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사이즈



  윤민혁(2004-06-26 05:29:09, Hit : 13949, Vote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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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언사이즈]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2)


  근미래 가상 전쟁소설 <아이언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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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동원사단과 향토사단의 전면 해체, 보병사단 다수 감축 및 6개 기계화보병사단과 2개 기갑사단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군 전력구조 변경은 2012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신규 장비 실전배치도 201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매우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현재 7기갑여단 전차대대들의 주장비인 K-2 전차와 현대 한국 해군 전력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전략공격능력의 대표주자 격인 임경업급 원자력잠수함이다.
  그때 이루어진 부대편제 개편 중에서 가장 독특한 변화가 바로 전차대대의 구조 변화였다. 한국군은 2012년 이후 모든 전차대대 각 중대에 1개 박격포반을 편성, K-281A2 81밀리 자주박격포를 배치한 것이다. 전차중대에 박격포가 고정 배치된 것은 사실상 한국군이 유일했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아예 전차에 박격포를 장착해서 운용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것과 박격포반의 중대 배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세계의 군사전문가들은 이들 자주박격포가 일명 2012년형 전차중대라고 불리는 현대 한국군 전차중대에 배치된 것을 가지고 활발하게 토론했다. 특히 일본 군사매니아들처럼 무기체계의 성능 자체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최근에 보편화된 81밀리 박격포용 유도포탄을 이용한 대전차전 능력을 감안한 게 아니냐고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혹자는 한국군이 이스라엘군처럼 전차의 대보병전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 박격포 전력을 확충하려 한 게 아니냐는 견해를 내세우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국내 군사매니아들은 전차 승무원의 부사관 비율이 대폭 올라가면서 전차중대에서 잡다한 일 시킬 병사가 줄어든 탓에 그걸 벌충하려 하는 거 아니냐는 유신시대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하여튼, 한국군이 공식적으로 전차중대의 박격포반 배치 목적을 따로 공개하거나 하지 않은 탓에 그런 논란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간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 오가는 탁상공론일 뿐이었다. 실제 목적은 위에 언급된 모든 이유가 대부분 포함되어 있고, 거기에 수많은 군사매니아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사소한 이유도 몇 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일단,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대 보병화력 확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전차의 휴행탄수가 크게 감소한 현대 전장환경에서, 대 보병전을 위한 추가 탄약 적재는 자칫 전차의 전투력, 특히 대 기갑 전투력 감소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다목적 탄종으로 지금까지 각광을 받아왔던 대전차고폭탄의 대 장갑 효용성이 급격히 떨어진 현대전 환경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리고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엉뚱하게도 야간전 수행에 조명탄의 효용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열영상장치의 효용성이 최근 들어 대규모로 실용화되기 시작한 원적외선 및 중적외선 차폐수단 때문에 심각할 정도로 떨어진 탓이다.
  아직까지 열영상장치를 대체할 만큼 기상조건 및 자연 광량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새로운 야간암시장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확실하게 신뢰 가능한 수단은 육안을 포함한 가시광선 관측장비밖에 없었다. 이런 형편에서, 야간전투에서 활용 가능한 가시광선 광원은 구름 한 점 없는 밤에 뜬 보름달과 초신성, 그리고 강력한 조명탄밖에 없었다.
  덤으로 대전차공격능력 향상도 어느 정도 감안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비록 한국에서 전차포에서 발사하는 장거리 공격용 곡사탄도 지능탄이 개발되어 배치되고 있긴 하지만, 사용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운데다 앞서 언급한 휴행탄수 문제 때문에 이래저래 항시 탑재, 운용하는 것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역시 박격포 같은 별개 무기체계를 중대에 배치시키는 쪽이 유리했다. 그렇지 않아도 2012년을 전후해서 한국군은 81밀리 유도 박격포탄을 개발해서 실전에 배치하고 있었다.
  아울러, 전차중대 징집병 인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K-281A2 81밀리 자주박격포는 전통적인 방식의 자주박격포로, 기존의 K-281A1에 BMS를 통한 목표정보 획득능력을 추가로 부여했을 뿐이다. 때문에 각 박격포는 포수와 부포수 이외에 탄약수 2명 이상이 별도로 필요하며, 이로서 전차중대에는 병 12명이 항시 추가 편성될 수 있었다.
  물론, 이 정도 인력 추가편성으로 그 일부 유신시대적 발상을 하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수준의 증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건 바보짓이다. 어차피 이렇게 추가 확보된 징집병 12명은 전체 중대원의 20퍼센트가 넘지 않는 적은 인원이며, 평시에는 경계근무지 하나조차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인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및 대 테러/치안유지 임무에서라면 어느 정도 의미 있는 인원 증가라고 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12명이면 교대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2인 1조로 6개 진지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격포반이라..."
  오늘의 당직사관으로 어제 당직근무자였던 행정보급관과 근무 교대한 강유진 소위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중대 행정실 벽에 붙은 중대 전투편성표를 들여다보았다. 편성표 최상단에는 중대장 권경준 대위의 사진과 관등성명이 붙어 있고, 바로 그 아래에는 3열 종대로 예하 3개 소대 27명의 명단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전차중대 밑에 중대 본부소대원들이 별도로 빠져서 기재되었다. 본부소대 총원이 중대 예하 3개 전차소대 총원 합계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중대 인원은 총 55명. 소대장 포함 전원 간부만으로 구성된 전차소대원 27명에 본부소대원 28명이다.
  본부소대원 28명은 박격포반 인원 18명에 중대장과 행정보급관을 포함한 지휘/행정반 6명, 정비반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부소대 간부는 지휘/행정반 6명 전원과 박격포분대장 3명 및 조종수 3명, 정비반장 및 조종수 1명. 도합 14명. 즉, 전차중대는 간부 41명에 병 14명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2차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전차중대 인원 편성은 간부와 징집병이 거의 1:1 비율이었다. 이와 같은 간부인원 증가는 한국 육군 전체에 공통되는 특징이었다. 기계화보병 역시 단차장과 조종수, 포수, 분대장 모두가 부사관이며, 일반 보병도 분대장은 모두 부사관이 맡게 되었다. 포병도, 공병도 그 점은 다르지 않았다.
  사실상 일정한 숙련도가 필요하다 싶은 전투병과 인력은 상당 부분 간부로 바뀌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었다. 예전의 한국군에 비해서 직업군인의 비율이 거의 두세 배 올라간 셈이다. 2015년 현재 45만 한국 육군 병력 중 부사관과 장교가 자그마치 15만 명이나 되는 것이다.
  2010년 2차 한국전쟁 발발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군은 병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타군에 비해 간부 비율이 비교적 낮았다. 이는 비대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한국에게 적지 않은 이득, 즉 인건비 절감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이미 대한민국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인구증가세가 크게 둔화된 상태였다.
  군은 2년 복무기간을 유지하는 한 매년 15만 명 이상을 징집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군이 유지할 수 있는 직업군인 규모는 15만 명이 한계였고, 결국 한국군이 실제 확보할 수 있는 병력은 45만을 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문제점은 이미 20세기 말부터 꾸준히 예상되고 있었고, 군 의무복무기간이 26개월에서 24개월로 단축된 2003년 이후에는 확실히 이를 감안해서 서서히 준비를 해 왔다. 그리고 5년 전의 2차 한국전쟁 때문에 이 변화는 더욱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물론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준비를 했음에도 인력 구조조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기존 동원체계가 전면 개편되고 각급 현역 부대 인적자원 구성방식 역시 근본적으로 바뀐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한국군은 근 3년에 가까운 신편제 운영을 통해 간신히 그 부작용을 서서히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아울러 군 간부와 병 사이의 관계 역시 예전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었다.

  강유진은 이런 변혁기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심 강유진은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야전 군인보다는 군사이론가, 전쟁사가로서의 꿈을 안고 군에 입대했던 강유진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지금의 한국군 편제 변화는 세계 군제사학자들의 연구 대상이기도 했다. 또한 이 편제 변화는 사소한 소부대전술 원칙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작전술, 군사전략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다. 그런 변모를 직접 체험하는 세대라는 것은, 역사가를 꿈꾸는 이에게는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군사학과 테크놀로지는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도 2010년대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시대였다. 무기체계의 지나칠 정도로 빠른 발전이 오히려 전투 양상 자체를 50년 이상 과거로 후퇴시키고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이루어지는 전술 발전을 살필 수 있다는 것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물론 이건 군인에 한하는 일이지만.
  "수고하십쇼!"
  그런 상념에 빠져서 중대 편성표를 훑어보고 있던 강유진에게 방금 근무 교대한 중대 당직사관 최상호 상사가 짧은 인사를 건넨 다음 강유진이 답례할 틈도 주지 않고 행정실을 나가 버렸다. 당직부사관은 이미 먼저 교대를 마쳤고, 오늘 근무자인 B52호차 단차장, 즉 박격포반 2분대장 김정만 중사가 행정실 테이블 앞에 앉아서 판타지 소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직구조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편제개편 전에는 보통 당직부사관 - 얼마 전까지는 당직하사라고 통한 - 근무를 일반병에서 선발된 분대장들이 맡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직부사관을 당직분대장, 일직분대장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든 당직근무는 이제 간부의 몫인 것이다.
  보병의 경우엔 모르겠지만, 기계화부대에서 당직사관은 각 소대장, 박격포반장, 정비반장, 행정보급관의 6인이 서고, 당직부사관은 각 소대 부소대장 및 단차장과 박격포분대장 등 9인이 맡는다. 그리고 예전의 상황병 근무는 적어도 중대에 한해서는 폐지됐다. 좋은 방향의 발전일까, 아니면 나쁜 방향의 발전일까?
  "모르겠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강유진의 혼잣말에 당직부사관 김정만 중사가 그렇게 물으면서 돌아보았다. 강유진은 깜짝 놀라 김정만을 바라본 다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던 일 해요."
  강유진이 그렇게 대꾸하자, 김정만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한 번 지은 다음 가볍게 하품을 하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다시 책을 읽는 데 열중했다. 솔직히 무슨 재미로 읽는지 모를 싸구려 소설에 왜 저리 집중하나 싶었다. 적어도 자신은 소설보다 군사이론서나 전사 서적 쪽이 더 재미있었다.
  어쨌든, 토요일 당직근무 교대자는 12시 중식 시간 때까지는 특별히 따로 할 일이 없었다. 강유진은 느긋하게 전투복 주머니에서 독.소 전사 개괄서로 최근에 번역 출간된 독.소 전쟁사 개괄서인 <거인 대 괴인>, 원제 When Titans Clashed를 꺼내면서 전투편성표 옆에 붙어 있는 중대 상황판을 들여다보았다. 당직근무 교대 직전에 내려왔는지 오늘 날짜로 된 당직사령 복무중점사항이 상황판에 적혀 있었다.

<
  1. 휴일 여가활동 보장 및 안전수칙 위반사고 예방 철저
  2. 외출/외박자 행선지 파악 철저
  3. 당직근무인원 최소 1인 통신 축선상 항시 대기
  4. 출동준비태세 발령에 철저 대비
>

  그러고 보니 오늘 중대장을 포함해서 중대 외박자가 몇 명 있었다. 비상시 중대 비상연락망을 가동하고 중대장 이하 영외거주 간부 및 외출/외박인원을 소집하는 것은 당직사관의 책임이었다. 강유진은 벽에 걸린 비상연락망 리스트와 행선지 표를 보았다. 중대장의 외박지는 평양특별시, 숙박업소라든가 세부 위치는 아직 통보가 없다. 그 외의 다른 외출/외박인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이제 오전 9시였다. 다들 이제 갓 주둔지를 출발했을 테니까 벌써부터 확인하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강유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들고 있던 책을 펼쳐들었다. 이제부터가 재미있는 대목이었다. 바로 제 13장 <바그라찌온(Багратион, Bagration : 러시아의 전쟁영웅.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당시 보로디노 전투에서 용전분투하고 전사했다.) 작전>, 1944년 소련군 하계공세 대목이었다.

  6.

  바로 그 중대장, 권경준 대위는 큼지막한 로마자 상표가 프린트된 티셔츠에 블루진을 입고 7기갑여단 위병소 앞 전차 정류장에 있었다. 위병소에 외박 증명서를 제출해서 확인을 받은 다음 전차 정류장에서 김주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아직 전차가 지나갈 시간은 아니었다. 여기를 지나가는 전차 노선은 대략 15분 간격으로 오가니까. 전차말고도 주둔지와 평양지하철 광복역 사이에서 여단 소속 셔틀버스가 휴일마다 10분 간격으로 운행하긴 하지만, 권경준은 외출할 때마다 버스보다는 전차를 이용했다.
  전차는 버스보다 훨씬 느리고 자리도 불편했지만, 대신 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전차가 돌아다니는 얼마 안 되는 도시 중 하나가 바로 평양이다. 그런 평양에서 살고 있으면서 전차를 타지 않는 건 어쩐지 천륜을 어기는 짓 같았다.
  실제로 여단 간부들 중 상당수가 시간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셔틀버스보다 전차 쪽을 선호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근처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공터 수준이고, 전차도 종점 바로 다음 정거장이라서 자리 잡고 앉기도 편했다.
  하여튼 김주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뭐 2년만의 데이트라고 해서 옷이나 몸단장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대대 당직사령에게 보고하는 게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권경준은 바지 주머니에서 북한제 추잉검 하나를 꺼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김주현이 여단에 기보중대장으로 부임해 온 지난달 중순 이후, 권경준은 그동안 끊지 못하던 담배를 끊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중이었다. 비록 2년 전에 한 번 실패했던 방법이지만, 권경준은 검 씹기 외에 특별한 금연 방법을 알지 못했다.
  씹다 보니 북한제 검도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권경준이 처음 북한 지역에 주둔했던 2013년 중반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생산하는 내수용 기호식품들은 그다지 질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추잉검만큼은 좋아진 모양이다. 예전처럼 첨가물로 포함된 합성수지 냄새가 심하게 나거나 괴상한 것들 - 보통은 나무껍질이나 이파리 조각, 가끔은 벌레까지 나왔다. - 이 씹히지는 않으니까.
  뭐, 지금 권경준이 입고 있는 옷도 북한제였다. 2차 한국전쟁 이전에도 북한제 경공업제품 품질이 상당히 좋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가일층 진보 단계에 있었다. 1980년대 한국 섬유공업의 안 좋은 명성 - 가짜 상표 생산 - 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만 빼면 좋은 일이었다.

  북한 경제는 지난 5년 사이에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 무의미한 군사비 지출이 없어진 것과 더불어, 한국 정부가 상환을 보증해서 제공된, 거의 1천억 달러에 달하는 IBRD 및 IMF 금융지원을 바탕으로 삼아 북한은 그동안 낙후되어 있던 사회 인프라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경공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대한민국에서 펼쳤던 정책의 유사품이랄 수 있는 정책이다.
  사실 박정희식 경제정책의 성공은 세계 경제호황에 힘입은 바가 컸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전반적인 정체 단계에 접어든 해외 경제사정으로 볼 때, 박정희식 정책이 먹힐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국에게는 아주 멋진 시장 하나가 바로 옆에 존재했다. 바로 중국이었다.
  중국은 전 세계에 찾아든 경제적 정체 상황에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공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경제성장 피치를 강제로 늦추고도 중국은 연평균 8퍼센트 이상 성장했고, 그 덕분에작년에는 1인당 GDP가 4천 달러를 돌파했고, 그 결과로 국내 시장규모가 대폭 확대되었다. 그리고 중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수출산업은 저가에 저질 소모성 경공업제품 수출에서 중고가 고품질 첨단산업제품 수출로 방향 전환을 마치고 있는 상태였다.
  여전히 중국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은 저가 경공업제품이 차지하고 있지만, 적어도 수출 총액에서는 이미 첨단산업이 전체의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첨단산업제품은 선진국 시장은 몰라도 개발도상국 및 중.후진국 시장에서만큼은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산업구조 개편은 외국으로부터의 각종 소비재 수입물량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정한 시장이 형성된 상태에서 유통비용 측면에서 국내 기업체보다도 해외 수입이 유리한 일부 지역, 예를 들자면 윈난(雲南)성과 동북3성, 내몽골 자치구 등은 그런 상태가 유난히 심했다. 북한은 바로 이런 추세의 혜택을 입은 가장 대표적인 국가였다.
  지금 북한의 경공업 제품, 특히 의류와 생활가전제품은 동북3성의 해당 상품 시장의 거의 1/3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북3성과 내몽골 자치구 주민들 중 상류층 주민 - 의미심장하게도 이들 중 상당수가 인민해방군 간부들 및 그 가족, 그리고 그들과 경제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들은 비교적 고급품으로 인식되고 있는 한국 브랜드 상품을 상당히 많이 구입하고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도 북한에서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으로 생산된 상품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대중 수출 역시 경의선과 만철(滿鐵 : 만주철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 선편보다 몇 배나 유리했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북한은 매년 12퍼센트에서 15퍼센트에 달하는 빠른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었다. 주요 시장인 동북3성의 산업구조 재편이 완료되는 2018년에서 2020년 무렵에는 고속 성장도 일단 정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긴 하지만, 북한은 그 전에 전쟁 전보다 거의 3.5배나 성장한 1인당 GDP 4천 8백 달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는 1인당 GDP 측면에서 대한민국의 거의 1/4에 근접하는 수치였다. 2020년경 한국의 1인당 GDP는 약 2만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이제 한국과 북한의 완전한 통일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물론 그 정도 경제력 차이로도 적지 않은 혼란을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2차 한국전쟁 종전 직후 통일하는 것에 비하면 몇 배나 안정적인 조건이었다. 그리고 남북이 서로 통일되고 나면 기존 동북3성 시장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국제 사회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었다.

  "늦어서 미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김주현이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나왔다. 급히 뛰어와서 그런지, 김주현은 두 손으로 무릎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띄엄띄엄 말했다.
  "하아, 하아, 복장 때문에, 하아, 잔소리 좀, 하아, 들었거든, 하아, 하아..."
  "왜, 군복이라도 입고 나온 거야?"
  권경준이 그렇게 묻자, 김주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권경준은 그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말로 군복 입고 나왔냐?"
  "... 하아, 하아, 응..."
  "......"
  이 녀석, 뉴스도 안 보고 살았나? 권경준은 혀를 찼다. 어떻게 몰라도 이렇게 모르고 평양에 왔나 싶었다. 평양에 온 다음에도 분명히 주둔지역 정세 관련해서 전입자 교육을 받았을 텐데. 매사에 철두철미한 김주현답지 않았다.
  "저기, 무슨 점령군 행세 할 일 있냐?"
  권경준이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안 그래도 북한 주민들, 특히 예전부터 당성 강한 사람들 중심으로 모여 살던 이곳 평양의 한국군이나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한국군의 주둔을 점령군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기본이고, 심한 경우에는 외출이나 외박을 나온 한국군 장병들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일도 가끔 있었다.
  게다가 2012년에 그나마 편제라도 유지하고서 노무인력으로 활용되던 구 조선인민군이 완전 해산되면서 - 관리인력 삭감을 통한 예산절감 목적이 컸다. - , 북한 주둔 한국군에 대한 사보타주가 가끔 발생하기도 했다. 드물게는 뭐 독립운동이네 뭐네 하면서 한국군 주둔지에 화염병을 던지는 경우도 없지 않았고 말이다. 특히 이런 상황은 청천강 이남에서 대동강 이북 사이 평안남도와 평양특별시 권역에서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국방부는 정식 명칭 조선주둔 대한민국 국군, 줄여서 조선 주둔군으로 통하는 북한 주둔 한국군 각 부대에 외출이나 외박 때에는 공무 등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사복을 입으라는 장관 지시를 전파했다. 가능하면 주민들에게 거부감이나 권위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도록 유념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의거한 것이었다.
  "하아... 교육은 받았지만 말야..."
  간신히 숨을 고른 김주현이 권경준 옆에 털썩 앉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2년만의 데이트인데..."
  "...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권경준은 내심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권경준 스스로도 여기가 평양이 아니라 딴따라 스텝으로 찍고 넘어가는 대한민국 도시들이었다면 군복, 특히 장교 정복 쪽을 더 선호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데이트라고 할 만한 경험이라곤 단 세 번이 전부인데, 매번 둘 다 군복 차림이었다. 특히 두 번은 똑같이 육군 정복을 입고 다녔다.
  "... 그래서 옷 빌려 입고 나오느라고 늦었어. 나 사복 별로 없어서 정훈한테 급히 빌리느라..."
  여단 정훈장교라면 김선진 중위다. 여군 학사장교 출신으로 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고 졸업 직전에 바로 지원했던가 했다. 김주현 바로 옆방을 쓰고 있고, 권경준과도 꽤 안면이 있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 김주현이 입고 있는 옷도 김선진 중위가 외출 때 입은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옷 없었냐?"
  "... 군복하고 트레이닝복이면 다 끝난다고 생각했으니까..."
  권경준의 물음에 김주현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멋쩍은 듯이 머리를 긁었다. 하긴, 워낙에 성격이 그렇고 그런 김주현이다. 그런 걸 짐작 못 한 자기가 멍청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권경준은 빙긋 웃었다. 도로를 따라 전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7.

  합동참모본부 의장 김도현 공군 대장이 길게 한숨을 쉬면서 굳게 닫힌 대통령 집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우고 싶지만, 이곳 대기실은 하필이면 금연구역이었다. 아니, 청와대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게 몇 년 전이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가 준장으로 전투비행단장 자리에 있을 때 그렇게 됐으니까. 아마 당시 대통령이 금연 운동의 모범을 보인다며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때는 나름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화가 났다.
  "답답하오?"
  함께 있던 정훈태 국방부장관이 그렇게 물었다. 육군 대장 출신인 정훈태 장관은 김도현 대장보다는 어느 정도 여유 있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관 역시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아까부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라 담배 생각이 간절하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답답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 아닙니까?"
  김도현 대장이 그렇게 대꾸하면서 못마땅한 눈치로 집무실 문을 쳐다보았다. 대통령이 지금 미국 대사를 만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김도현 대장은 더욱 짜증이 났다. 주한 미국 대사 트레이시 빙엄(Tracy Bingham) 여사가 대통령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는 대강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나마나 빙엄 대사는 장관 이하 합동참모본부의 보고 내용과 일치하는 내용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런 대사의 견해를 진지하게 들은 다음, 미국의 정보 전달에 감사하며 뜻은 잘 알았으니 적절하게 대처하겠다고 답변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 대사는 유감의 뜻을 표명하겠지.
  "저 자리에 장관님이나... 적어도 NSC 외교안보 파트 인사가 한 사람이라도 배석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글쎄, 있어봤자 별 도움 안 될 게요. 웬만한 NSC 멤버보다 더 똑똑한 양반 아니오? 야당 녀석들이야 천박하게 욕하고 있지만."
  장관이 그렇게 말하면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장관이 왜, 누구를 비웃는지는 쉽게 짐작이 갔다. 합참의장 본인도 그렇고 장관도 그렇고, 지난 대선 당시 야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바로 그 야당 후보가 대통령을 상대로 사석에서 내뱉은 말을 전해 듣고, 적어도 합참의장은 다시는 그를 찍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무리 사석이었다지만, 그는 대통령을 가지고 <씨팔년>이라고 했다. 그것도 다른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 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장난 삼아 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김도현 대장이 보고 겪은 것만 보면, 대통령은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적어도 외교안보 분야에서만큼은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는 당당한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보고서도... 고작해야 주의 환기 정도밖에 안 되는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대통령은 똑똑했다. 영리했고 매사에 합리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국민을 사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지난번 대응 이후에 우리나라에 돌아온 피해가 너무 컸어. 그게 문제인 거요. 대통령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결과가 뻔히 보이니까."
  지난번 대응이란 다른 게 아니라 2013년 위기 당시 한국의 대응을 말한다. 2013년 9월 8일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계속된 한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치 상황은 결국 전쟁까지 비화되지는 않았다. 양국 전투기가 서로 자국 방공식별구역 경계선 바로 안쪽에서 로이터링하면서 상대측 항공기를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로 락온한 상태로 1시간 가까이 계속된 대치는 결국 서울에서 한국 대통령이 중국 대사와 면담한 후 중국군이 먼저 물러서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
  그 이후, 중국은 이 모든 사태가 한국측 책임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책임전가로 한국인 모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2013년 9월 기동훈련이 한국 당국에 이미 통보된 훈련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들은 일체의 침략 의지가 없는데 한국이 먼저 무력도발을 시도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규탄을 받아야 하며, 아울러 중국은 같은 사태가 재발하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분노한 한국 국민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불문하고 벌인 모든 종류의 시위 역시 중국인들은 절묘하게 이용했다. 계속되는 시위 양상으로 볼 때 한국인은 본디 중국인에 대한 근거 없는 멸시와 증오심을 품고 있으며, 지난 무력대치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침략의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중국의 주장은 뜻밖에도 국제 사회에서 제대로 먹혀들었다. 마타도어(Matador : 정치적인 흑색선전)가 아무리 근거 없는 유언비어라고 하더라도, 자꾸만 듣다 보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게다가 이후 2개월 동안 지속된 한국 국민들의 흥분 상태는 중국의 주장에 충분한 힘을 실어 주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충분히 힘을 쌓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지 오래였고, 중국의 주장이라면 일단 진위 여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동의하는 나라도 적지 않았다. 결국 한국의 대중 침략의도에 대한 규탄 결의안이 실제 UN에 상정되는 사태에 이르렀고, 한국은 끝내 중국에 공식적으로 사과함과 동시에 재발방지를 약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2008년 무렵부터 전략공격능력의 확충을 위해 미국제 KC-767 공중급유기 8기 도입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이 사태 때문에 한국은 하마터면 2013년 말부터 2014년 말까지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2차 도입분 4기를 인수하지 못할 뻔했다. 그나마 중국과 정면으로 상대 가능한 초강대국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한국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사업 자체는 간신히 추진될 수 있었다.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 미국 정부조차 한국의 진심을 믿어서 도와준 게 아니다. 당장 대당 3억 달러나 되는 구입대금을 받는 것이 급했고, 아울러 그들은 한국이 정말로 중국에 침략의도를 갖고 있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를 보이곤 했다.
  한국이 중국의 위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때마다, 미국은 한국에게 중국과 싸우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나 무기체계 같은 하위 시스템들을 넘겨주려고 혈안이 되어 덤벼들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은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거의 같은 조건으로 F-16 블록 60 80대와 F-35 전투기 80대를 단 2년 동안에 전량 구입, 배치할 수 있었다. 겨우 10년 전에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때와는 180도 다른 태도였다.

  "... 좋은 아침이군요. 안 그런가요?"
  대통령 집무실 문이 열리고, 주한 미국 대사 빙엄 여사가 집무실에서 나오며 장관과 김도현 대장을 보고 어색한 억양의 한국말로 인사말을 건넸다. 장관은 가볍게 목례하면서 대답했다.
  "좋은 아침이라면 장관님이 이렇게 일찍부터 청와대를 방문하시진 않을 텐데 말입니다."
  "아침 10시가 일찍이라, 장관님도 폐인인가 보군요? 아하하..."
  자신이 한국 문화에 정통했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말을 남기고, 빙엄 여사는 대통령 비서관들의 인도를 받아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빙엄 여사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비서관이 장관과 김도현 대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네... 들어갑시다, 의장."

  대통령 집무실은 지난 며칠 동안 뻔질나게 드나들었기에 이제 바닥 카펫에 묻은 커피 얼룩 위치까지 다 알고 있었다. 전임 대통령이나 지금 대통령인 박수연 대통령이나 집무실에서 커피를 쉬지 않고 들이키는 습관이 있고, 컵을 들고 다니면서 마시다가 흘리는 일도 잦았다. 오늘 역시, 대통령은 큼지막한 머그 컵을 들고 집무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늘도 또 오셨군요. 또 똑같은 이야기를 하려고 오신 거겠지요?"
  장관과 김도현 대장을 발견한 대통령이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오늘의 첫인사를 건넸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보면 꼴도 보기 싫은 사람 또 왔다고 짜증내는 것처럼 보이는 태도였다. 하지만 김도현 대장이나 장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저런 말을 건네는 경우는 오히려 이 사람들이 정말 때맞춰 잘 왔다고 생각할 때뿐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어요. 앉을 자리 없는 건 다 아실 거고."
  그렇게 말하면서, 대통령은 집무용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한국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게 된 지는 아직 얼마 되지 않았다. 권위 파괴로 유명했던 전임 대통령 두 사람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아, 보고서 내용은 안 봐도 대충 알아요. 여기 이렇게 가지고 있으니까."
  대통령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보라색 책자 하나를 집어들면서 그렇게 말했다. 표지 색깔부터 표제까지 똑같았다. 굳이 들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보고서를 출력해서 전달하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출력해서 가져다 준 것이다. 누가 가져왔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안 단속 좀 철저히 해요. 아무리 50년 넘게 저쪽에서 우리 군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래서야 순국선열들 뵐 낯이 없잖아요."
  "면목 없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장관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김도현 대장도 얼굴을 붉혔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내부 끄나풀들을 제거해 왔는데도, 아직 미국은 한국군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하나도 남김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기야, 내가 청와대에 외간남자 끌어들였다가는 2시간 안에 미국 대통령이 그거 보면서 화장지 꺼내겠죠. 푸훗. 그런 나라니까."
  입담 거칠기로 이름난 대통령다운 말이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입장에서 역시 나이 지긋한 사람들 앞에 놓고 내뱉을 말은 아니었다. 하여튼 대통령은 거기까지만 말한 다음 얼굴에 떠올라 있던 냉소를 깨끗이 거두고 정색을 했다.
  "중국 지상군이 현 위치에서 저항을 받지 않고 북한 국경선에 도달한다면 얼마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전에 브리핑 받았지만 잊어버렸습니다. 여기에도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어요."
  "일단 6시간 남짓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지만 그건 저들이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 작전을 벌일 때 얘기고, 만약 2003년 미군처럼 신속함을 중시한다면... 빠르면 1시간 내에 중국군 선두 부대가 압록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만..."
  대통령의 물음에 김도현 대장이 대답했다. 공군 출신이라 지상군의 세부 작전진행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두 시간 전에 있었던 오전 상황보고회의에서 정보사령관의 정보보고에 따라 지상작전사령관이 제시한 타임 테이블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흐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시겠죠?"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김도현 대장 대신 장관이 그렇게 말하면서 들고 있던 보고서를 펼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장관을 대통령이 제지했다.
  "현재 상태에서 중국군이 기습적인 OCA(Offensive Counter Air : 공세적 제공작전)를 시도할 경우, 우리가 최초 중국 공군기 출격을 파악하고서 우리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할 때까지는 길게 잡아서 30분, 실제 주요 목표 타격이 시작되는 건 45분에서 50분 내. 2013년에 전임 장관님이 제게 브리핑한 내용입니다. 틀림없죠?"
  "그렇습니다."
  "그때 들어서 아는 내용이죠. 지상군은 잊어버려도 공군작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수방어 태세를 유지하는 한 중국과 싸워서 승산이 없는, 질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공군력의 열세니까."
  대통령이 그렇게 말하면서 김도현 대장을 바라보았다. 공군 대장 출신인 자신에게 대한민국 공군의 무력함이 대한민국 전체의 무력함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책망하는 듯한 눈빛에, 김도현 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방금 미국 대사 아줌마도 똑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그나마 최소한의 승산이라도 확보하고 싶으면 중국 공군기 이륙이 확인되는 즉시 역으로 OCA를 준비하라고 말이에요. 중국의 침공 징후가 확실하지 않다 하더라도 공격에 들어가지 않으면, 정작 전쟁이 터진 게 확실해지는 순간 우리 대한민국은 중국의 속국이 돼 있을 거라고 협박을 하더군요. 2012년 대만처럼요."
  "예..."
  "2013년에도 저 아줌마 전임자가 나한테 똑같은 소리를 했죠. 그땐 아무 것도 몰라서 정말 그러면 어쩌나 하고,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일말의 희망도 가져 보고... 정말로 그랬습니다."
  대통령이 김도현 대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어 집무실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가을답지 않게 찌뿌둥한 하늘이었다. 일기예보로는 오늘부터 모레까지 경기도 북부에서 서울 일대에 비가 계속 내릴 것이라고 했다. 예상 강우량은 2백에서 2백 50밀리미터. 이미 임진강과 한강 수계는 홍수대비 시스템을 작동시킬 준비를 마치고 있다.
  "저한테 건의하고 싶은 것도... 같은 거겠죠?"
  "그렇습니다."
  김도현 대장이 그렇게 말하자, 대통령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반문했다.
  "나한테 얼마나 시간을 줄 수 있지요?"
  "......"
  대통령의 물음에 김도현 대장은 잠시 말없이 장관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의 물음이 확실한 선제공격 승인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완벽한 준비를 갖추기엔 이미 늦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필수 소요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준비 시간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럼 질문을 바꾸죠... 순수하게 공군만, 공군 작전만 가지고 보면 최소 소요시간은 얼마 정도죠? 미리 모든 작전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는 조건으로요."
  "... 한 시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여유시간으로 결행한다면 중국군과 우리 국군은 먼저 네 방을 맞은 다음 한 방을 먹이게 됩니다."
  "그 네 방을 막을 가능성은요?"
  "예전에 말씀드렸듯, 세 방은 자신이 있습니다만, 일단 한 방은 막을 수 없습니다."
  각각의 펀치가 어디와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13년, 그가 합참 전략기획참모부장이었을 때 이미 보고했던 내용이었다.
  "신형 비행기가 80대나 늘었는데도 달라진 게 없군요."
  "그만큼 저들도 신형기가 늘었습니다, 대통령님."
  2015년 현재 중국군은 현대적인 공세용 혼성 항사(航師, 항공사단)를 6개나 가지고 있다. 2013년에는 4개였다. 그리고, 그 외에도 중국군은 구식 J-8 또는 비교적 신형기인 J-10A 전투기로 구성된 12개 항공사단을 더 가지고 있었다. 2013년에는 4:14였고, 지금은 6:12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12는 예전의 14보다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았다.
  "중국군의 6개 혼성 항사는 항공기 수효와 성능에서 우리 공군 전 전력과 맞먹습니다."
  김도현이 그렇게 부연하자, 대통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한다고 치고... 그 앞으로 최소 한 시간 남았다는 걸 알 수 있는 징후는 역시 그건가요?"
  "... 면목없습니다."
  김도현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면목없는 일이지만, 개전까지 한 시간 남았다는 징후는 바로 베이징군구와 센양군구 공군기지들에 주둔한 중국 공군기가 출격준비를 마치고 10분 내에 출격할 예정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현재 한국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정보자산에 돈을 투자하고 또 투자했건만, 아직 한국군은 저 정보를 확인할 능력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정찰위성의 정찰 결과를 획득할 수 있는 미국이 아니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미국조차도 확실히 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없었다. 김도현 대장이 면목없어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도현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는 제복군인으로서 최고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합참의장으로서는, 한국군의 능력을 초과하는 문제로 조국의 확실한 수호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 아줌마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가더군요. 정말 그쪽 사람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나 궁금하네요. 어쨌든... 한 시간 뒤에 비상 NSC를 소집할 예정입니다. 의장님 역시 출석해서 현 상황에 대한 의견과 군사적 대응방안 세부 절차에 대해 발언하도록 명령합니다. 괜찮겠죠?"
  그런 김도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통령은 그렇게 말한 다음 가볍게 목례를 했다.
  "그럼, 한 시간 뒤에 NSC 사람들한테도 지금 하신 이야기를 그대로 다시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와 국정원장, 외교안보수석은 두 분 편이겠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아마 두 분의 적이 될 것 같네요."

- Chapter 01 (3)에서 계속 -





공지   [아이언사이즈] 전쟁소설 『아이언사이즈(Ironsides)』기본공지  윤민혁  2004/05/30 19610 8
3   [아이언사이즈]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3)  윤민혁 2004/07/14 18287 24
  [아이언사이즈]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2)  윤민혁 2004/06/26 13949 14
1   [아이언사이즈] Chapter 01. 2015년 9월 12일 토요일 (1)  윤민혁 2004/06/16 2328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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