 군단만이 북한 영내에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7기갑여단은 바로 이 2개 군단 중 압록강 남쪽, 평안도와 자강도 일부 범위의 방위 책임을 맡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 제 5군단의 기동예비였다. 6기갑여단은 함경도와 양강도, 자강도 범위를 담당하는 국군 제 3군단의 기동예비다.
  7기갑여단은 6기갑여단과 더불어 2:1 편성을 유지하는 다른 기갑여단들보다 기보와 전차가 각 1개 대대씩 더 편성된 일종의 시범편제 여단이다. 특히 두 여단 모두 여단 포병대대에 M-270 MLRS 로켓포가 1개 포대씩 잠정 편성돼서 배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게다가 6, 7기갑여단은 웬만한 기보사단이나, 심지어 기갑사단에 필적하는 융통성을 가지고 있는 부대였다. 두 여단은 필요에 따라 5개 대대 TF를 구성하거나, 또는 독일 유학파 장교들이 KG(Kampfgruppe : 독일어, 전투단)라고 부르는 일정하지 않은 형태의 TF 다수로 재차 편조할 수 있는 특이한 지휘통제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덩치가 큰 BCT(Brigade Combat Team : 여단전투단)보다는 대대 TF 또는 강화된 대대규모 정도의 TF가 한반도 지형에서 더 융통성 있게 활용될 수 있었다는 지난 2차 한국전쟁의 전훈을 참고한 결과 만들어진 새로운 부대 편조 개념이었다. 일단 아직은 시험운용 단계지만, 앞으로 성과가 충분하다고 인정되면 각 기보 및 기갑사단이나 다른 독립기갑여단도 기존 부대 규모는 유지하면서 이에 따라 지휘통제구조를 변경해 나갈 예정이기도 하다.
  하여튼 평안도에 7기갑여단이 배치된 이유는 이 편제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한반도가 낮은 단계긴 하지만 통일 단계에 이른 현재, 한반도 최대의 안보 위협은 전체 지상 국경선의 90퍼센트 가까이를 점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자 전통적 육군 강국인 중국이었다.
  게다가 그 중국은 최근 들어 육군의 기계화, 현대화를 상당 부분까지 진행시킨 상태였다. 당연히 한국군은 이에 초동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해 과도한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지 않을 정도 규모의 적당한 기계화부대를 필요로 했다. 그것이 이 기보사단이나 기갑사단보다는 작지만 웬만한 독립기갑여단보다는 훨씬 강력한 기계화부대인 6, 7기갑여단의 편성 배경이었다.

  "하여튼 우리 중대 2소대장, 당분간은 신경질 좀 많이 나겠지."
  권경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을 본 김주현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TF 62 1중대에 편조됐을 때에도 똑같은 사람에게 비슷한 일을 당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비록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다.
  "뭐, 어쩌겠어. 조금 같이 지내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유진이는 그런 거에 마음고생 할 정도로 약한 애도 아냐."
  그렇게 말하면서 김주현은 석 달 전에 기계화학교에서 만났던 강유진 소위를 떠올려 보았다. 기계화학교에서도 소문난 독종. 생긴 것만 봐서는 엄청나게 순진하고 착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진짜 악바리에다가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완벽한 FM 덩어리였다.
  "하긴, 그 시절 너보다도 더 지독한 것 같더라."
  "... 푸훗! 그건 그러네. 확실히 나보다는 훨씬 독한 애야."
  "그러고 보니까... 기계화학교에서 너한테 교육받고 왔겠군."
  김주현의 대꾸에 권경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김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 많이 하고 답변은 막힌 적 없고, 듣자니까 사관학교 때에도 그랬대. 교관이나 교수 보기엔 가장 가르치는 보람이 있는 학생이었어. 게다가 눈빛만 봐도 알겠지만 의지로 똘똘 뭉쳐서 완전히 텅스텐 덩어리였고... 기계화학교에서 별명이 고딩하고 278 두 가지였으니까 대강 알만하지?"
  278은 신형 K-278 철갑탄을 가리킨다. K-2 전차의 120밀리 55구경장 주포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K-278 철갑탄은 현존하는 텅스텐 탄심 철갑탄들 중에선 독일제 DM53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위력을 자랑하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김주현은 그런 K-278A2야말로 강유진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데에서 하급자 가지고 얘기하는 거 남들이 들어서 좋을 건 없다. 엉덩이하고 엉덩이 애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서 권경준의 뒤통수를 살짝 쥐어박고 두 사람을 지나쳤다. 깜짝 놀라 그 사람을 바라본 김주현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웃었다. 뒷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간부식당으로 들어선 인간, 77대대 대대장 강정일 중령 진이다.
  "너도 고생이다. 유진이만 고생이 아니고."
  김주현이 그렇게 말하면서 권경준을 돌아보았다. 권경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나야 벌써 4년째니까. 62대대에서 대대창설 기간요원으로 차출될 때부터 지금까지 매번 대대장님하고 같이 움직이는 바람에, 엉덩이 소리 안 들으면 그게 더 이상해."
  "하긴. 그럴만하네."
  김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처럼 강정일에게 오염돼서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 같았다. 만약 권경준까지 강정일과 똑같이 강유진을 대하면, 아무리 K-278 소리를 듣는 강유진이라고 하더라도 참아내기 힘들 것이다.
  "그나저나, 일정은 잡아 둔 거야?"
  김주현이 화제를 돌릴 겸해서 마침 궁금했던 걸 물었다. 인수인계도 대강 끝났을 테니까 간부외박 써서 토요일하고 일요일 이틀 동안 놀러 다니자고 권경준이 데이트를 신청한 게 어제 일이었다. 원래 권경준은 어릴 적부터 행동범위가 그리 넓지 않아 가는 데가 뻔하기로 유명한 녀석이다. 그런 권경준이 데이트 신청을, 그것도 서울도 아니고 평양에서 하다니. 권경준이 생각하는 평양의 데이트 코스가 어디 어디인지 정말 궁금했다.
  "아... 먼저 조국해방전쟁 기념관부터 가 보고, 다음에는 을밀대하고 연광정..."
  "푸훗, 역시...!"
  권경준의 말을 들은 김주현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전부 군사 관련 유적이나 박물관. 결국 권경준은 김주현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권경준은 지금 박장대소하고 있는 김주현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멀뚱멀뚱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4.

  중국 센양군구와 베이징군구는 2011년부터 매년 9월마다 대대적인 군구급 쌍방향 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훈련은 매년 공수 관계가 바뀌는데, 센양군구가 공격군 역할을 맡게 되면 주 훈련장은 센양군구와 베이징군구의 접경지대부터 베이징 일대까지가 되고, 만약 베이징군구가 공격군 역할을 맡게 되면 주 훈련장은 압록강 이북 남만주 일대가 되는 식이다.
  올해의 순번은 베이징 군구가 공격군, 그네들의 표현방식대로라면 홍군(紅軍)이고 센양군구가 방어군, 이른바 청군(靑軍)이었다. 이 경우에는 베이징군구 예하 3개 합성집단군이 조-중 국경선에서 중국 경내로 약 15킬로미터 정도 안쪽 전반에 걸쳐 두세 개 축선을 장악, 전개하는 것이 훈련의 시작이다.
  방어군인 센양군구는 조-중 국경도시인 단둥을 제외한 헤이룽장과 지린, 랴오닝 성군구(省軍區) 경내의 모든 예비역 병력까지 총 소집해서 작전에 임하게 되지만, 실질적으로 예비역 병력 소집은 훈련개시 이후에나 시작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베이징군구가 방어를 맡을 때에는 미리 예비역 부대를 모조리 동원한 다음에 방어에 임하기 시작하고, 대신 센양군구 역시 예비역 부대를 모조리 미리 동원해서 공격군으로 편성한다.
  이 대훈련은 9월 1주차 월요일에 시작해서 토요일 자정에 종결되며, 훈련 참가부대는 일요일 정오부터 순차적으로 철도 또는 도로를 이용해 원 주둔지로 복귀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1주간 각 부대는 대대적인 정비 및 휴양에 들어가며, 이 휴양기간이 끝나는 즉시 바로 훈련 강평이 베이징에 있는 당 중앙군사위에서 국가주석 및 중앙군사위 주석 등이 모두 입회한 가운데 실시된다.
  훈련의 양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이 훈련에서 상정하고 있는 위협은 바로 한국이다. 2차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중국의 제1가상적국은 러시아 연방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가상적국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사실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현재 한국은 중국에게 가장 큰 위협요소가 맞기 때문이다.
  한국은 2차 한국전쟁 이후 군사력을 지상군 45만, 해공군 및 해병대 15만으로 전면 재편성했다. 그 과정에서 동원전력이 대부분 소멸됨으로서 전시 동원가능 병력규모는 전쟁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까지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신 현역으로 유지되는 총 60만 규모의 한국군은 적어도 극동지구에 전개된 러시아군에 비해 핵전력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한-만 국경선에서 베이징까지의 직선거리는 5백 킬로미터를 간신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러-만 국경선에서 베이징까지 거리의 딱 절반 수준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중국이 한국을 제1가상적국으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 2일 전 랴오닝성 방면에서 대대적인 역습을 개시한 중국군 39합성집단군은 랴오허(遼河) 일대에서 하천에 의지한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던 랴오닝성군구 예하 동원사단을 초월, 베이징군구 제 1제대였던 63합성집단군을 정면으로 공격, 공격 기세를 꺾은 후..."
  국군 정보사령관의 일일 상황보고는 벌써 30분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중국군의 대 기동훈련이 시작된 지난 월요일 이후, 국군 정보사령부와 합참 내 4대 부서 - 인사군수참모본부, 정보참모본부, 전략기획참모본부, 작전기획참모본부 - 는 비상체제로 들어가서 24시간 근무태세로 들어가 있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합참에 국한된 상황이다. 아직 방어준비태세 등급은 남북 국경선 이남으로는 기존의 데프콘 5, 일명 <페이드 아웃(Fade Out)>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국경 이북에 주둔한 2개 군단 역시 평소에 유지하고 있던 데프콘 4 태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이들 북한지역 주둔병력에 한해서만은 워치콘을 기존의 4에서 3으로 승격해 둔 상태다.
  "이후 39군을 후속, 이미 와해된 63합성집단군에 대해 쐐기를 박고 들어간 16합성집단군은 현재 롄산관(連山關)까지 진출한 상태에서 공세를 중지한 상태입니다. 동시에 진저우(錦州) 방면에서 계속 예비로 대기하고 있던 40합성집단군 역시 뉴좡(牛臟) 방면에서 랴오허를 도하, 공세부대의 측방 차장을 맡고 있던 24합성집단군을 쾌속 돌파하고 구산(孤山)을 목표로 전진중입니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40합성군 선두부대... 128마보사(摩步師, 중국군 군사용어 : 차량화 보병사단)는 현재 슈옌(岫岩) 인근까지 진출한 것이 확인되어 있습니다..."
  정보사령관이 브리핑을 계속하는 동안, 합동참모본부 대회의실 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랴오닝성과 북한 신의주 일대 전체가 묘사된 대형 지도가 도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된 지도 위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센양군구 합성집단군 마크들이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다. 하나같이 남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훈련의 마지막 단계다운 모습이었다.

  "아아, 미치겠군. 미치겠어."
  합동참모본부 정보참모본부장 유재기 중장이 정보본부로 돌아오면서 내뱉은 첫 번째 말이다. 정보참모본부 정보분석담당관의 말석이자 오늘 새벽녘에 정보사령부에서 접수된 위성정보 및 감청정보, 그리고 인간정보를 총합해서 최종적인 정세분석보고서를 작성한 장본인인 김철진 소령은 유재기 중장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오늘도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다.
  "장관님도 고생이고 의장님도 고생이다. 대통령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들 정말 고생이야. 이렇게 뻔히 보이는 걸 가지고도 방어준비태세 상향조정도 못 하고!"
  유재기 중장이 그렇게 투덜대면서 정보참모본부 구성원들, 특히 분석담당관들을 불쌍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훑어보았다. 그러는 사이, 본부장 부관 강우석 중위가 어느새 준비했는지 뜨거운 커피가 모락모락 김을 뿜어내는 머그 컵을 유재기 중장에게 내밀었다.
  "너밖에 없구나. 에휴, 답답해. 답답해! 야, 철진아! 우리 부서에서 올린 보고서, 네 부만 프린트해라. 의장님이 좀 달랜다! 직접 들고 장관님하고 같이 청와대 가신단다. 가서 NSC하고 대통령님한테 직접 보여드리면서 건의할 생각이신가 보다."
  컵을 받아든 유재기 중장이 이름에 딱 어울리는, 울퉁불퉁 산골짝 돌멩이를 연상시키는 우직한 육사 출신 부관의 머리를 고양이 쓰다듬듯이 문지른 다음 김철진을 돌아보면서 그렇게 지시했다. 김철진은 짧게 복창한 다음 가볍게 절룩이면서 출력실로 향했다. 오늘 올린 정세보고서는 거의 웬만한 인터넷 연애소설 한 권 분량이었다. 고속출력을 해도 한 십여 분은 걸릴 일이었다.

  "또 출력입니까?"
  출력실에서 근무하는 유강호 대위가 김철진을 보고 그렇게 물었다. 김철진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파일 넘버를 불러주었다.
  "정세보고 15-0725호. 네 부다."
  "알겠습니다. 여기 사인해 주십쇼."
  세계에서 가장 IT화가 잘 된 군대라고 자랑해 마지않는 한국군이건만, 이렇게 프린트 하나 할 때마다 문서출력 대장에 사인을 해야 했다. 전자서명제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3급 비밀 이상 비문은 전자서명만으로는 확실한 안전보장이 되지 않는 탓이었다.
  "정말이지 종이 낭비 아닙니까? 어차피 합참 인트라넷하고 청와대 인트라넷은 연결돼 있으니까, 이렇게 출력할 것도 없이 그냥 청와대 네트워크에서 바로 보여드려도 될 텐데 말입니다. 아니면 거기서 출력을 하시거나..."
  마우스와 키보드를 조작해서 해당 문서의 고속출력을 시작하면서, 유강호 대위가 김철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김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이로 보는 거하고 화면으로 보는 건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달라. 게다가 대통령님하고 의장님이 사이좋게 모니터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별로 그림 안 좋고."
  "하긴."
  김철진의 말에 유강호 대위가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언뜻 보기에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50대 올드미스와 척 보기에도 여자 더럽게 밝히게 생긴 50대 후반 합참의장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니터로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걸 상상하면 바로 이상한 상상부터 들었다. 요즘 무척 늘어나고 있는 50대 인터넷 채팅 불륜이 바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그렇게 과민 반응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13년 기동훈련 때에는 16군이 자그마치 펑칭(鳳城)까지 내려오기도 했었는데 말입니다. 13년에는 지상군만이 아니라 하얼빈(哈爾濱)하고 베이징에서 스트라이크 패키지가 두 개씩이나 떠서 단둥 근처까지 내려왔었고 말입니다."
  유강호가 그렇게 말하면서 김철진을 슬쩍 돌아보았다. 김철진은 유강호의 말을 듣고 지난 2013년 중국군 기동훈련 때의 일을 되새겨 보았다. 확실히 그때 중국군의 훈련기동은 북한 지역, 특히 신의주를 목표로 하는 대대적인 공세에 걸맞는 병력배치를 위한 은폐공작으로 판단하기 딱 좋았다.
  게다가 훈련종결 직후 - 즉 지상군 부대가 공격개시선에 전개를 마쳤을 무렵 - 인 9월 8일 새벽 3시에는 하얼빈과 베이징에 있던 중국 공군이 Su-30 전폭기 40여 기와 신형 J-10B 전투기 40여 기로 편성된 대규모 스트라이크 패키지를 출격시켜서 KADIZ(한국 방공식별구역) 바로 코앞까지 진출시키기도 했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확고한 공격개시 징후였다. 병력배치 상황이나 전투기 출격 시간대로 보면 정말 완벽한 공격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한국군은 전군에 데프콘 2를 하달하고 즉시 방어준비태세에 들어갔다. 전 육군 병력들은 예외없이 실탄을 지급받아 전시집결지로 달려나갔다. 모든 포병대는 포신을 북쪽으로 돌리고 사격준비에 들어갔고, 육군 유일의 전략미사일부대인 모 미사일대대는 통상탄두 지대지 순항미사일의 발사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은 해공군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한국군이 보유한 모든 항공기와 함정이 각각 하늘과 바다로 뛰쳐나갔고, 심지어 도입 2년차로 이제 갓 현역에 취역했던, 당시 한국 해군 유일의 원자력잠수함인 SSN-075 임경업함은 적재하고 있던 <비통상탄두 순항미사일> 12발 전부에 목표정보를 입력하고 작전구역이던 남중국해 일대에서 비상대기에 들어가기까지 했었다.
  만약 명령만 떨어졌다면 바로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선제공격에 들어갔을 것이다. 군사적인 면에서 상당한 열세에 놓여 있는 한국이 중국의 침공 앞에서 제대로 저항하는 수단은 선제공격밖에 없으므로,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나마 대통령이 말 그대로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덕에 선제공격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선제공격의 유혹을 참아넘긴 대가로 돌아온 것은 아주 간단하지만 혹독한 것이었다.
  "중국의 정례적인 국토수호 기동훈련을 핑계삼아서 중국에 대한 영토적 욕심을 드러내는 과격파 민족주의 정권은 진정한 의미로 동북아시아 최대의 <악의 축>이다... 라는 소리 듣는 것보다는 확실히 그냥 무시하고 넘기는 게 나을 지도 모르지."
  김철진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시 취임 6개월차를 맞고 있던 현 대통령,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된 박수연 대통령은 교육자 출신으로,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다는 것을 밝혔던 진정한 의미의 좌파 인사였다. 대통령 취임 직후에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한국은 중국에 대한 영토적 욕심이 없다는 것을 거듭 밝히기도 할 정도였다. 지금의 한국 정권은 민족주의 정권이 아니었고, 중국에 대해서도 강성 정권은 절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한국을 극우파 민족주의국가라고 몰아붙이고 악의 축이니 아시아의 나치니 하면서 UN에서 한국에 대한 규탄 성명 결의안까지 제출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보였다. 오죽하면 광화문 앞에서는 중국에게 이런 모욕을 당하느니 아예 개전을 하자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겠는가. 그 덕분에 한국은 진짜 국제적으로 대중 전쟁을 모색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중국군의 움직임 자체는 애들 장난 수준이잖습니까? 아직도 중국군은 한-중 국경에서 5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고 공군이나 해군도 여전히 기지에 틀어박혀 있고... 게다가 평양에는 중국 축구 대표팀도 와 있고 말입니다."
  유강호 대위의 말은 옳았다. 확실히 개전 징후는 아직 확실하게 드러난 게 아니었고, 이보다 더한 위기 때에는 정상적으로 대응했다가 하마터면 진짜 침략국으로 낙인찍힌 상태에서 절망적인 전쟁을 수행해야 할 뻔했다. 아직까지는 제한적인 수준으로 방어준비태세를 상향조정하는 것조차 시기상조일 수 있다.
  "뭐. 강호 네 말도 맞긴 맞는데 말이다."
  김철진은 쓰고 있던 근무모를 벗은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다가 진짜 공격당하면 대책이 없잖나. 그래서 그러는 거지."

  - Chapter 01 (2)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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